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버 - 어느 평범한 학생의 기막힌 이야기
프리드리히 토어베르크 지음, 한미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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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버

프리드리히 토어베르크 (지음) | 한미희 (옮김) | 문예출판사 (펴냄)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어떤 일이 우리 중 한 사람에게 일어난다면, 그건 더는 개인의 일이 아니야.

-<게르버> 본문 262페이지

중학생 때였나 고등학생 때였나 그때쯤 꽤나 인기 있었던 영화가 있었다. 흥행의 성공은 책으로 이어져 여주인공의 사진이 도서표지가 되어 책도 불티나게 팔렸었다. 바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이다. 제목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당시 청소년의 마음도 대변하는 듯했다.

<게르버>를 읽으며 그때 읽었던 그 책이 떠올랐던건 중년의 나도 한때는 게르버의 나이이었던 때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게르버의 고민과 분노와 걱정이 이해되는 것 또한 그때의 나도 같은 고민과 분노를 품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쿠퍼신이라 불리는 쿠퍼 교수의 선 넘는 권력 남용은 분노를 넘어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현실의 우리에게는 장영란법이 생기면서 껄끄러운 관계가 어느 정도는 개선되었지만 부담으로부터 완벽하게 해방된 것은 아니다. 물론 쿠퍼가 물질적인 무언가를 바라고 휘두른 권력은 아니다. 그러나 학교 안에서만 절대신처럼 사용할 수 있었던 권력을 상대적 약자인 학생과 학부모를 협박하기 위해 사용했다는 측면에서 그에게는 선생이라는 직함이 아까울 뿐이다. 본디 우리가 선생을 선생님이라 높여 부르는 이유는 나이를 불문하고 모르는 것을 가르쳐주고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는 귀한 일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쿠퍼가 자신이 맛 볼 승리감을 위해 차셰를 궁지에 몰아넣고, 열리지도 않은 교수회의를 들먹이며 게르버에게 구류 처분을 내리는 대목에선 있어서는 안될 선생을 실제로 이미 여럿 겪고 보아온 터라 분노까지 더해진 답답한 가슴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책임과 의무는 뒤로한채 학교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휘두르는 권력에 취한 쿠퍼를 보면서 '이런 류의 일들이 과연 학교만의 문제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직장과 이런저런 이름의 사회 단체, 정치적 집단 등 주변에서 부딪히게 되는 쿠퍼신은 의외로 적지않다.

같은 반 벤다의 죽음에도 친구들의 애도는 없었다. 슐라이히가 당한 모욕에도 친구들은 침묵했다. 소극적인 반항이 있었지만 불의에 대항할 힘을 모으지 않았고 쿠퍼라는 권력 앞에 술라이히가 항복하고 말았다. 피해자가 사죄해야 하는 모순이 과연 현실에는 없을까?

소설 <게르버>의 결말은 내게 충격이었다. 신문에 실린 몇 줄의 기사가 게르버의 선택에 대한 이유를 다 설명해주진 못한다. 어떤 한 사건을 1분도 안되는 시간에 뉴스로 보는 것과 1시간짜리 시사프로그램에서 보는 것이 다르듯이.

리자를 사랑했던 다른 남자들과는 다른 사랑을 주고 싶었던 게르버, 아버지를 사랑해서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던 게르버. 리자 또한 게르버를 사랑한다고 했지만 그를 이해하려하진 않았고 아버지도 아들을 아꼈지만 기성세대의 시각에서 아들을 재단했을 뿐이었다.

게르버의 최후 선택은 졸업시험 낙제에 대한 부담감이 아니라 그들의 기준에 맞춰진 학교와 세상에 합격할 의지와 용기를 잃었기 때문일 것이다.

단순한 학교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읽었다가 맞게된 현타는 고민과 반성을 하게 만들었다. 한때 게르버였던 사람, 현재 게르버 연령대의 자녀를 키우고 있는 사람 모두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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