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과 투명
장웨란 외 지음, 김태성 외 옮김 / 예담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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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장웨란의 <집>은 도시에서 생활하는 치우뤄와 징위, 그리고 가사도우미 샤오쥐의 이야기다. 치우뤄와 징위는 각각 상대편에게 이별을 고하고 '집'을 떠난다. 한편 샤오쥐는 이들이 떠나버린 집에 기거하다 고향 쓰촨에 지진이 일어나 엉망이 되자 남편 더밍을 불러오기로 한다. '집'이라는 공간을 떠나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는 도시인과, 지진으로 '집'을 잃어버린 시골노동자의 삶을 엇갈려 보여주는 작품.

황베이쟈의 <완가 친우단>은 SNS에 매몰되어 모든 인간관계가 재정립되는 도시인의 씁쓸한 풍경을 보여준다. 천쿤과 완옌은 결혼 삼 년 차 젊은 부부인데 천쿤이 고아로 자라서 그런지 완씨 집안 단톡방에 과도하게 집착한다. 정도를 넘어선 SNS 활동은 결국 완씨 집안 내 다른 여성과 천쿤이 불륜을 일으키는 사건이 일어나며 씁쓸하게 끝이 난다.

쟝이탄의 <투명>은 이혼과 가정에 관한 이야기다. 이혼 후 새로운 여자를 만난 '나'는 그녀의 아들을 대할 때마다 두고 온 딸이 생각 나 괴롭다. 새로 만난 여자는 빛 한 점 들지 않는 특이한 레스토랑을 열어 성공하지만, 그곳에서 딸의 목소리를 들은 뒤 '나'는 딸에게도 아빠가 필요하다면서 두 집 살림을 하겠다고 선언한다. 새로 만난 여자는 그렇게 하라고 하면서도 언제든 자물쇠를 바꾸면 다시는 오지 말라고 한다.

추이만리의 <관아이의 바위>는 다소 모호한 작품이다. 관아이의 아버지는 한 때 이념 활동을 한 것으로 보이나 현재는 신장에서 돈을 벌며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관아이에 대한 책임이나, 이념에 대한 지조는 내세에서나 다시 생각해보겠다는 태도다. 관아이의 부모에게 강한 영향을 받은 담임 선생은 관아이를 가르친 적이 없음에도 그녀를 제자로 생각한다. 관아이는 외로웠던 자신을 챙겨주었던 반장에게 마음이 가면서도 그의 마음을 모르는 척 하고, 외롭기 때문에 여자를 살 수밖에 없었다던 이혼남 지보런과 결혼하려 한다. 안개 속을 더듬더듬 나아가는 듯한 쓸쓸한 이야기가 작가의 뛰어난 역량 덕에 답답하지 않게 전개된다.

치우산산의 <쉬는 시간>은 평생을 교사로 지냈던 장수잉이 존재의미를 찾지 못해 과거의 시간표대로 삶을 꾸려간다는 얘기다. 아파트에 도둑이 들어 그녀는 나름 역할을 하려 했지만 허탕을 치자 애꿎은 아들만 타박한다.

저우쉬안푸의 <가사 도우미>는 개혁 개방으로 돈이 가치의 제1 척도가 된 중국사회를 신랄하게 꼬집는다. 언니가 동생네 집안 일을 돕고 돈을 받기 시작하자 관계가 달라진다. 언니와 동생 모두 관계가 묘하게 흘러간다고 느끼면서도 관계는 점점 고착화된다.

쉬이과의 <초등학생 황보하오의 글 모음집>은 어딘지 모르게 왕멍의 글이 떠오르는 작품이다. 가족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에피소드 들이 중국식 유머와 어우러져 그럴싸한 시트콤 한 편을 보여준다.

마이쟈의 <일본놈>의 배경은 문화혁명 시기다. '나'의 아버지는 일제강점기 때 잠깐 일본놈들에게 끌려가 짐을 져나른 일이 있었다. 대검을 들이대니 어쩔 수 없이 한 일이었다. 그러다 끌려간 곳에서 우연히 일본인 어린애를 강물에서 건져주게 된다. 후에 일본인이 고맙다며 상당한 금액을 보내 사례했는데 이것이 빌미가 되어 '나'의 아버지는 오류분자로 분류되고, 할아버지는 농약을 마시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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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도 먼 나라 하면 과거에는 일본이었으나, 이제는 중국이 아닐까 한다. 명동에서 중국인을 내쫓자며 혐중 시위를 하는 사람들이 뉴스에 보도 된다. 과거에 혐한 시위를 하는 일본인들을 보고 특정국가 국민을 혐오하는 시위도 다 있구나 했는데, 그런 일들이 우리 나라 한복판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는 중국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작품은 70년대와 80년대 소설가들의 비교적 최신(2017년 기준) 작품 여덟 편이 실려 있다. 개혁 개방 이후 중국 생활을 '집'이라는 테마를 중심으로 설핏 살펴볼 수 있는 작품들이다. 추이만리와 쉬이과의 작품이 그 중 마음을 끈다. 추이만리의 작품은 쓸쓸한 정조가 좋고, 쉬이과의 작품은 중국식 유머가 유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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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사과
김경욱 지음 / 문학동네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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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7월 12일 월드컵 결승이 열리던 날, 화자는 파리 소르본 대학 도서관에서 프랑스왕 샤를 6세의 아우이자 중세 희귀본 수집가로 알려진 루이 도를레앙공의 서재를 발견한다. 그리고 <프랑스를 비롯한 전 세계에서 가장 고귀하고 가장 괴물같은 일들에 관한 기록>을 서가에서 뽑아드는데, 그 책은 잉글랜드 바스커빌 출신의 프란체스코회 수도사 윌리엄이 1347년 집필한 서책의 채록 편집본이었다.

말하자면, 이것은 내 젊은 날 우연히 만났던 어느 요리사에 대한 이야기이다, 라고 시작하는 그 책은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연결 관문인 영원의 도시 베르송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에 대한 기록이었다.

1298년 프랑스는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와 필립 4세의 갈등이 극에 달한 시기였다. 풋내기 수도사 윌리엄은 선친의 죽마고우인 피에르 드 라포레 주교의 부음을 듣고 베르송으로 간다. 사람들은 윌리엄에게 피에르 주교로부터 뭔가 듣거나 특별한 걸 받은적이 없는지 물었지만, 윌리엄이 받은 것은 특별할 것 없는 내용의 편지 뿐이었다.

피에르 주교의 죽음은 의심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사람들은 그가 죽기 직전 매우 초조해했고, 부주교 레이몽과 언쟁을 벌였으며,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사망했는데 십년은 늙어보였다고 했다.

어쨌든 베르송의 주교 자리가 공석이 되자 보니파키우스 8세의 충복인 몬테나 추기경과, 교황청의 이단심문관인 발렌티노 카스텔리치가 베르송으로 온다. 한편, 필립 4세의 직신이자 법률고문인 로마법학자 기욤 드 노가레와 마비앙 행정장관도 속속 도착한다. 그들은 신임 주교에 자신들의 세력을 앉히려 했다.

두 진영의 극단적인 대립으로 참사회의가 평행선을 달리던 그 때, 도시에 페스트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전달된다. 후임 주교 선출 안건은 연기되고, 도시는 음울한 기운으로 뒤덮인다.

한편, 요리사이자 과학자인 제롬은 혜안과 통찰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는 9세기 아랍인 자비르 이븐 하밀의 <본초비방집전>에 나온 불귀라는 약초를 먹었을 때 사람이 가사상태에 빠지고 늙어보인다는 구절을 떠올리고 어쩌면 주교가 사망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보았다. 그는 윌리엄과 함께 주교의 무덤을 파헤치고 관 뚜껑을 열어 돌덩이만 들어있다는 것을 확인한 후 성물 보관실 구석에서 주교를 발결한다. 하지만 그는 극심한 고문과 잘린 혀 때문에 곧 사망하고 만다.

페스트가 도시를 휩쓰는 와중에 인육을 넣은 사순절 파이가 유통되고, 뇌쇄적인 미모를 지닌 벙어리 처녀가 마녀로 몰린다. 윌리엄은 자신이 받은 주교의 편지에 우연히 쏟아진 포도주 덕에 currius라는 글자를 읽게 된다. 그가 받은 편지는 어쩌면 자유영혼의 형제단이나 성전 기사단의 명부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괴한에게 습격당해 편지를 빼앗겨 진실은 알 수 없었다. 10년이나 이탈리아를 주유한 뒤 영국으로 돌아간 윌리엄은 currius가 어쩌면 메르쿠리우스일수도 있다는 정보를 듣고 주교가 남긴 편지가 연금술의 비방이고, 제롬 사제가 범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상의 이야기들에 대해 화자는 "대저 인간이 만들어낸 글이라는 것은, 기호라는 것은, 어떤 실체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또다른 기호를, 선행하는 기호를 소환할 뿐이며, 원본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신의 서고에나 존재할 것이다. 요컨대, 나는 그림자의 그림자의 그림자......를 더듬고 있는 꼴이었다." 라고 말하며 이상의 기록들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그리고 자신이 읽었던 판본이 어디까지가 원본에 가까운지 모르겠다고 술회한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프리퀄 소설을 이문열 문체로 작성한 듯한 <황금사과>는 연금술의 최종 목적이자 절대진리를 상징하는 '황금'과, 인류가 최초로 신을 배반한 상징 과일인 '사과'를 합성한 제목으로 김경욱의 손에 의해 쓰여졌다.

김경욱은 이 책이 '텍스트'임을 거듭 강조하며 포스트모던적인 시각으로 읽어줄 것을 권유한다. 포스트모던이 곧 불가지론이 아닐진데, 왕왕 포스트모던은 알 수 없음, 도달할 수 없음으로 귀결되는 듯 하다. 거대담론이 모두 실패로 돌아가고 세계 개조의 원대한 이상이 처참한 패배로 귀결된 후 밀어닥친 포스트모던의 물결은, 그래서 패배와 허무의 색채를 띤다. 양파를 까고 까서 실체를 파악하려 하지만 결국 남는 것은 눈가에 맺힌 눈물 뿐이라는 식의 허무주의. 나는 그런 식의 포스트모더니즘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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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행
정명섭 지음 / 텍스티(TXTY)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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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병조판서 송치인의 아들 송현우는 장원 급제 후 권력기관인 사헌부에 배속된 뒤 친구 이명천의 여동생과 순조롭게 혼인하여 장래가 유망했다.

그런데 어느 날, 송현우가 잠에서 깨 눈을 뜨니 집 안이 온통 안개에 휩싸여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내와 부모님을 비롯한 집안 식구 모두가 잔인하게 살해당해 있었다. 송현우는가물거리는 의식 속에서 병풍에 쓰여진 무원(無原)이라는 글자와, 애꾸, 외팔이, 외다리 사내를 목격한 뒤 실신한다.

신고를 받고 현장에 달려온 포도군관은 친구 이명천이었다. 옥에 갇힌 송현우는 결백을 거듭 주장했으나 누구도 자신을 믿지 않는 상황에 절망하여 자살을 시도한다. 하지만 또 다시 안개가 끼고 까마귀가 나타나 그를 천격당으로 인도한다.

천격당은 왕실의 점을 치는 무당이 머무는 곳이었는데 그곳에서 당주 소진주를 만난 송현우는 호위무사 진원, 개 어둠, 마패와 낙죽장도를 얻은 뒤 무원을 찾아 길을 떠난다.

한편, 왕실의 실세 좌의정 심환은 임금의 명으로 이명천을 암행어사에 임명하고 송현우를 쫓도록 지시한다.

무원(無原)으로 가는 길을 찾는 한편 외눈, 외팔이, 외다리를 추격하는 송치인과, 그런 송치인을 뒤쫓는 이명천, 그리고 임금의 명에 따라 송현우 집안의 몰살 사건을 재조사하는 부마 정원석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시작된다.

소설은 변죽만 울리다 끝난다. 암행 1권이라든가 하는 표시도 없이 중도작파되는데, 암행 2부가 나오는 것인지 어떤지 모르겠으나 별다른 설명도 없다.

삼원도라는 섬에 주박교라는 종교가 있고, 그 주박교의 신이 백두산 무원봉에서 왔다. 그들은 선택받은 아이들을 교육(세뇌) 시켜 왕으로 옹립시키고 세상을 주무르려 한다. 칼을 뽑아 십이지신을 풀어놓는다거나, 까마귀를 통해 세상을 본다거나, 하는 능력 가진 자들이 등장하는 자극적 설정이 곁들여 지는데 이후 어떻게 풀어갈지 모르겠다. 완결이나 되면 모를까 2부 3부 이런식으로 출판된다면 읽게될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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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병동 - 제11회 전태일문학상 수상작품집
김성란 외 지음 / 사회평론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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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전태일 문학상 수상작품집으로 2002년에 발간되었다. 시는 잘 알지 못하고 생활기록문 부분은 이렇다 할 작품이 없어 소설에 대한 감상만 적는다.

김성란의 <제5병동>은 도시 중심부에서 벗어난 곳에 위치한 병원을 배경으로,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등 병원노동자의 일상을 담담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한때 노동조합 상근간부 였으나 운동전망이 불확실해 조직 내 갈등이 심화되자 생활전선으로 돌아온 간호사, 생산직 여공으로 근무하다 노조활동의 패배 경험을 안고 병원에 취직한 간호조무사, 집안의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취업전선에 나선 학생, 산업안전의 사각지대에서 생활비를 벌기 위해 고군분투하다 결국 쓰러지고 만 노동자까지 김성란이 소설에 배치한 인물들은 저마다의 사연이 있지만 이를 즉자적으로 드러내고 있지는 있다. 과거의 노동소설처럼 노동현장에서의 갈등을 여과없이 표출하고, 그 갈등 해소를 위해 투쟁이나 파업으로 나아가는 단순 도식적인 흐름이 아니라는 점이 좋다. 업무가 끝나고 바닷가를 찾는 장면은 어딘지 모르게 마루야마 겐지의 <여름은 흐른다>를 연상시킨다.

정성숙의 <우리 시대의 희망 찾기>는 전라도 사투리가 흐드러지게 피는 유쾌한 소설이다. 이문구나 전성태를 연상시키는 해학도 어느 정도 느껴진다. 하지만 지나치게 예측 가능한 전개와 계몽적인 결말은 다소 아쉽다.

홍명진의 <기도원 가는 길>은 빼어난 기교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가지 않는다. 시인 신경림이 시 부문 심사에서 언급한 비평을 <기도원 가는 길>에 그대로 옮겨 적어보면, "...많이 공부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말재간도 상당하고, 기교도 초보는 아니다. 한데 바느질 자국이 보인다. 정말 뛰어난 솜씨라면 어디 바늘 자국이 보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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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디오스
후안 까를로스 오네띠 지음, 김현균 옮김 / 창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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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남자가 맨 처음 가게에 들어왔을 때, 차라리 그의 두 손만 보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소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산악 도시의 가게에 들어선 남자는 폐결핵 환자다. 하지만 그는 '치료되는 것의 가치와 중요성을 믿지 않'기 때문에 요양소에 들기를 거부하고 별장을 하나 얻는다. 젊은 여자 넷이 죽어나간 집이었다.

그에게는 두 종류의 편지가 온다. 하나는 손으로 쓴 편지, 다른 하나는 닳아 빠진 타자기로 친 편지. 가게 주인(화자)은 편지들을 남자에게 전달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편지 주인들이 차례로 도착한다. 첫번째 편지 주인은 조금 퉁퉁한 여성으로 어린아이를 데려왔다. 남자는 그녀와 호텔에 묵는다. 두번째 편지 주인은 나이 어린 여자였다. 남자는 어린 여자와 젊은 여자 넷이 죽어나간 별장에 묵는다.

간호사는 그녀를 두고 '그런데 여자가 너무 어려 보이지 않아요?' 라고 했다.

사람들은 두 여자가 만나면 뭔가 문제가 생길거라 생각해지만 실제 그녀들이 만났을 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들은 평온한 시간을 보냈다.

남자의 병세가 악화되고, 끝내 비쩍 마른 육신으로 죽는다. 가게 주인은 남자에게 전해주지 않은 편지를 뜯어서 읽어보고 어린 여자가 남자의 혈육이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가게 주인은 부끄러움과 분노를 느겼고 살갗에는 한동안 수치심이 들끓었다.

후안 까를로스 오네띠는 1909년 우르과이 몬떼비데오 태생으로 로이터 통신사를 거쳐 시립도서관장을 역임하였으나, 보르다베리 독제체제 하에서 반체제적 작품을 수상작으로 선정한 심사위원이었다는 이유로 투옥된다. 1974년 스페인으로 망명한 뒤 1994년 마드리드에서 사망했다. 1963년과 1908년에 우루과이 국가문학상과 세르반떼스 상을 각각 수상하였으며, 대표작으로 <우물 El pozo, 1939>, <짧은 생애 La vida breve, 1905>, <조선소 El astillero, 1951>, <죽음과 소녀 La muerte y la niña,1983>이 있다.

에필로그를 쓴 전 워싱턴주립대 교수 볼브강 A.루칭은 '공범-독자(lector-complice)', '관객-참여(audience-participation)', '독자-참여(reader-participation)' 등의 개념을 가지고 소설을 풀어나간다. 이는 브레히트와 그의 낯설게 하기(Verfremdung)와 대척점에 있는 개념으로 관객-독자를 픽션의 창작과정에 포함시키려는 시도와 연관되어 있다.

루칭은 오네띠가 독자인 우리를 끌어들여 우리가 결국 '후레자식' 이라는 것을 까발리겠다는 작가의 의도를 숨기지 않는다면서 헨리 제임스가 즐겨 사용한 관점 기법을 언급한다.

사실 복잡하게 얘기했지만 <아디오스>를 읽는 독자는 남자가 아내와 아이를 두고 젊은 여자와 정사를 벌이는 매우 파렴치한 인물이라고 짐작한다. 이는 온전히 가게 주인의 시각에 우리의 관점을 일치시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뒤늦게 편지를 통해 알게된 사실은 어린 여자가 그의 혈육이라는 점이다.

여기서 독자는 관점을 수정해야 하는데, 이 역시 '가게 주인의 시각'으로 수정하게 된다. 가게 주인이 '부끄러움을 느꼈'기 때문에 '혈육'은 곧 딸이라고 해석한다. 그렇다면 모든 것이 자연스럽다. 딸은 자신의 재산을 다 털어서라도 아버지의 병을 고치기 위해 산악마을로 온 것이고, 남자의 애인은 그런 부녀를 지켜보며 호텔에 머문다. 일단 말은 된다.

하지만 또 다른 해석은 없을까? 혈육이 '여동생'이고, 남자와 여동생이 근친관계일 수도 있지 않은가.

오네띠의 이런 수법은 사실 그만의 독창적인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나사의 회전>처럼 멀리 갈 필요도 없이 1926년에 발표되어 찬반격론을 불러 일으킨 에거서 크리스티의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의 서술 트릭도 어찌 보면 같은 맥락이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3993297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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