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마의 시 2
살만 루슈디 (지음) |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펴냄)
지브릴의 현실과 꿈이 홀수 장과 짝수 장을 반복하며 살만 루슈디의 유머가 깃든 이야기는 계속된다.
비행기 추락 후 해변에서 노파 로사 다이아몬드에게 구조되며 기적적인 생존이라는 행운을 누린 지브릴과 살라딘의 그 후 행보는 전혀 달랐다. 꿈과 현실을 오가며 환각을 보는 지브릴은 정신분열증을 앓는다. 대천사 지브릴과 이름이 같은 지브릴 파리슈타는 꿈에서는 신탁의 대천사 지브릴이고, 현실에서의 지브릴은 영화감독인 시소디아의 차에 치이며 영화계로 복귀하는 계기를 맞지만 연이은 흥행 참패와 제작 실패, 살라딘의 복수에 휘말리며 알리와도 결별하는 등 지옥같은 경험을 한다.
로사 다이아몬드의 집에서 이민국 직원들에게 끌려가며 지브릴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살라딘은 자신의 요청을 무시했던 지브릴에게 복수심을 가진채 내면과 외면 모두 악마처럼 변해갔다. 하지만 그때의 지브릴이 환영을 보느라 자신의 말을 듣지 못했음을 알 리 없었다.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며 백인처럼 살고 싶었던 살라딘이 새로운 정체성을 위해 선택했던 아내 파멜라는 살라딘의 친구인 점피 조시와 연인이 되고 그의 아이를 임신을 하고 죽음 또한 그와 함께 맞았다. 살라딘이 그토록 벗어나려 애썼던 고향과 아버지와 아버지의 램프와 재산은 죽음을 앞둔 아버지의 병세로 대면하게 된다. 부정하고 싶은 정체성은 이름마저 살라후딘에서 살라딘으로 개명하게 만들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거부했던 예전의 자기 모습으로 점차 돌아간다. 그가 연기했던 천 개 하고도 한 개의 목소리 중 어느 하나도 그 자신이 아니었던 것처럼 자신의 정체성은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 없고 연기하듯 살아도 진짜 자신은 아니었던 것이다.
계속되는 살라딘의 불운에 연민이 아주 없지는 않다. 그러나 작가 살만 루슈디가 지브릴 파리슈타는 천사로 살라딘은 악마로 설정한 이유를 희미하게 알 듯도 하다.
온갖 변천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불변의 인간으로 남고 싶어한 지브릴과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며 동화되고 싶어한 살라딘을 선과 악이라는 극단적인 대조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지브릴의 꿈과 현실 중 살만 루슈디가 전하고 싶은 메세지는 현실의 이야기에 있는 듯 한데 오히려 꿈에서 언급된 부분이 작가의 인생을 위험으로 몰았다. 마호메드의 열 두 아내들의 이름을 창녀들의 이름으로 쓰고, 도망자 신세가 된 시인 바알이 열 두 창녀의 남편이 되는 상징성과 마훈드가 종교의 대중성을 위해 라트, 미나트, 우자 3 여신의 존재를 인정하려 했던 인간적인 고뇌와 갈등을 이해하지 못한 일부 종교인들의 극단성은 다시 생각해도 안타깝기 그지없다.
<악마의 시>는 쉬운 소설은 아니다. 그러나 매력적인 소설이라고는 단언코 얘기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