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과 살인귀
구와가키 아유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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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몬과 살인귀』

구와가키 아유 (지음) |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 (펴냄)

우주를 수놓은 별은 스스로 밝게 빛나는 별과 그 빛에 가려 어둡게 지는 별로 나뉜다. 말하자면 고통을 주는 쪽과 받는 쪽으로.

- 『 레몬과 살인귀』 본문 201, 202페이지

대부분의 미스터리 소설들이 결말의 반전을 외친다. 미스터리 덕후들은 당연히 전개되는 반전을 예상하고, 작가는 심혈을 기울인 반전의 반전을 모색한다. 그.런.데! 여기, 예상되는 그 모든 반전과 반전의 반전을 넘어서는 거듭되는 반전으로 소리마저 지를 수 없는 미스터리 소설 『 레몬과 살인귀』가 있다.

'레몬'과 '살인귀'는 도대체 어떤 연관성이?

고바야시 미오가 살인마에게 잃은 아버지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 바로 레몬이었다. 아버지의 요리 '치킨 레몬 소테'의 재료.

십년전, 묻지마 살인사건으로 살해된 아버지와 그 후 실종된 엄마. 친척집을 전전하며 살아온 고바야시 자매에게 이어지는 불행은 끝이 없다.

범인과 미오, 십년전 일기의 시점이 동시에 진행되며 소설이 막바지에 이를 때까지 계속되는 사건의 범인의 실체를 짐작해 볼 수가 없다.

아버지를 죽였던 당시 14세의 사가미 쇼는 10년형의 수형생활을 마치고 출소 후 행방이 묘연하다. 동생 히나의 사망 후 미오의 주변을 맴도는 세 남자 기리야마, 나가시, 가누마 중 한 명이 신분을 감춘 나가미 쇼일거라고 추측했는데 이런 모든 예상을 뒤엎은 이들 각자의 정체와 나가미 쇼의 행적의 끝이 그야말로 '놀랠 노'자다.

단순히 범인을 추리하는 재미만 얘기하기에는 『 레몬과 살인귀』가 담고있는 메세지가 넘쳐난다.

똑닮은 쌍둥이 자매 미오와 히나에게 시소처럼 기울었던 아버지의 편애와 그로인해 레몬과 닭고기를 먹을 수 없는 트라우마로 남겨진 미오의 정서적 학대는 지금도 어딘가에서 육체적, 정신적 학대로 고통받는 어린 생명들을 안타깝게 한다. 그리고 방관이라는 또다른 형태의 학대.

날이 갈수록 심각해져가는 소년범죄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2001년에 일어났던 14세 소년의 친동생 손도끼 살해 사건은 『 레몬과 살인귀』의 나가미 쇼와 놀랍도록 닮은 모습이다. 살인 자체에 희열을 느끼는 사이코패스의 출현을 심심찮게 접할 수 있는 현대사회의 일원으로서 이런 뉴스를 접할때마다 소름돋는 공포심과 경악을 금할 수가 없다.

살인 사건의 유족에게 가해지는 2차 가해와 사망한 피해자를 둘러싼 억측과 입소문, 피해자들을 이용해 자신의 이득을 취하려는 몰양심의 이기주의 또한 너무나 많이 보아왔다.

내가 오를 수 없어 느껴야하는 고립무원의 외로움보다 너를 끌어내려 고통을 함께 하겠다는 약자들의 가해도 마찬가지다. 편법으로 축척한 부를 손가락질 하면서도 막상 같은 상황에 처하거나 기회가 주어지면 같은 선택을 하는 이들 역시 다를 바가 없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방관자였던 어머니와 히나가 피해자 유족으로서 정서적 학대 피해자였던 자신과 같은 처지가 되어 안도하고, 살해된 히나에게 씌여진 악녀의 오명을 벗기려는 미오의 노력이 피해자라는 같은 처지에 있고 싶었음을 알게되자 '과연 미오가 피해자이기만 했을까?'란 의문이 든다.

사가미에게 피해자였던 아버지가 미오에게는 가해자였듯이 우리는 누군가의 피해자이면서 또다른 누군가에게는 가해자일 수 있다.

재미와 현실의 경각을 동시에 꽉잡은 『 레몬과 살인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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