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시대를 기억하다 - 사회적 아픔 너머 희망의 다크 투어리즘
김명식 지음 / 뜨인돌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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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시대를 기억하다

김명식 (지음) | 뜨인돌 (펴냄)

기억이 기록으로 남지 않는다면 다양한 방향에서 흘러온 지류는 한 방향의 강한 본류에 묻혀 커다랗고 힘센 일반적인 정체성에 묻히거나 밀려나고 말 것입니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글, 사진, 영상, 조형물 등으로 기록하여 기억하는 것입니다.

-<공간, 시대를 기억하다>본문 106페이지

수백, 수천 년전의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시간들이 역사라는 이름의 기록으로 남으면 당대의 아픔은 후세에게는 단순한 '사실'로만 기억되기 쉽다. 망각과 오해, 왜곡없이 사실로 남기라도 한다면 오히려 다행이려나?

라제통문에 대한 오해가 그러하다. 삼국시대의 역사만을 떠올리기 십상이었던 라제통문의 실상은 일제강점기 자원 수탈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은 책의 시작부터 충격에 가까웠다. 노근리 쌍굴다리를 소개하며 인기 드라마 오징어게임을 대입시켜 설명하니 이해도는 더 높아졌다.

외국의 경우에는 사고와 사건으로 희생당한 이들을 추모하는 공간이 도심 한 가운데나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곳에 건립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우리는? 혐오시설이라며 지역 내 건립에 반대하고 도심 한복판 노른자 땅의 땅값을 계산하느라 외진 곳에서 잊혀지는 곳이 많다. 타인의 고통보다 나의 손해가 더 크게 느껴지는 이기심 속에 잊혀지며 다시 없어야 할 슬픔은 그렇게 반복되었다. 1971년 대연각 호텔 화재, 1993년 서해 훼리호 침몰 사고, 1994년 성수대교 붕괴, 1995년 삼풍 백화점 붕괴 그리고 2014년 세월호 침몰까지. 피할 수 있던 사고가 아니라 처음부터 생기지 말았어야 할 인재다. 반복되는 사고는 이기심이 빚어낸 망각도 한 몫 했다.

독립운동가의 동상은 뒷골목으로 밀려나고 조선총독부 관료들의 휘호는 보존되고 있는 사실을 지하의 독립운동가들이 안다면 피를 토할 노릇이다.



 

삼일절을 삼점일절이라 읽는 아이들이 생겨나고 있다. 뼈아픈 역사가 잊혀지는 가운데 일상으로 끌어오려는 노력이 빛나는 곳도 있다. 바로 안국역이다. 이런 아이디어가 번뜩이는 장소를 일상에서 더 많이 보고싶다.

건축의 내용은 건축물의 표면이 아닌 공간이라는 말이 쉽게 와닿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것을 시각적으로 한번에 이해시켜 주는 건축물이 있다.




한가운데 심초석과 가장자리 기초석만 남은 황룡사 9층 목탑을 비어있는 공간으로 경주타워가 부활시킨 것이다.

도시의 화려한 야경보다 더 아름다운 이 장관을 보러 언젠가는 꼭 가보리.

완벽했다.

지식과 재미, 반성과 감동. 모든게 녹아 있는 책을 만났다.

아픈 역사를 꺼내어 감동과 비애를 억지로 쥐어짜내는 그런 책들과의 비교를 감히 거부한다. 본격적으로 읽기 전에 차례를 훓어보며 조심스럽게 내용의 흐름을 짐작했던 마음은 몇 페이지를 읽으며 모두 사라지고 오로지 '저 장소에 직접 가보고 싶다'는 열망만을 남겨 놓았다. 뇌와 영혼과 마음이 모두 배부른 독서였다.

<공간,시대를기억하다>는 <건축은 어떻게 아픔을 기억하는가>의 후속편이라고 한다. 순서는 바뀌었지만 이 감동 그대로 전편을 읽으며 이어 가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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