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 열린책들 세계문학 246
케이트 쇼팽 지음, 한애경 옮김 / 열린책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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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

케이트 쇼팽 (지음) | 한애경 (옮김) | 열린책들 (펴냄)

지난 세월이 꿈만 같아요. 계속 자면서 꿈을 꾼 것 같아요. 하지만 잠에서 깨어나면 꿈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죠. 아, 그래요! 평생 망상에 사로잡혀 바보처럼 사느니 고통스럽더라도 결국 깨어나는 게 낫겠죠.

-각성 본문 234페이지

영화 매트릭스에서 모피어스는 네오에게 알약 두 개를 보이며 선택을 요구한다. 하나는 진실을 알게 되는 약이고, 하나는 영원히 진실을 모른채 꿈을 현실이라 믿으며 살아가게 되는 약이다. 꿈보다 현실이 더 아프고 참혹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과연 어느 선택을 하게 될까.

부유한 상류층의 아내로 살아가는 에드나는 경제적인 어려움이 없고 오히려 주변에 그 넉넉함을 나눌 수 있을 만큼의 풍요가 있다. 하지만 에드나 자신 역시도 남편에게는 자랑거리로 여길만한 소유물 중 하나일 뿐이고 관습에 따르는 현모양처로 사는게 당연한 여성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스스로의 힘으로 무언가를 이뤄본 적 없던 그녀가 그토록 어려워 하던 수영 배우기를 성공하고 느끼는 성취감은 로베르에 대한 사랑을 깨달음과 함께 자신의 내면도 깨닫는 계기가 된다. 말하자면 각성 전의 삶은 꿈이고, 자신의 내면을 깨닫고 난 후의 삶은 고통이란 얘기다.

현모양처로서의 완벽함을 살아가는 라티놀 부인과 자기주장이 강한 라이즈 양과 가깝게 지내지만 에드나는 이 두 여성의 삶을 동경하지도 닮으려 하지도 않는다. 닮아가려 했다면 그것은 아마도 진정한 의미의 각성은 아닐테다.

에드나는 늦은 밤 집안으로 들어오라는 남편의 요구를 거절하는 것을 시작으로 그림을 그리고 작은 집으로 이사를 감행하는 등 스스로가 원하는 삶을 살아보려 한다. 사랑하지만 사회적인 관습을 깰 수 없는 로베르와의 사랑도, 자유분방한 연애주의자인 아로뱅과의 만남도 에드나가 느끼는 고독감을 채워주지는 못했다.

자기 자신이 된다는 것.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완성될 수 없는 것인가? 남편 퐁텔리에의 보호와 체면, 경제적인 풍요로 부터 벗어나 자기 자신이 되고 싶었던 그녀지만 로베르와의 사랑이 설령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울타리만 바뀌는 것은 아니었을까.

한적한 해변가에서 꿈꾸듯 들었던 로베르의 노래 <Ah! si tu savais (아! 그대가 알고 있다면)!>은 로베르를 만나지 못하는 시간 안에서도 에드나로 하여금 끊임없이 그를 추억하게 한다. 햇볕의 나른한 따뜻함과 잠시 누려본 해방의 행복감이 그 사랑을 더 증폭시켰음에 틀림없다.

남성 작가의 시각에서 쓰여진 <안나 카레니나>와 <마담 보바리>와는 달리 <각성>에서는 에드나의 사랑을 불륜이라 지탄하지 않는다. 단지 그녀가 스스로를 찾아가는 과정에 사랑이 가미된 정도랄까.

전통과 편견이라는 평원 위로 날아오르려는 새는 강한 날개를 가져야 해요. 약한 새들이 상처 입고 지쳐 날개를 퍼덕이며 다시 지상으로 낙하하는 모습은 서글픈 광경이에요.

-각성 본문 174페이지

결국 에드나의 날개는 너무 약했던 걸까. 해변에서 멀리 헤엄쳐 나아가며 그녀가 멀어지고 싶었던 것은 진정 무엇이었을까? 남편? 관습? 로베르? 어쩌면 닿을 수 없는 그녀 자신이었을지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에드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계속되는 꿈이려나, 고통스럽더라도 깨어나길 원하게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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