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함과 분노 열린책들 세계문학 280
윌리엄 포크너 지음, 윤교찬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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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함과 분노

윌리엄 포크너 (지음) | 윤교찬 (옮김) | 열린책들 (펴냄)

난 처음과 끝을 봤단다.

시작을 봤는데, 이제 끝도 봤단다.

-<고함과 분노> 본문 448페이지

부모의 물리적 부재는 아이에게 채우기 어려운 공허감을 주지만 그에 못지 않게 정신적, 정서적 부재도 결핍을 만든다. 시대의 흐름에 동화되지 못하고 과거의 영광에 집착하며 과거의 시간에 머무르는 콤슨 가의 몰락은 작게는 개인의 파괴, 크게는 미국 남부 가정의 파괴라는 상징을 보여주었다.

<고함과 분노>는 4개의 장으로 각기 다른 화자가 이야기를 펼친다. 마지막 장은 3인칭으로 서술되지만 콤슨 가에서 평생을 함께 한 하녀 딜지의 시선에서 진행된다. 첫 장은 콤슨 가의 막내 벤지가 화자로 등장하는데 시간의 흐름이 현재와 과거로 들쑥날쑥 점핑하며 물음표 가득한 시작을 한다. 하지만 벤지의 정신연령이 3살 정도에 머물러 있고 말을 할 줄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나니 소설의 구성은 매우 매력적이었다. 윌리엄 포크너의 <고함과 분노>를 읽으며 '버지니아 울프'를 떠올린 것은 나 뿐이었을까? 떠오르는 생각의 흐름을 따라 시공간을 점핑하는 <고함과 분노>는 의식의 흐름이라는 기법을 사용한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들을 생각나게 했다.

<고함과 분노>의 4개의 장에서 화자는 각기 다르지만 이들이 공통적으로 얘기하고 있는 사람은 콤슨 가의 장녀이자 둘째인 캐디이다.

지능도 낮고 말도 할 수 없지만 벤지는 냄새로 모든 것을 안다. 벤지에게 누나 캐디는 어머니 캐롤라인이 채워주지 않은 모성을 보여주는 사랑 그 자체다.

엄마 캐롤라인은 콤슨 부인으로 불리우기 보다는 처녀적 성인 배스콤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벤지에게 친정오빠의 이름을 따서 처음 지어주었던 모리라는 이름을 정신지체가 있다는 이유로 빼앗아 벤지로 개명할 정도로 결혼전 자신의 가문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자기 연민에 빠져 살며 제이슨 만을 자식으로 인정하는 엄마와 술에 젖어 사는 무능한 아버지 사이에서 콤슨 가 자녀들의 몰락은 불 보듯 뻔했는지 모른다.

장남 퀜틴에 대한 콤슨 씨의 기대와 희망은 퀜틴의 자살로 무너진다. 퀜틴은 여동생 캐디에 대한 마음을 근친상간으로 여기며 괴로워 하지만 이들이 직접적으로 사랑을 나누었다는 대목은 없다. 아마도 가족간의 관계와 애정에 갈증이 있던 퀜틴이 무분별한 성생활을 하는 캐디를 보호하지 못했다는 자책과 함께 가족애와 이성애를 혼동하지 않았을까하는 개인적인 생각을 해본다.

캐디의 이미지가 벤지에게는 엄마를 대신한 모성애, 퀜틴에게는 이루어지지 못한 가족애라면 제이슨에게는 타락한 매춘부일 뿐이다. 돈만 밝히는 제이슨이 악당처럼 나오지만 그의 상처와 피해의식이 보이는 듯 하다. 캐디와 허버트와의 결혼으로 자신에게 보장되었던 탄탄한 직장이 캐디의 혼전 임신이 들통나 없던 일이 되어버리고 콤슨 가의 농장은 형 퀜틴의 학비로 팔아버린 마당에 형과 아버지의 죽음으로 가족을 부양해야하는 책임만이 남았기 때문이다. 마차를 몰던 러스티의 장난에 울부짖는 벤지를 위해 제이슨이 보인 결말부의 행동은 그의 내면에는 그가 했던 말과는 다른 따뜻함이 있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리고 엄마처럼 콤슨 가의 아이들을 길러낸 딜지. 시작과 끝을 모두 보았다는 그녀의 말이 메아리처럼 가슴에 맴돈다. 출판사마다 제목이 다른 The Sound and the Fury. Sound가 뜻하는 것이 번역 과정에서 온전히 전해지지 않기 때문인가 보다. '아무 의미없는 괴성', 윌리엄 포크너는 그것을 의도했다는데 분노를 표출하는 콤슨 가 4남매의 고함은 저마다 달랐다.

도입부인 첫 장은 어려웠지만 뒤로 갈수록 몰입감과 매력이 넘치는 소설이다. '엄치척' 하고 싶은데 왜 엄지가 두개 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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