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길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19
그라치아 델레다 지음, 이현경 옮김 / 휴머니스트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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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길

그라치아 델레다 (지음) | 이현경 (옮김) | 휴머니스트 (펴냄)

어떤 의사도 그들의 질병을 고칠 수 없듯이 어떤 판사도 그들에게 이미 내려진 형벌보다 더 큰 형벌을 선고할 수 없을 것이다.

- 악의 길, 본문 351페이지

여성 작가로서는 두 번째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그라치아 델레다의 대표작 중 하나인 <악의 길>을 국내 초역으로 읽었다. 그라치아 델레다 소설의 특징은 사랑에 빠진 인물들이 본능을 억누르지 못하고 저지르는 죄와 그로 인한 죄의식이라고 한다. 죄와 죄의식, 인간의 본성과 이성의 첨예한 대립은 선과 악의 사이에서 시소를 타는 인간의 내적 갈등을 잘 표현했다.

피에트로 베누는 주인집 아가씨 마리아를 향한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배신이라는 상처를 입는다.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은 경제적인 성공임을 뼈아프게 느낀 그는 마리아의 남편 프란체스코 로사나를 살해하고 부유한 상인이 되어 끝내 자신의 사랑을 이룬다.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악의 길"을 걷는 자는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살인도 불사하는 피에트로 베누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 길을 걷는 자가 오직 그 한 사람 뿐일까?

베누를 사랑하고 있던 사비나를 질투하고 스스로의 오만함을 채우기 위해 베누의 사랑을 부추겼던 마리아가 그를 배신하고 애정 없는 결혼을 하면서 남편인 프란체스코를 속였던 일이라든가 그녀의 어머니 루이사가 거만함과 허영으로 딸을 조건 뿐인 결혼으로 몰아갔던 일, 모든 진실을 알면서도 침묵으로 방관했던 사비나, 베누의 내면에 있던 악의 씨를 적극적으로 부추기며 키웠던 안티네까지 "악의 길"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인간은 누구나 선택의 기로에서 결정을 하기전 크고 작은 갈등을 한다. 마리아가 사랑과 현실적인 조건 사이에서 결혼 상대자를 선택한 결과는 "이수일의 순정이냐, 권중배의 다이아몬드냐"로 고민하던 심순애의 갈등과도 닮았다. 배신한 연인에 대한 베누의 무서운 집착을 보면서는 "폭풍의 언덕"의 히드클리프가 떠올랐다.

사비나의 편지를 통해 전남편 프란체스코의 죽음과 베누가 부유해진 이유를 알게 된 마리아의 충격과 고민은 깊다. "사랑이냐 정의냐"를 두고 그녀의 갈등은 또다시 시작되었다.

그녀는 예전에 본, 유형지로 향하는 죄수들의 행렬을 기억했다. 그들은 함께 사슬로 묶인 채 둘씩 나아갔다. 그녀와 피에트로는 그 비참한 사람들과 비슷했다. 같은 쇠사슬에 묶여 같은 형벌의 장소로 향했다.

- 악의 길, 본문 351페이지

진실을 알게 된 마리아의 선택이 어떤 결정에 도달하더라도 마음의 형벌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마는 본능을 채우기 위해 이성을 배반하는 것만큼 큰 죄도 없을 것이다. 질투와 욕심에서 비롯된 크고 작은 죄는 넘치고 넘친다.

"당신에게 해를 입히고 싶지 않아요." 마리아를 향한 베누의 마음은 진심이었겠지만 누구보다 큰 해를 입은 것은 마리아였으니 악의 아이러니가 이런 것이리. 휴머니스트 세계문학을 통해 접하게 되는 국내 초역의 작품 중 시즌 5의 <악의 길>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듯하다. 결정적 한순간, 그 선택이 이끄는 삶의 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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