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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요나라, 갱들이여 - 개정판
다카하시 겐이치로 지음, 이상준 옮김 / 향연 / 2011년 11월
평점 :
품절
하나의 거대한 불꽃이 일본 열도를 휩쓸던 시기가 있었다. 다카자와 고오지는 그 시기를 이렇게 표현했다.
그 어렴풋한 먼 기억 속에서 사람들은 오로지 끝없이 달리고만 있었다. 남자, 여자, 그리고 학생, 노동자, 문화인, 기동대원까지. 전국 방방곡곡 그 어디에서나 사람들은 달리고만 있었다. 도망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뒤를 쫓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사람들은 그 무언가를 지향하듯, 그 무언가를 추구하듯, 또 그 무언가를 격렬하게 희구하듯 그렇게 달려갔을 뿐이었다... 일몬이라는 이 나라, 이 나라 전체가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질풍같이 질주하고 있었다. 이것이 '1960년대' 였다.
전공투의 시대. 그 시대가 1972년 아사마 산장에서 벌어진 연합적군사건으로 종언을 고한다. 14명의 동지를 숙청한 최악의 사건. 자본과 권력에 대항해 결집시킨 역량들이 무화되고, 모험적인 수단과 방법에 현혹당해 극좌를 치닫다가, 마지막으로 발산한 극도의 자기파괴적 행위.
작가 다카하시 겐이치로 역시 전공투 세대였다. 1951년 히로시마에서 태어난 그는 요코하마 국립대학 경제학부에 입학한 뒤 급진적 활동가로 가두시위 등에 참가하여 여러차례 체포된다. 1969년 11월에는 흉기준비집합죄로 체포되어 이듬해 초까지 유치장과 도쿄소년 감호소를 드나들다가 가정법원으로 송치, 1970년 2월에는 기소되어 8월까지 도쿄구치소에 수감되는 경험을 한다.
그가 수감된 시기는 전공투 운동이 소멸되어 가던 시기로 1970년 3월 31일에 적군파가 요도호를 공중납치하는 등 극좌적 방법이 등장했고, 1971년 6월에는 전국 전공투가 분열하였다. 동대 전공투와 활발한 토론을 벌였던 미시마 유키오가 돌연 방패회와 함께 육상 자위대의 동부 방면 총감부에 난입하여 자위대의 국군화를 외치며 할복자살하는 이벤트도 있었고, 분트 간의 테러와 살인도 있었다. 어쩌면 연합적군사건은 그 모든 것의 총괄이었는지도 모른다.
출소한 작가는 자신의 일생을 바쳤던 운동이 저물고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세상이 흘러가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는 철공소와 화학공장, 토건회사 등을 10여년간 전전한다. 그리고 "나는 이 컵이 좋아" 라는 단순한 한 문장을 하루 종일 쓰는 "실어증환자의 재활 운동"의 나날을 보낸다.
작품이 포스트모더니즘 성향을 띄는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커트 보네거트가 1944년 드레스덴에서 겪은 최악의 폭격 - 이 폭격으로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서 죽은 사람보다 3만명이 더 많은 13만 5천명이 사망했다 - 을 20년이 지난 후에야 비현실적인 공상과학소설 형식으로 발표한 것과 같은 맥락일 것이다.
천진하고 어리숙한 태도로 읊조리는 이야기들 사이에 아이의 죽음과 배우자와의 헤어짐, 아사마 산장 사건에 대한 통한, 미시마 유키오의 할복자살에 관한 소회 등이 읽힌다. 매우 슬픈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