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의 장원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8
윌리엄 허드슨 지음, 김선형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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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의 장원 /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시즌2

윌리엄 허드슨 (지음) | (옮김) | 휴머니스트 (펴냄)

고립의 기준은 자의일까? 타의일까?

케이블 티비의 채널을 돌리다보면 3~4채널에 한 두번은 꼭 방송중인 '나는 자연인이다'가 눈에 띈다.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나 깊은 산속 오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짧지 않은 세월을 홀로 살아온 자연인들이지만 제작진들과 함께한 몇일 간의 동거 끝에 헤어짐을 맞이하는 그들의 표정에서 '이제 다시 혼자일 수 있다'는 자유와 해방감보다는 홀로 남겨질 외로움에 이별을 아쉬워 한다는 것을 발견하기는 어렵지 않다.

높은 고탑에 갇혀 지내던 라푼젤도 우연히 찾아든 플린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곳을 벗어날 꿈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었을까?

녹색의 장원에서 새소리를 내며 동물들과 친구가 되어 살아가는 리마. 보이지 않는 경계를 넘어 드나드는 아벨을 만나기 전까지는 고립감도 외로움도 알지 못했던 그녀다. 루니의 부족이 리마를 악으로 규정한 이유는 그녀로부터 저주나 보복을 당해서가 아니다. 더 많은 것을 죽이기 위해 더 깊은 숲으로 들어가고 싶은 욕망이, 녹색의 장원에서는 사냥을 할 수 없다는 금지된 행위가 동물들과 벗삼아 살고있는 어린 소녀를 죽여야하는 대상으로 만든 것이다.

윌리엄 허드슨의 <녹색의 장원>은 백인 남자 아벨과 숲속의 신비로운 소녀 리마의 환타지스러운 사랑을 몽환적으로 그려내고 있지만 사랑이야기의 다른 한 편에서는 힘의 겨루기가 끊임없이 줄다리기를 한다. 이기기 위해서, 복수하기 위해서 이뤄지는 야비함과 거짓말은 문명인인 아벨과 그가 야만인이라 불렀던 루니 부족과 마나가 부족 모두에게 해당된다. 이방인이었던 자신을 받아주었던 루니 부족을 배신하고 리마의 숲을 나의 숲이라 부르며 백인의 우월의식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 아벨은 본인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가는 곳마다 죽음이 드리운다. 리마와 누플로에게 자행된 잔인함을 야만이라 하면서 아벨 자신 또한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마나가를 불러들여 루니 부족에게 죽음을 인도한다.

베네수엘라에서 권력을 장악하고자 했던 아벨의 계획은 시작부터 실패로 돌아가고, 쫒기는 몸이 되어서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 부귀영화에 대한 환상은 명성을 가져다 주리라 믿었던 일기가 물에 찢겨 버림으로써 부서진다. 권력과 소유에 열정적이라 할만큼 집착을 보이는 아벨의 모습이다.

리마에 대한 호기심은 사랑이 되었지만 그 사랑이 리마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진 못했다. 오히려 더 큰 아픔, 더 큰 슬픔이 되었을 뿐. 리마는 죽음으로도 자유를 얻지 못했다. 살아서는 녹색의 장원에 고립되었고 죽어서는 한 줌 재가 되어 아벨에게 소유되었다. 둘 다 타인에 의한 고립이다.

겉으로 보여지는 아벨의 모험과 리마와 아벨의 사랑이야기에 숨겨진 소유에 대한 인간의 집착과 욕심이 부르는 파괴가 섬뜩하기까지 하다. 다 읽고난 뒤에야 보이는 이 이중적인 교훈은 널리 알려지지 않은 고전문학을 읽는 재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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