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 안인희 (옮김) | 푸른숲 (펴냄)
평전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은 묵직하다.
진지할 거 같고 어려울 거 같고 알아들을 수 없는 고리타분한 언어들로 지루함을 줄 거 같다. 지금까지 평전이라는 단어가 주는 이런 느낌을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은 완전히 깨버린다. '이렇게 쉬워도 되나? 이렇게 재미있어도 되나? 그리고 무엇보다도 거장이라 불리우는 한 작가의 인생의 치부를 이토록 솔직하게 담아내어도 되는가?'
<인간희극>이라는 제목의 소설 전집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사회소설이라는 평을 듣는다. 137편의 작품을 포괄할 예정이었다고 하나 실제 완성된 것은 97편이라고 하니 발자크 자신이 꿈꾸고 계획했던 자신의 인생만큼이나 계획대로 되지는 않은 모양이다.
실제 성은 발자크가 아니라 발싸라고 하며 귀족에게만 허락된 칭호 '드'를 스스로에게 부여한 발자크는 유년시절부터 결핍이 많은 아이였다고 느껴진다.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꿈에 대한 도전에도 응원한 번 받지 못하며 상상 속의 또 다른 자아 루이 랑베르와 교류하는 그의 외로움에는 가여움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극한의 궁핍에서 자포자기하는 모습을 보기위해 구석으로 스무살의 발자크를 몰아넣는 그의 어머니에게서는 책의 끝까지 모성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실력이 인정받고 유명한 작가가 되었을 때 허황된 꿈을 쫒기보다 자신의 재능을 더 값지게 펼쳤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귀족이어야 하고, 미모의 매력이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도 넘치는 재력을 소유한 젊은 미망인을 찾아 팔자를 고쳐보려는 발자크의 소원은 그의 평생의 꿈이 된다. 양다리도 모자라 세다리 네다리를 걸치며 사치와 허세에 젖은 삶은 오로지 '그녀'들의 재산으로 쪼들리는 빚에서 벗어날 꿈을 꾼다. 처음에 어머니 뻘의 베르니 부인으로 시작한 연애는 결국 아내로 맞은 한스카 부인에 이르기까지 돈 많은 여자를 찾아 헤매는 삶은 계속되었다. 어린시절, 어머니에게서 충분한 사랑과 지지를 받고 자랐다면 다른 이성관을 가지게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돈을 벌기 위해 진출한 연극계에서는 오히려 계속되는 실패로 빚만 늘었다. 잦은 사업 실패와 수집하는 물품을 보는 안목도 형편없었던 것을 보면 발자크의 재능은 소설을 쓰는 것 이외에는 없었던가 보다.
많은 여성들에게 구애의 편지를 받고 그 자신 또한 많은 여성들에게 구애를 했지만 진실한 사랑은 없었던 듯 싶다. 한스카 부인도 사랑 보다는 소유와 값싼 동정으로 그와 부부가 되었지만 속절없이 게속되는 발자크의 낭비에는 질려버린 듯 보인다.
길지 않은 인생이었지만 파란만장했다. 그의 죽음에 빅토르 위고의 조사에서만 발자크의 위대함과 품위가 있을뿐이었다.
그의 생애는 짧았으나 충만한 것이었습니다. 날짜보다는 작품이 더욱 풍부한 생애였지요. 아, 이 강력하고 절대로 지치지 않는 노동자, 이 철학자, 이 사상가,이 시인, 이 천재는 위대한 사람에게 주어진 운명대로 태풍과 투쟁으로 가득 찬 삶을 살았습니다.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 본문 664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