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자식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04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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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자식

이반 투르게네프 (지음) | 연진희 (옮김) | 민음사 (펴냄)

대한민국의 중2 학생들이 두려워 북한에서 제 2의 남침을 하지 않는다는 우스개소리가 있을 정도로, 그리고 사춘기라는 엄연한 정식 명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2병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십대 중반의 아이들과 그 부모 세대간의 갈등은 생각보다 고단하다. X세대로 시작된 신세대의 대표 명사는 여러 이름을 거치면서 요즘은 MZ세대라 불리운다.

세대 차이, 세대 갈등은 남의 얘기, 먼 얘기인 줄만 알았는데 막상 내 아이가 중2가 되면서 시작된 감정의 골은 별거 아닌 일로도 아슬아슬 줄타는 하루의 연속이다. 하지만 이런 세대 갈등은 우리에게만 있는 일도 아니고 사춘기 아이들과 그 부모에게만 한정된 일도 아니다. 직장에서 업무적인 관계와 업무의 연장이라고들 하는 회식 자리에서도 세대 갈등을 토로하는 기성 세대와 신세대의 한숨섞인 얘기가 자주 들려오기 때문이다.

이반 투르게네프의 아버지와 자식에서도 이런 세대 갈등이 그려진다. 아르카지의 큰 아버지인 파헬과 아르카지의 친구이자 정신적인 스승이라 불리우는 바자로프의 팽팽한 신경전을 통해 그 갈등을 보여주고 있다. 귀족에 대한 반감, 낭만과 사랑에 대한 비아냥, 농노들과 가깝게 지내면서도 그들을 조롱하는 바자로프는 니힐리스트로 살아가는 듯 보이지만 그의 행동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면 그 어느 누구보다도 낭만에 젖어있는 사람임을 쉽게 눈치챌 수 있다. 오진초바에게 금새 빠져버린 사랑과 페네치카의 아들 미챠를 치료해 주고 진료비로 붉은 장미 한 송이만을 바랐던 일, 무분별한 키스의 대가로 치뤄야 했던 파헬과의 결투에서 상처입은 파헬을 치료해 준 일 등이 그러하다. 늘 누군가를 비판하고 조롱하던 바자로프 자신이 보이지 않는 곳에선 농노들의 조롱거리였음을 알았다면 그렇게 쉽게 단정적으로 다른 이들을 판단하고 비아냥거릴 수 있었을까?

니힐리즘은 기성의 가치 체계와 이에 근거를 둔 일체의 권위를 부인하고 허무의 심연을 직시하며 살려는 철학적 견해라고 한다. 바자로프는 입으로만 니힐리즘을 따랐을 뿐 행동은 그러하질 못했다. 그에게 허무했던 것은 죽음 뿐이었던 듯하다. 이토록 허무한 죽음이라니... 그러나 죽음 앞에서도 사랑하는 여인을 그리워하며 만나보길 소원한 행동은 끝까지 니힐리스트답지 않다. 사랑을 고백하며 죽어가는 허무주의자라니, 오히려 낭만주의자에 가깝지 않은가! 이런 괴리가 아르카지로 하여금 조금씩 바자로프에게서 멀어지도록 하지 않았는가 싶다. 자신보다 어린 페네치카를 아버지의 새 아내로 거부감없이 받아들이는 아르카지의 모습은 기성세대의 잘못을 비판하지 않고 포용하는 화합을 말하는 듯하다.

글쎄요, 아빠. 사람이 어디서 태어나느냐는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아버지와 자식 23페이지

도입부에서 무심코 넘겼던 아르카지의 대사가 완독 후에야 의미있게 들린다. 훗날 자신과 아버지의 결혼이 동시에 치뤄지는 것 또한 기성 세대와 신세대의 화합과 새로운 출발을 보여주려는 작가의 의도가 있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파헬과 바자로프의 대결 구도로 그려지는 세대 갈등도 흥미롭지만 바자로프 개인 안에서 벌어지는 낭만과 허무의 대립도 <아버지와 자식>을 완독하게 만드는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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