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인생 열린책들 세계문학 275
카렐 차페크 지음, 송순섭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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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인생

카렐 차페크 (지음) | 송순섭 (옮김) | 열린책들 (펴냄)

평범하게 사는 것이 소원이던 때가 있었다.

'남들은 평범하게 모나지 않게 잘들 살아가는데 왜 나는 겪지 않아도 될 일들을 겪으며 살아야 하나' 하고.

그러나 이제는 안다. 한 걸음 떨어져서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에는 내 삶도 평범하기 이를데 없는 인생이라는 것을.

인생이라는 열차에 탑승한 자신에게는 롤러코스터지만 타인에게는 순환열차일 뿐이라는 것을.

서로 일면식도 없는 나의 지인들이 어쩌다 통성명을 하며 알게 되는 수가 있다. 공통 화제로 나에 대해 얘기하며 깜짝깜짝 놀라는 경우를 가끔 보게 된다. 자신이 알고 있는 나와 상대가 말하는 내가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는 결코 가식적으로 대하지 않았는데 상황과 시기에 따라 보여지는 나의 모습이 달랐던가 보다. 돌아보면 십대, 이십대, 삼십대, 사십대의 내가 다른 모습이긴 하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나에게 얹혀지는 역할과 이름도 하나씩 늘어갔다. '나'라는 기둥에 딸이라는 위치와 학생이라는 신분이 전부였던 십대에서 직장인이라는 역할이 더해졌던 이십대,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아내와 며느리, 엄마라는 의무와 책임이 한꺼번에 늘어났던 삼십대를 지나 부모에서 학부모로 기능의 변환도 필요했던 사십대를 거치고 있다. 상황과 위기에 따라 대처하는 처세들은 성격의 변화를 이끌어 냈다. 아니, 그랬다고 생각해왔다.

카렐 차페크의 <평범한 인생>에 등장하는 철도 공무원의 일기는 그의 삶에 비추어 내 삶도 돌아보게 했다.

죽음이 가까워 옴을 느낀 그는 자신이 살아온 날들을 일기로 남기며 그 인생을 살아온 자신의 인격들을 구분해낸다.

소목장이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의 기대 속에 공부 잘 하는 아들이었던 그는 아버지의 기대를 채워주지 못하고 반항심에 취직을 했다. 계획했던 직업은 아니었지만 그 곳에서의 인연으로 결혼도 하고 아내의 내조를 받으며 승진도 하는 등 평범한 인생을 산다. 평범한 인생을 살아온 행복한 사람이었으며, 출세를 위해 몸부림치던 억척이이기도 했고, 우울증 환자이기도 했다. 전쟁이 있던 시기에는 영웅의 모습도 비춰지고, 시를 쓰는 낭만가적인 시절의 그도 있었다. 순간 영화 아이덴티티가 떠올랐지만 영화 속에 등장하는 각각의 인격과는 매우 다르다. 영화 속 인격들은 약육강식처럼 다른 인격 위에 군림하는 모습이지만 '카렐 차페크'의 <평범한 인생>에서 철도 공무원이 구분해 낸 8개의 인격은 경쟁자라기 보다는 상호보완적이면서도 각자의 영역을 넘지는 않는다.

"성격은 변하지만 기질은 변하지 않는다"던 어느 심리학자의 말이 생각난다. 평범하게 살기를 소망하면서도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나를 보호하기 위해 새로운 인격을 만들어 대처해나가며 살아가는 게 아닐까. 타인이 보는 나의 모습이 각기 다를지라도 나는 나 이듯이 평범한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 여러 인격들이 고군분투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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