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희들 무덤에 침을 뱉으마
보리스 비앙 (지음) | 이재형 (옮김) | 휴머니스트 (펴냄)
중요한 건 오직 한 가지, 복수하는 것, 그것도 가장 완전한 방법으로 복수하는 것이다.
-<너희들 무덤에 침을 뱉으마>본문 83페이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당해야 하는 차별과 부당함.
외국의 경우 불심검문에 정지를 요구받고 세워지는 차량의 대부분은 흑인 운전자이며, 반항이 없었음에도 과잉진압으로 구타당해 숨지는 일이 벌어지는 안타까운 사건들도 낯설지 않다. 인종차별이라고 하면 백인과 흑인, 흑인과 백인의 갈등을 떠올리기 쉽지만 인종차별의 사례들은 흑인과 백인들만의 이야기일까? 1992년 LA에서 일어났던 폭동의 최대 피해자는 엉뚱하게도 한인교포들이었고, 21세기 대한민국의 수많은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 차별과 따돌림을 받는다. 장소와 시간의 차이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절대적으로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휴머니스트에서 4개월마다 5권씩 시즌제로 출판되는 시리즈가 벌써 시즌 3가 되었다.
시즌1은 '여성과 공포', 시즌 2는 '이국의 사랑', 새로운 시즌의 출간을 고대하며 기다린 끝에 겨울을 맞이하며 만난 시즌 3의 주제는 '질투와 복수'다. 시즌 3의 5권 중 가장 먼저 읽은 도서는 자극적인 제목이 눈길을 사로잡은 <너희들 무덤에 침을 뱉으마>였다.
흑인의 피를 가졌지만 백인들만큼이나 흰 피부를 가졌던 소년. 소년은 백인 소녀를 사랑했고 그래서 소녀의 아빠와 오빠에게 죽임을 당했다. 백인 소녀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했던 흑인 소년을 위한 정의는 없었다. 그래서 소년의 형, 리 앤더슨은 복수를 결심한다. 하지만 소년의 형이 행하는 복수의 방법과 대상에 공감을 하기는 어렵다. 동생을 죽인 이들이 백인이라고 해서 세상의 모든 백인이 복수의 대상은 아니지 않은가. 1990년대에 세상의 부조리에 대한 복수라며 불특정한 사람을 대상으로 살인과 엽기행각을 벌인 지존파의 범죄와 무엇이 다른가.
리의 십대 백인 소녀들과의 문란한 성적 유희도 단지 그녀들을 더럽히고 싶고 정복하고 싶다는 비뚤어진 복수의 일부였으며, 애스퀴스 자매를 죽이고 말겠다는 살의 역시도 그러하다. 진과 루에게 그녀들이 죽어야 하는 이유를 말해준들 리의 동생의 죽음에 직접적인 관계가 전혀없는 그녀들로서는 그야말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아닌가.
소설 초반부에 보이는 리의 비이성적 행동들과 악의의 이유를 알지 못했을 때에는 진심이라고는 전혀없는 타인과의 관계에 의아심이 있었지만 동생의 죽음이라는 그의 사연을 알고나니 리의 모든 행동이 복수심이었다는 것은 알겠다. 그러나 복수를 위한 복수, 복수심에 먹혀버린 진짜 복수는 어디에서 길을 잃었나.
자극적이고 과격한 표현들과 상황 설정 등이 <너희들 무덤에 침을 뱉으마>를 베스트셀러로 만들어 주기도 하고, 판매금지와 벌금이라는 양극단적인 반응을 이끌어낸것 같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을 차별과 복수. 바로 그 차별과 복수가 훨씬 더 자극적이고 과격하진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