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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54
볼테르 지음, 이봉지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평점 :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볼테르(지음) | 이봉지(옮김) | 열린책들 (펴냄)
나는 두 가지 중에서 뭐가 더 불행한 건지 모르겠어요. (중략)한마디로 말해서 우리가 당한 모든 끔찍한 일들을 다 당하는 걸까요, 아니면 이렇게 여기서 아무것도 안 하고 빈둥거리는 걸까요?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191페이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사람을 두고 흔히들 '낙천적이다, 긍정적이다'라고 한다. 부정적인 시각과 태도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 보다는 긍적적인 자세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타인의 평가와 호감이 높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계속되는 시련과 불운에 그런 마인드를 꾸준히 유지하기는 쉽지 않고, 오히려 노를 모르는 예스맨의 긍정적인 면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보기 어렵지 않은 요즘이다. 도대체 어디서 어디까지를 긍정적인 마인드와 낙관적인 철학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런 마인드와 철학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개인이 가지고 있는 인간성일까, 주변의 환경일까?
흔히들 가난한 사람들은 순박하고 이웃간에 서로 그 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까지도 알 정도로 사이좋으며 가족간의 정도 끈끈하리라 여긴다. 반대로 부자들은 심술맞고 이른바 싸가지가 없다는 선입견을 가진다. 하지만 오히려 세상의 시련을 겪어보지 않은 그들은 상대적으로 더럽고 치사한 꼴을 당해본 일이 없어 사람들의 어두운 인간성을 잘 몰라 순수한 면이 있다고 하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그 인터뷰를 했던 당사자도 재벌들 틈에 섞여 함께 일을 해보기 전까지는 남들과 같은 선입견을 가졌었노라는 고백도 함께였다. 환경과 인간성은 상호 긴밀한 관계임이 틀림없다.
캉디드는 스승의 가르침대로 현재의 모든 것은 신의 뜻 안에서 최선의 상태라는 믿음을 가졌다. 자라온 곳에서 쫒겨나는 것을 시작으로 계속되는 불운에 도저히 희망을 가질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자기보다 더 한 불운을 겪은 사람들을 보며 위안을 얻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 위로는 되겠지만 상황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낙관적인 태도와 철학은 인생을 살아가며 필요한 요소이지만 캉디드의 낙관적인 생각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건강한 낙관주의로 보여지지 않는다. 진정한 낙관주의라면 처해진 불행한 상황을 극복하고 도약을 꿈꿔보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캉디드의 낙관주의는 타인의 더 큰 불행과 견주어 다행이라 여기고 상황으로 부터 도피하는데 그친다.
세상은 최선의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팡글로스의 가르침과는 반대로 모든 최악의 상황을 맞닥뜨리며 여러차례 속고 사기당하며 살인도 하게되는 캉디드. 그토록 사랑했던 여인 퀴네공드와 마침내 결혼하게 되고 함께하게 되었으니 꿈은 이루어졌다고 낙관적으로 봐야할까?
결국 그에게 남은 것은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부양가족이다.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지않고 냉철하고 비판적으로 바라보던 마르틴만이 불행을 토로하지 않고 현실적인 태도를 고수한다.
낙관주의는 무조건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음담패설에 기대어 익살과 풍자로 가볍게 낙관주의에 대해 얘기하고 있지만 캉디드의 삶을 통해 던지는 볼테르의 질문은 전혀 가볍지 않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최선이라 믿는 것이 진정한 낙관주의일까?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라고 말하는 강연과 자기계발서가 늘어나는 추세인 요즘, 무조건적인 트렌드를 쫒아가기 보다 스스로의 인생철학을 되짚어보고 세우는 계기를 가져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