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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리지 않은 세계의 불가사의 1
콜린 윌슨 지음, 황종호 옮김 / (주)하서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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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은 콜린 윌슨과 그의 아들 대먼 윌슨의 공저 <The Encyclopedia of Unsolved Mysteries>와 <Unsolved Mysteries-Past and Present>를 한데 묶어 황종호가 번역한 책이다. 저자 콜린 윌슨은 우리가 익히 잘 아는 <아웃사이더>의 저자인 바로 그 콜린 윌슨이다. 


콜린 윌슨은 1931년에 런던 근교에서 태어나 특별한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채 독서를 이어가다 1956년 24세의 나이에 평론집 <아웃사이더)>를 발표한다. 고전들을 자유분방한 상상력으로 분석한 이 평론집에 문단은 술렁였고, 영국의 소설가이자 비평가인 필립 토인비는 <콜린 윌슨은 누구인가>라는 글을 발표하기까지 한다. 후속작 <문학과 상상력> 역시 문단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 콜린 윌슨은 비평가로서 입신하는 듯 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비평집을 발표하지 않고 묘한 주제를 다루기 시작한다. <어느 철학자의 섹스 다이어리>, <폴터가이스트>, <오컬트>, <사이킷>, <살인백과>, <잔혹> 등 문학과 철학 너머의 영역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흑마술, 연금술, UFO 등으로 관심을 돌린 그는 평론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2013년에 사망한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 대부분은 거짓으로 판명 되었거나, 역사적 가치가 그다지 높지 않은 가십 거리들이다. 콜린 윌슨이 왜 이런 너저분한 글을 쓰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데 작가는 이렇다할 이유를 댄 적이 없다. 김형경은 이것이 가족을 불행하게 잃은 콜린 윌슨의 애도의식이라고 분석하는데, 수십년간 죽은 가족에 대한 애도의식의 일환으로 섹스와 흑마술에 관한 책을 썼다는 해석은 별로 와 닿지 않는다.


형식에 얽메이지 않은 독서와 자유분방한 상상력으로 문단에 충격을 주었던 독학자들이 특정 주제에 대한 지나친 천착을 보이다 문단과 독자 모두의 외면을 받거나, 정치적으로 진보와 보수 모두를 비판하다 스스로 고립되어 절필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나는 이것이 욕망의 좌절 때문이 아닌가 한다. 자신의 뛰어난 재주와 능력이 제도권에서 받아들여지지 못한 독학자의 좌절된 욕망이 욕망 자체에 대한 천착으로 변질된 것은 아닌지... 


어찌되었든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 중 그나마 진지한 주제는 <일리아드>의 저자는 호머일지 몰라도 <오디세이>의 저자는 여성이었을 것이라는 추측과, 세익스피어가 실존 인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추측 정도이다. 나머지는 그야말로 가십과 거짓과 추측이 뒤범벅된 기묘한 내용들이다.


책이 다루고 있는 미스터리는 다음과 같다.


1. 파라오의 저주

2. <일리아드>의 저자는 누구인가

3. 철가면의 죄수는 누구인가

4. 러시아 최후의 공주는 정말 사망했을까

5. 오스트레일리아 수상 해럴드 홀트는 중국 스파이였다

6. 페도르 쿠즈미히는 사실 러시아의 짜르였다

7. 보니히 고문서의 미스터리

8. 잔 다르크는 부활했다

9. 셰익스피어는 누구인가?

10. 진짜 모나리자는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것이 아니다

11. 성배의 발견

12. 아가사 크리스티의 행방불명

13. 생 메다르 교회의 기적

14. 도곤족과 고대의 우주비행사

15. 저주받은 보보석 - 프랑스의 푸른 다이아몬드

16. 최면술의 신비

17. 글로젤의 미스터리

18. 미확인 비행 물체 UFO의 미스터리

19. 토리노 대성당의 수의 - 예수의 얼굴

20. 플카넬리와 연금술

21. 잃어버린 고리

22. 오라 린다 북

23. 기원전 6천면의 바다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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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 년 열린책들 세계문학 52
A.스뜨루가쯔키 외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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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백 년 만에 처음이라는 찌는 듯한 6월의 더위가 도시를 집어 삼킨 어느 날. 아내 이르까와 아들 보브까는 오데사로 휴가를 떠났고, 집에는 천문학자인 말랴노프와 고양이 깔럄만 남아 있다. 

뜨거운 열기 속에서 부엌을 서성이던 말랴노프의 머리에 문득 쥬꼬프스끼의 공식이 떠오른다. 이를 실마리로 말랴노프는 최근 진척시키다 막혀버린 연구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아이디어를 발견한다. 조금만 더 하면 뭔가 될 것 같은 그 찰나, 전화벨이 울린다. 또다시 외인관광국을 찾는 전화다. 최근 들어 너무 자주 잘못 걸린 전화가 걸려오고 있다. 

그거야 어찌 되었건, 말랴노프의 머리는 여전히 작동을 계속하여 연구를 진척시키고 있었는데, 이번엔 식료품점에서 고급 술과 캐비어 따위를 잔뜩 배달해온다. 뭔가 착오가 있었을 것 같긴 한데... 어쨌거나 말랴노프는 생각을 더욱 진척시켜 마침내 스스로 <M-캐비티> 라 명명할 새로운 이론의 언저리에까지 도달한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왠 아리따운 여인이 말랴노프네 집 초인종을 누른다. 그녀는 이르까의 소개장을 지니고 있었는데, 소개장에 따르면 리뜨까 뽀노마레바라고 했다. 그런데 이르까도 없는 말랴노프의 집에서 그녀는 며칠 묵어가겠다는 것이 아닌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말랴노프는 묘한 설렘을 느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앞집에 사는 물리학자가 말랴노프의 집에 방문한다. 결국 그날 밤 셋은 술을 진탕 마셨고, 연구는 더 이상 진척되지 않는다. 그런데 다음 날, 앞집 물리학자가 시체로 발견되고 수상쩍은 느낌의 경찰이 찾아와 말랴노프가 범인이라며 한바탕 소란을 떨어댄다. 말랴노프는 체포되지 않았지만 수상쩍은 경찰은 꼬냑을 반명 훔쳐 달아났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도무지 모를 일이었다.

얼마 뒤, 말랴노프의 집에 동료 과학자가 찾아와 자신들의 연구를 방해하는 정체불명의 외계인들이 있다고 폭로하는데... 말랴노프는 처음에 그 말을 우스갯소리로 치부하다가 결국 모든 정황이 사실을 가르키고 있음을 깨닫고 경악하고 만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성공하지만 이후 계속된 내전으로 고참 볼셰비키들이 대다수 사망한다. 그리고 레닌이 사망한 뒤 스탈린이 권력투쟁에서 승리한다. 트로츠키 등 영구혁명을 주장하던 볼셰비키는 모두 축출되고, 결국 살해당한다.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에게 승리하기 위해서는 생산력을 더욱 증가시켜야 한다는 해괴한 논리 속에서 소련은 국가자본주의 체제를 공고히 한다. 이 과정에서 사회주의 리얼리즘 외에는 문학적 가치가 없다는 테제가 통용된다. 언제나 공상하는 자들이 권력의 정당성에 의문을 품게 된다. 


이러한 소련의 문학 토양 속에서, 일본어를 전공한 형 아르까지와 뿔꼬보 관측소의 천체 물리학자인 동생 보리스가 풍자성이 강한 SF 문학을 시도한다. 이들의 시도는 러시아의 반유토피아 문학의 명맥을 되살리는데 한동안 베스트셀러 작가로 군림하던 그들이 당국의 주목을 받게 되었음은 자명한 이치다. 다분히 소련 사회를 연상시키는 <인간의 섬(69)> 출간 이후, 그들의 소설은 보이지 않는 탄압을 받게 된다. 발행부수가 현격히 줄어들고, 비평가들이 부정적 평을 쓰기 시작한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것이다.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년(76)>은 이들 형제의 후기작으로 평온한 현실을 감시하고 있는 권력의 음험함을 그린 수작이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16846128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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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침묵
마이클 콘 / 정민미디어 / 199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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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기념일을 맞아 한껏 달아오른 흥겨운 분위기 속에서 젊은 남녀가 둘만의 장소를 찾아 내어 몸을 비벼댄다. 사람이 지나지 않는 으슥한 그곳에서 남자의 애무를 받던 여자의 시선이 문득 한 곳에 집중된다. 처음 그녀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쏟아지는 하수구 물 속에 섞여서 흘러나오는 것은 작고 이상한 물체였는데, 차츰 그것이 무엇인지 자각하게 되자 전신이 얼어붙고 만다. 

모두 7개나 되는 어린아이의 잘린 손이 그렇게 발견되고, 휴스턴의 7월 4일 독립 기념일 축제는 연쇄살인마의 존재를 알리는 경악스러운 이벤트로 덧칠 되고 만다. 

휴스턴 경찰서의 스웨커트 반장이 사건을 맡게 되지만 부(副)서장이 연쇄살인범의 조속한 체포를 위해 주립수사국에 추가로 전문가 파견을 요청하여 오드리 맥클레어가 수사팀에 합류하게 된다. 남성 위주의 수사판에 여성 특별수사관이 상급기관에서 파견되자 고참 형사들은 노골적으로 싫은 내색을 한다.

미묘한 갈등 속에서도 수사는 착착 진행되는데, 먼저 증거물인 손에 대한 분석이 시행된다. 포르말린을 사용해 부패를 방지한 손에는 절단된 다음에 봉합된 흔적이 있었고 잉크로 숫자가 문신되어 있었다. 숫자가 작을 수록 손의 크기가 작다는 점에서, 숫자는 살해된 아이의 나이를 의미하는지도 몰랐다. 

그러다 결정적인 제보가 들어온다. 시내 모 병원의 의사가 정보를 주겠다고 연락해온 것이다. 싱어 박사라고 자신을 밝힌 의사에 따르면 병원에 격리 수용된 소년이 하나 있는데, 소년은 4살 때 까지 양부모 손에서 자랐고 피해망상이 심했다고 한다. 그런데 소년이 자해를 하지 않았는데도 팔목에서 계속 피가 흐르고 있다는 점과 몇 년째 병실 벽에 숫자가 그려진 손 그림을 그려왔다는 것이 이상하다고 했다. 맥클레어는 직감적으로 소년과 이번 연쇄살인 범행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가 있음에 틀림없다고 느낀다. 

그러나 아이는 언어장애가 있는데다 타인과 관계맺기에 능숙하지도 않은 상태. 소년이 매년 7월 16일이면 손 그림을 그리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제 또 한 명의 사망자가 생겨날 날도 며칠 남지 않았다. 그 전에 소년이 그리는 손 그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맥클레어는 알아낼 수 있을까. 

사건 해결을 위해 매진하는 과정에서 그녀의 슬픈 과거가 드러나고, 남성들과의 힘겨루기에서 맥클레어는 점차 자신감을 잃어간다.


1993년에 개봉한 영화 천사의 침묵(원제 When The Bough Breaks)의 원작 소설로, 기형인 손을 가지고 태어난 딸을 위해 의사 아버지가 매년 아이들을 살해한 뒤 손을 절단하여 딸의 손목에 봉합한다는 엽기적인 컨셉의 소설이다. 역자는 이 소설이 휴스턴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에 기반하고 있다고 적고 있는데, 인터넷을 뒤져봐도 진위여부 확인은 어렵다. 

작품 구성은 그야말로 조악하다. 작가는 초반에 떡밥들을 충실히 던져주며 독자를 유혹하는데 성공하는데, 중반 이후 뜬금없이 괴물과 치르는 전투 장면을 삽입하여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만든 뒤, 사과라도 하듯 범인과 범행이유를 털어놓는다. 

그래서 나는 이 작품이 영화의 원작소설인지, 아니면 영화가 만들어진 뒤 영화의 흥행에 기대어 쓰여진 일종의 씨네마 소설인지 헤깔린다. 그러나 확인을 위해 노력할 만한 가치는 그다지 없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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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황혼
김성종 지음 / 추리문학사 / 198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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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이브. 어둠과 함께 함박눈이 내리는 거리를 이동표는 씁쓸한 마음으로 걷고 있다. 40세의 나이에 교정기자 일에서 밀려나 실업자 신세가 되었기 때문이다. 술집에 들어가 위스키 석 잔을 비운 이동표는 조금 기분이 유쾌해짐을 느낀다. 영화나 한 편 보고 나서 집에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좁은 길을 들어섰을 때였다. 사람들이 잔뜩 몰려 서 있는 걸 보고 들여다 보니 왠 여자가 길바닥 위에 폭삭 엎어져 있다. 동표는 그대로 두면 얼어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여자를 업고 병원으로 간다. 의사와 간호사는 5만원의 보증금이 없으면 입원이 불가능하다고 매정하게 말했고, 동표는 어쩔 수 없이 퇴직금을 헐어 돈을 지불한다. 잠시 뒤 여자를 진찰한 의사는 그녀가 수면제를 다량 먹은 게 틀림없다고 말하는데... 

크리스마스 이브에 자살을 기도한 그 여자는 얼마 뒤 자신을 구해준 이동표에게 전화를 걸어와 감사인사를 전하며 꼭 한 번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전한다. 동표는 그녀가 영화배우 오애라 라는 사실을 알고 쑥쓰러움을 느끼며 만남을 거하지만 여자는 한사코 동표를 졸라댄다. 어쩔 수 없이 동표는 오애라와 모일 호텔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고, 당일 약속장소에 나가지만 어이없이 바람을 맞는다. 집으로 돌아가려던 찰나, 사람이 떨어졌다는 얘기가 들린다. 동표의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추락한 사람은 오애라였다. 

경찰은 단순 자살로 처리하지만, 동표는 약속을 앞두고 나신으로 투신자살하는 여자는 없다는 생각에 오애라의 죽음을 파헤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오애라의 언니 오미라가 동생의 일기장을 가지고 와 보여주자 그런 의구심은 확신으로 변화한다. 오애라는 디자이너 홍 기의 마수에 걸려들어 마약에 중독되고 매춘을 강요받다가 급기야 일본으로 팔려갈 지경이 되자 자살한 것이었다. 


국제적인 매춘조직과 전직 기자의 활극이 펼쳐진다. 김성종 소설은 <최후의 증인>과 같은 수작이 있는가 하면 대본소용 무협지처럼 그다지 정성이 들어가지 않은 작품도 있다. <서울의 황혼>은 후자쪽에 가깝다. 사실 추리소설로 분류하기도 민망할 지경이다. 

뜻밖에도 이동표는 입체적 인물인데, 긍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부정적 의미에서 그렇다. 사실 그는... 월남전에 파병되어 미군과 특수임무를 펼쳤던 인물로 국제마약조직과의 일전을 앞두고 온몸이 칼날과 같이 벼려져 15년의 공백을 단숨에 뛰어넘어 인간병기가 된다. 그렇다면 직전에 양아치 둘에게 죽도록 얻어터진 것은 왜인가? 그것은 15년 전에 자신이 어떤 인물이었던지 미처 기억을 못했기 때문이라고 해두자. 

전체적인 분위기가 이소룡 영화를 연상시키는 <서울의 황혼>은 '국내 유일의 추리문학 전문지'로서 '전화로 주문하면 우송해 드리는' 계간 추리문학에서 1989년도에 펴낸 작품이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168095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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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요나라, 갱들이여 - 개정판
다카하시 겐이치로 지음, 이상준 옮김 / 향연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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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거대한 불꽃이 일본 열도를 휩쓸던 시기가 있었다. 다카자와 고오지는 그 시기를 이렇게 표현했다. 


그 어렴풋한 먼 기억 속에서 사람들은 오로지 끝없이 달리고만 있었다. 남자, 여자, 그리고 학생, 노동자, 문화인, 기동대원까지. 전국 방방곡곡 그 어디에서나 사람들은 달리고만 있었다. 도망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뒤를 쫓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사람들은 그 무언가를 지향하듯, 그 무언가를 추구하듯, 또 그 무언가를 격렬하게 희구하듯 그렇게 달려갔을 뿐이었다... 일몬이라는 이 나라, 이 나라 전체가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질풍같이 질주하고 있었다. 이것이 '1960년대' 였다.

 

전공투의 시대. 그 시대가 1972년 아사마 산장에서 벌어진 연합적군사건으로 종언을 고한다. 14명의 동지를 숙청한 최악의 사건. 자본과 권력에 대항해 결집시킨 역량들이 무화되고, 모험적인 수단과 방법에 현혹당해 극좌를 치닫다가, 마지막으로 발산한 극도의 자기파괴적 행위.  


작가 다카하시 겐이치로 역시 전공투 세대였다. 1951년 히로시마에서 태어난 그는 요코하마 국립대학 경제학부에 입학한 뒤 급진적 활동가로 가두시위 등에 참가하여 여러차례 체포된다. 1969년 11월에는 흉기준비집합죄로 체포되어 이듬해 초까지 유치장과 도쿄소년 감호소를 드나들다가 가정법원으로 송치, 1970년 2월에는 기소되어 8월까지 도쿄구치소에 수감되는 경험을 한다.

그가 수감된 시기는 전공투 운동이 소멸되어 가던 시기로 1970년 3월 31일에 적군파가 요도호를 공중납치하는 등 극좌적 방법이 등장했고, 1971년 6월에는 전국 전공투가 분열하였다. 동대 전공투와 활발한 토론을 벌였던 미시마 유키오가 돌연 방패회와 함께 육상 자위대의 동부 방면 총감부에 난입하여 자위대의 국군화를 외치며 할복자살하는 이벤트도 있었고, 분트 간의 테러와 살인도 있었다. 어쩌면 연합적군사건은 그 모든 것의 총괄이었는지도 모른다.


출소한 작가는 자신의 일생을 바쳤던 운동이 저물고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세상이 흘러가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는 철공소와 화학공장, 토건회사 등을 10여년간 전전한다. 그리고 "나는 이 컵이 좋아" 라는 단순한 한 문장을 하루 종일 쓰는 "실어증환자의 재활 운동"의 나날을 보낸다.


작품이 포스트모더니즘 성향을 띄는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커트 보네거트가 1944년 드레스덴에서 겪은 최악의 폭격 - 이 폭격으로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서 죽은 사람보다 3만명이 더 많은 13만 5천명이 사망했다 - 을 20년이 지난 후에야 비현실적인 공상과학소설 형식으로 발표한 것과 같은 맥락일 것이다. 


천진하고 어리숙한 태도로 읊조리는 이야기들 사이에 아이의 죽음과 배우자와의 헤어짐, 아사마 산장 사건에 대한 통한, 미시마 유키오의 할복자살에 관한 소회 등이 읽힌다. 매우 슬픈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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