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미하라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 문지원 (옮김) | 블루홀6 (펴냄)
우스개 소리로 "진상 질량 보존의 법칙"이라는게 있다. 어딜 가든 일정 비율의 진상이 있다는 뜻이다. 어느 곳에선 감당하기 어려운 왕진상 하나가 집단의 분위기를 망치고, 또 다른 어느 곳에선 고만고만한 진상 여럿이 왕진상 하나의 몫을 해낸다. "어? 여기는 진상이 없네?"하는 곳에선 본인이 진상이라지, 아마?
진상뿐이랴! 어느 집단, 어느 사회에서나 선의를 가진 사람, 악의를 가진 사람이 일정 비율을 유지한채 세상은 돌아간다.
악의를 가진 이들의 말과 행동은 뚜렷한 목적이 있는 것보다 행위 그 자체가 목적이 될 때가 많다. 어느 연쇄살인자의 자백 중 살인 목적이 복수나 원한, 치정이 아닌 살인 그 자체였다는 것은 매사 살얼음판을 걷듯 조심하는 수 밖에 없다는 사실에 익명의 다수들과 살아가야 하는 현실이 공포를 넘어 서글프기까지 하다. 겉모습만 보고 섣불리 판단하기에는 선량한 얼굴을 하고 다가오는 악인들도 있기에 누군가의 호의를 순수하게만 받아들일 수 없다는 비애도 있다.
전학생 시라이시의 왠지모를 기분 나쁜 시선과 도를 넘어선 관심에 간바라 선배의 친절이 구원의 동아줄 같았던 미오에게서 "사람 겉만 보고 모른다"는 뻔하지만 우리가 자주하는 실수를 본다.
시라이시가 알고보니 수호자이고 여학생들에게 선망의 대상인 간바라 선배가 알고보니 악인이었다는 사실이 결말에 이르러 밝혀질 줄 알았는데 초반부에 홀딱 드러나며 충격을 주었다. "아니! 이걸 벌써 드러낸다고? 후반부에 도대체 뭐가 있는데?"
시라이시가 전학오며 펼쳐지는 제1장의 이야기와 전혀 다른 이야기들로 2장, 3장이 계속되는 듯 보였지만 제4장에 이르자 모든 이야기는 뒹굴던 구슬에 줄이 꿰이듯 착착 연결되며 연결되는 부분마다 입을 다물 수 없는 반전과 충격의 연속이다. 이쯤에서 작가의 이름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와~!! <야미하라>가 츠지무라 미즈키의 첫 호러 장편 미스터리라고? 왜 파격적인 변신이라고 했는지 알겠다. 햐...이 정도 스토리텔링이라면 본격적으로 호러 미스터리 작가로 방향을 잡아야 하는 거 아닌가? 이 변신 나는 찬성일세. 적극 찬성!
사람이 사람을 해치고 상처주는데 육체적인 폭력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몇 마디 말로도 누군가의 인생을 나락으로 내던지는 현실은 온라인 속 세상에서는 흔하디 흔한 일이 되어버렸다.
강자만이 약자를 억누르고 가스라이팅하는 것도 아니다.

애니메이션의 "장화신은 고양이"는 누군가를 이용할 때마다 커다란 눈망울의 애처러운 표정으로 부탁을 거절하면 마치 나쁜짓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 역시도 약자의 모습으로 위장한 가스라이팅이다.
<야미하라>에서는 존재 자체가 존재의 이유이고 행위 자체가 행위의 목적인 악이 등장한다. 자신만을 의지하게 만들어 타인들과의 교류를 끊거나 "나도 그래"라며 진심이라고는 1도 없는 가짜 공감, 의도된 친절 등으로 외로워 누구라도 잡아보고 싶은 사람이나 심약한 사람들에게 그 마수를 뻗는다.
가족 구성원의 결원을 대체자로 메워가며 타인의 정신을 지배한다는 그들. 그들을 쫒는 시라이시의 사연은 계속되는 반전에 찡하게 추가된 슬픔이었다. 작은 사건 하나하나 모두가 구슬을 꿰는 핵심이니 놓치지 않고 읽는다면 분명 이 여름 최고의 호러 미스터리를 만날 수 있으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