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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디오스
후안 까를로스 오네띠 지음, 김현균 옮김 / 창비 / 2008년 5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남자가 맨 처음 가게에 들어왔을 때, 차라리 그의 두 손만 보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소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산악 도시의 가게에 들어선 남자는 폐결핵 환자다. 하지만 그는 '치료되는 것의 가치와 중요성을 믿지 않'기 때문에 요양소에 들기를 거부하고 별장을 하나 얻는다. 젊은 여자 넷이 죽어나간 집이었다.
그에게는 두 종류의 편지가 온다. 하나는 손으로 쓴 편지, 다른 하나는 닳아 빠진 타자기로 친 편지. 가게 주인(화자)은 편지들을 남자에게 전달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편지 주인들이 차례로 도착한다. 첫번째 편지 주인은 조금 퉁퉁한 여성으로 어린아이를 데려왔다. 남자는 그녀와 호텔에 묵는다. 두번째 편지 주인은 나이 어린 여자였다. 남자는 어린 여자와 젊은 여자 넷이 죽어나간 별장에 묵는다.
간호사는 그녀를 두고 '그런데 여자가 너무 어려 보이지 않아요?' 라고 했다.
사람들은 두 여자가 만나면 뭔가 문제가 생길거라 생각해지만 실제 그녀들이 만났을 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들은 평온한 시간을 보냈다.
남자의 병세가 악화되고, 끝내 비쩍 마른 육신으로 죽는다. 가게 주인은 남자에게 전해주지 않은 편지를 뜯어서 읽어보고 어린 여자가 남자의 혈육이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가게 주인은 부끄러움과 분노를 느겼고 살갗에는 한동안 수치심이 들끓었다.
후안 까를로스 오네띠는 1909년 우르과이 몬떼비데오 태생으로 로이터 통신사를 거쳐 시립도서관장을 역임하였으나, 보르다베리 독제체제 하에서 반체제적 작품을 수상작으로 선정한 심사위원이었다는 이유로 투옥된다. 1974년 스페인으로 망명한 뒤 1994년 마드리드에서 사망했다. 1963년과 1908년에 우루과이 국가문학상과 세르반떼스 상을 각각 수상하였으며, 대표작으로 <우물 El pozo, 1939>, <짧은 생애 La vida breve, 1905>, <조선소 El astillero, 1951>, <죽음과 소녀 La muerte y la niña,1983>이 있다.
에필로그를 쓴 전 워싱턴주립대 교수 볼브강 A.루칭은 '공범-독자(lector-complice)', '관객-참여(audience-participation)', '독자-참여(reader-participation)' 등의 개념을 가지고 소설을 풀어나간다. 이는 브레히트와 그의 낯설게 하기(Verfremdung)와 대척점에 있는 개념으로 관객-독자를 픽션의 창작과정에 포함시키려는 시도와 연관되어 있다.
루칭은 오네띠가 독자인 우리를 끌어들여 우리가 결국 '후레자식' 이라는 것을 까발리겠다는 작가의 의도를 숨기지 않는다면서 헨리 제임스가 즐겨 사용한 관점 기법을 언급한다.
사실 복잡하게 얘기했지만 <아디오스>를 읽는 독자는 남자가 아내와 아이를 두고 젊은 여자와 정사를 벌이는 매우 파렴치한 인물이라고 짐작한다. 이는 온전히 가게 주인의 시각에 우리의 관점을 일치시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뒤늦게 편지를 통해 알게된 사실은 어린 여자가 그의 혈육이라는 점이다.
여기서 독자는 관점을 수정해야 하는데, 이 역시 '가게 주인의 시각'으로 수정하게 된다. 가게 주인이 '부끄러움을 느꼈'기 때문에 '혈육'은 곧 딸이라고 해석한다. 그렇다면 모든 것이 자연스럽다. 딸은 자신의 재산을 다 털어서라도 아버지의 병을 고치기 위해 산악마을로 온 것이고, 남자의 애인은 그런 부녀를 지켜보며 호텔에 머문다. 일단 말은 된다.
하지만 또 다른 해석은 없을까? 혈육이 '여동생'이고, 남자와 여동생이 근친관계일 수도 있지 않은가.
오네띠의 이런 수법은 사실 그만의 독창적인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나사의 회전>처럼 멀리 갈 필요도 없이 1926년에 발표되어 찬반격론을 불러 일으킨 에거서 크리스티의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의 서술 트릭도 어찌 보면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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