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르미날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16
에밀 졸라 지음, 강충권 옮김 / 민음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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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르미날 1

에밀 졸라 (지음) | 강충권 (옮김) | 민음사 (펴냄)

하지만 이제 광부는 땅속에서 깨어나고 진짜 씨앗처럼 땅에서 싹트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아침 들판 한가운데에서 그 씨앗이 싹터 오르는 걸 보게 될 겁니다.

-<제르미날1> 본문 255페이지 중에서

"유전무죄, 무전유죄" 탈주범 지강헌이 남긴 비수같은 말, 사형수들의 대부라 불리는 삼중스님이 집필하신 저서 "가난이 죄는 아닐진대 나에겐 죄가 되어 죽습니다",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등 많은 것들이 <제르미날1>을 읽는동안 연상되었다. 옛말에 '개천에서 용난다'고 했지만 '개천에서 난 용은 개천으로 돌아간다'는 현실버전의 변화된 속담에 마냥 웃을 수가 없다. 시대의 발전과 변화에도 생겨나는 빈부는 그 격차가 더 커질뿐이다.

르 보뢰 탄광에서의 몇 대를 거쳐오는 뼈빠지는 고생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매일매일의 끼니를 걱정해야하는 탄광촌의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뼈빠지는 고통만이 남을 뿐 처한 현실을 벗어날 실낱같은 희망은 그 어디에도 없다.

잘자는 것만으로도 넘치게 사랑받는 세실과 달리 탄광촌의 어린 소녀들은 새벽 일찍 일어나 집안일을 하고 탄광으로 고된 일을 하러가도 굶주림과 매질, 사내들의 욕정의 대상이 될 뿐이다. 무엇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갖기는 커녕 그런 꿈을 가져볼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채 어린 나이에 순결을 잃고 아이를 낳아 키우며 대물림되는 처절한 가난 속에 파묻힌다. 탄광촌에는 환한 낮이 없다. 붉게 타오르는 태양이 없다. 지하 갱도 안의 어두운 낮과 현실처럼 캄캄한 갱도 밖의 밤 뿐이다. 그들이 캐는 석탄처럼 그들에게 주어진 세상은 온통 검다.

아이를 낳아 키우며 그 아이들을 밥벌이 도구로 삼는 대대로 이어지는 비참함, 혼거를 하며 서로의 알몸을 보는 것도 보이게 되는 것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모습, 사생활이 허락되지 않는 환경에서 성에 일찍 눈뜬 그들을 도덕적으로 지탄할 수가 없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아니 버텨내는 그들에게 한조각 빵보다 더 귀한 것이 있으랴. 야만적 자본주의에 항거하며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고 공제 조합을 설립하지만 에티엔, 수바린, 라스뇌린의 뜻은 모아지지 않는다. 에티엔을 사회주의에 눈 뜨게 만든 플뤼샤르도 광부들을 인터내셔널에 가입시키기 위해 이들의 처지를 이용할 따름이다. 광부들의 파업을 대하는 고용주들의 태도도 겉으로는 비슷해 보이지만 각자의 속내는 전혀 다르다. 노동자들의 파업마저도 드뇔랭의 광산을 집어삼킬 기회로 여기는 엔보 사장처럼 같은 상황에서도 각자의 이해관계는 전혀 다른 것이다. 결혼생활 내내 아내에게 거부당하며 욕정을 채울 수 없는 엔보 사장은 광산촌의 자유로운 육체적 사랑을 부러워하며 빵을 요구하는 그들을 비웃는다. 엔보 자신은 사랑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굶주릴 수 있다고 여기지만 인간은 자신이 갖지 못한 것에 더 큰 아쉬움을 느낄 뿐이다.

혹한의 겨울에 르 보뢰에 도착한 이방인 엔티엔은 이 척박한 땅에 싹을 틔우는 거름이 되어줄까? 이 파업의 끝은 이들에게 어떤 결말을 가져다 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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