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에서의 죽음‧토니오 크뢰거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6
토마스 만 지음, 김인순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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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에서의 죽음ㆍ토니오 크뢰거 /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시즌2

토마스 만 (지음) | 김인순 (옮김) | 휴머니스트 (펴냄)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 자각은 특별함으로 인식될 수도 있지만 외로움을 느끼기가 더 쉽지 않을까.

무엇 하나 특징지을만한 개성이나 재능이 없는 사람들은 특별해지기를 원하고, 반대로 외모이든 관심 분야이든 능력이든 가만히 있어도 눈에 띌 수 밖에 없는 이들은 평범해지기를 원한다. 요즘처럼 자기만의 색깔이 강조되는 시기에도 스스로가 원치않는 특별함은 남들과 비슷한 평범함을 닮아가고 싶다는 욕구 아닌 욕구를 가지게 한다.

어려서부터 주위 친구들과는 다르게 시를 쓰는 것을 좋아했던 아셴바흐와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외로움에 우는 왕 <돈 카를로스>를 읽으며 그의 감정에 공감하던 토니오 크뢰거. 이 두 사람은 이쪽에도 저쪽에도 속하지 못한채 닿을 수 없는 반대편을 동경하고 갈구하던 토마스 만 자신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완벽한 아름다움을 소유한 미소년 타지오의 주위를 서성이는 아셴바흐의 사랑을 미성년인 소년을 향한 성인남자의 타락한 사랑으로 오해하기 보다는 아셴바흐 자신이 혹은 토마스 만 자신이 그 나이때에 가져보지 못했던 아름다움에 대한 부러움,동경이라 봐야하지 않을까.

푸른 눈에 금발인 한스와 잉게보르크와 달리 출신이 달랐던 어머니의 혈통으로 갈색 피부의 이방인의 모습을 가졌던 토니오 크뢰거 역시도 본인은 원하지만 가질 수 없는 것들이 푸른 눈과 금발이라는 상징이 되어 한스와 잉게보르크를 사랑했는지 모르겠다.

아셴바흐와 토니오 크뢰거는 어른이 된 후 문인으로 이름을 날리고 유명해지지만 이 두 사람이 맞이한 결말은 다르다. 미소년 타지오의 주위을 맴돌며 보지 않는 척 관찰하고 주변의 이상 기류를 애써 무시하던 그는 결국 타지오에게 말 한마디 건네보지 못하고 여행을 떠났던 베네치아에서 죽음을 맞는다. 처음 여행길에 올라 배 위에서 보았던 짙은 화장의 노인을 경멸했던 그가 타지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염색을 하고 화장을 하는 모습은 이율배반적이기까지 하다. 반면 토니오 크뢰거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한스와 잉게보르크를 억지로 닮아보려 하지도 않았고 그들 주위를 맴도는 삶을 살지도 않았다. 예술과 삶 사이에서 방황하다 떠난 타지에서 또다른 한스와 또다른 잉게보르크를 만난 후 밝은 미래와 행복을 그려보는 토니오 크뢰거는 참 먼 길을 돌고 돌아온 느낌이다. 오래도록 찾아 헤맨 답이 찰나의 깨달음으로 깨달아지기도 한다.

닿을 수 없지만 닿고 싶은 갈증이 성인이 되었다고 해서 저절로 해소되거나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마음 한 켠에 자리잡아 바닥이 어딘지 알 수 없는 말라버린 우물이 되어 끝없는 갈증이 되거나 자기자리에서 새로운 샘을 발견할 수도 새로운 우물을 팔 수도 있다. 어떤 삶을 살 것인지는 개인의 선택이다. 무엇보다도 아셴바흐와 토니오 크뢰거의 가장 큰 차이는 자기 정체성이 아니었을까. 해답은 자기 자신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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