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죄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23
이언 매큐언 지음, 한정아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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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

이언 매큐언 (지음) | 한정아 (옮김) | 문학동네 (펴냄)

소녀의 오해가 불러온 젊은 연인들의 비극. 그리고 이를 되돌리려는 한 소설가의 평생에 걸친 지난한 속죄!

- 속죄, 표지글에서

어린이집에서 두 아이의 다툼끝에 한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울음의 이유를 물으니 자기가 친구를 때려서 (실수가 아님) 맞은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했는데 맞은 친구가 "괜찮아"라고 해주지 않아 울었다는 것이다. 그림책 지도사로 어린이집에 봉사를 다니던 선생님께 들었던 실제 사례이다.

잘못에 대한 진심어린 반성보다 가해자에게 면죄부처럼 주어지는 피해자의 용서가 강요되고 있는 사례는 생각보다 많다. 심지어 피해자는 용서하지 않았는데 가해자는 "더 높은 분께 용서받았다"고 하는 웃지 못할 일들도 있다. 피해자는 고통의 순간을 벗어나지 못하고 십 년 혹은 그보다 오랜 시간을 매분 매초 고통 속에서 죽음같은 삶을 사는데 가해자는 속죄를 통해 용서받았다며 평화를 얻는 모순이 생각보다 멀리 있지 않다.

속죄의 두 연인, 세실리아와 로비의 비극은 브라이어니의 상상력에서 시작된 오해에서 비롯되었다. 평생을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아갔다고 하지만 그 속죄는 누구를 위한 속죄일까. 결국은 저지른 잘못을 용서받고 싶은, 그로 인해 마음의 평화를 얻고 싶은 자신을 위한 것이지 않았을까.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많은 일들 중에 증명하기 어려운 진실보다 믿고 싶은 것을 진실이라 우기는 일들로 인해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다. 과연 남의 얘기이기만 할까.

브라이어니의 오해는 철없는 어린아이의 상상력이 보태어진 점도 있지만 자신이 속한 세계의 질서와 상황이 자신의 통제 아래에 있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향도 한 몫 했다. 사촌들과 함께 하기로 했던 연극 '아라벨라의 시련'의 주도권이 롤라에게 넘어가는 듯하자 연극을 없던 일로 해버리는 독단, 로비가 세실리아에게 전해달라던 편지를 먼저 뜯어보는 일, 롤라가 당한 숲에서의 비극을 위로하며 느끼는 우월감 등이 브라이어니의 이런 성격을 드러낸다. 엄마 에밀리는 롤라에게서 그토록 혐오하는 여동생 허마이어니의 모습을 보았지만 어째서 브라이어니에게서는 그런 모습을 보지 못했을까. 사람들은 저마다 제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일까.

브라이어니가 로비를 범인으로 몰아버린 자신의 죄를 속죄하겠다며 간호사가 된 일도 마냥 곱게 보아지지는 않았다. 속죄는 응당 피해자에게 가장 먼저 해야될 행동이 아닌가 말이다.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자신의 인생에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누리고 난 뒤 잃을 것이 거의 없을때 하는 속죄의 진정성을 믿어주어야 할까? 무거운 죄의식으로 남아있던 세실리아와 로비의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을 자신의 상상력과 소설 안에서 이어놓고 덜어놓은 브라이어니의 마음의 짐을 덜어주고 싶지 않다.

그는 그애를 용서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그가 입은 영속적인 피해였다.

- 속죄, 본문 338페이지

평생 누군가를 미워하고 증오하는 마음을 품은채 살아간다는 것. 그것은 육체가 병드는 것보다 훨씬 깊은 상처로 정신과 영혼이 병들고 삶이 피폐해지는 여러 이유 중 하나다. 로비의 인생은 외부로부터 베인 상처와 자신 내부의 비수로 베이는 결코 낫지 않을 상처를 가진채 살아가게 된 것이다.

모든 잘못에는 마땅히 반성과 속죄가 뒤따라야 한다. 그러나 그 속죄에 용서가 반드시 주어져야 할까?

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 목격자가 엉뚱한 사람인 로비를 가해자로 만들어버린 일은 로비의 인생 뿐만 아니라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의 영혼도 함께 파멸시켜 버렸다.

생각지도 못했던 범인의 정체는 '헉!'하는 입틀막의 반전을 주었다. 그리고 그 반전을 뛰어넘는 또 한번의 반전도!

미투로 세상이 뜨거울때 너도나도 경쟁하듯 했던 미투로 억울한 가해자가 되었던 무고한 사람들이 떠올랐다. 요즘 출간되는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의 신작들에 점점 기대감이 커진다. 감동과 재미, 소설과 현실의 접점이 빛나는 수작 <속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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