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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최인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어느 날, 자명종 소리에 잠에서 깨어난 K는 어딘지 모를 낯선 감각 때문에 혼란을 느낀다. 그날은 토요일이었고, 토요일에는 자명종이 울리지 않도록 조치해 두었기 때문이다. 화장실에서 잠시 기억을 더듬어 보던 K는 거울에 비친 자신이 벌거벗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란다. 그는 한번도 벌거벗은 채 잠자리에 든 적이 없었던 것이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K는 지난밤 발기 부전으로 아내와 성행위에서도 실패를 맛보았다. 아내에게서 느껴지는 서늘한 감촉이 낯설었기 때문이었다. 면도 후 스킨을 바르려던 K는 평소 쓰던 스킨이 아닌 사실을 깨닫고 또 다시 불쾌해진다.
딸 MS도 어딘지 모르게 낯설고, 기르던 개마저 K를 향해 이빨을 드러낸다. 딱 꼬집어 무엇이 이상한지 말할 수 없지만 K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이 낯설기만하다. 처제의 결혼식에서 만난 장인이라는 사내도 생뚱맞고, 처제와 결혼하기로 한 신랑도 어디선가 본 듯하다. 휴대폰을 보관하고 있던 사내는 택시기사가 되었다가 보험판매원이 되는 식으로 겹치기 출연을 하고, 죽었다던 장인이 나타나기까지 한다. K를 제외한 모든 것들이 정교하게 K를 속이기 위해 배치된 장치와 배우 같다.
K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도시는 간간히 지진이 발생하고, K는 자신이 누군가 다른 사람과 바꿔치기 된 것 같다는 기이한 느낌에 사로잡혀 부쩌지를 못한다. 그러다 자신과 똑닮은 또 다른 '나'를 대면한 K는 뒤바뀐 삶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로 한다.
최인호는 고등학교 2학년인 1963년에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입선한 후 순수하게 소설로 밥을 먹고 산 몇 안 되는 전업작가였다. 1982년도 이상문학상 수상 작품인 <깊고 푸른 밤>의 감각적이고 도시적인 문체가 준 강렬한 인상은 이어지지 못했다. 최인호는 이후 자신의 본령인 현대소설에서 멀어져 역사소설, 대하소설, 종교소설을 30년 이상 집필했기 때문이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작가의 말'에 따르면 암으로 투병하면서 집필한 작품으로, 손톱이 빠져 골무를 손가락에 끼우고 매일같이 20매에서 30매 분량을 원고를 써내려갔다고 한다. 그리고 드디어 자신의 본령인 현대소설로 회귀하여 신문이나 잡지의 청탁이 아닌닌 순수하게 '나 혼자만의 독자'를 위해 소설을 완성했다고 술회한다.
소설은 카프카의 소설을 비롯해 부조리적인 성향을 띠는 소설들이 사랑하는 이니셜 K를 주인공으로 하여 진행된다. 스토리는 어딘지 모르게 주제 사라마구의 <도플갱어>와 유사하다. 현대소설로 회귀했지만 작가는 이미 현대적이지 못하다. 문체는 고루하고, 젊은이들의 어투는 어색하다. 성서적 알레고리 역시 진부하다.
후배작가 김연수가 발문에서 선배 소설가의 작품에 보내는 동업자적 찬사는 그래서 그런지 안쓰러운 느낌이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40437629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