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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모퉁이 카페 ㅣ 프랑수아즈 사강 리커버 개정판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권지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2월
평점 :
길모퉁이 카페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 권지현 (옮김) | 소담출판사 (펴냄)
살아가며 자의로든 타의로든 맞이하게 되는 숱하게 많은 만남들 중의 대부분은 역시나 자의로든 타의로든 결별을 맞는다. 이별을 맞았다고 해서 그 관계가 다른 관계들에 비해 가벼웠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별의 종류가 어찌 사랑하는 사이에만 국한되는 것이랴마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 우리나라 최초의 이혼발표 기자회견장에서 유명한 배우가 남겼다는 말은 마치 영화의 명장면 명대사처럼 회자되곤 한다. "우리는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지는 것이다."라는.
식어버린 사랑으로 헤어지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랑하기 때문에 이별을 선택해야하는 이들도 어딘가에는 있지 않을까. 사랑한다면 슬픔도 시련도 함께 견뎌야 한다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더 지지하고 싶은 쪽이지만 말이다.
헤어짐, 이별, 결별이 어디 사람과 사람, 관계에만 국한되는 것이랴. 고국, 고향, 추억이 깃든 곳처럼 자신에게 특별한 기억이나 정이 깃든 장소와의 이별이나 자기 자신과의 이별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다.
'결별'을 테마로 한 열아홉 편의 단편을 모은 <길모퉁이 카페>. 프랑수아즈 사강은 주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써내려간 작가라고 들었는데 거듭되는 이별과 거듭되는 배신과 불륜들의 스토리로 머리속에 물음표가 늘어났다. 그러다 어느 순간 결별 그 자체보다 만남과 배신, 결별이 가득한 이야기 속에서 인간 본연의 외로움을 보았다. 인간의 외로움은 혼자라서 느끼는게 아니라 둘일때도 느끼는 것. 오히려 누군가가 옆에 있는데도 느껴지는 외로움이 더 몸서리치도록 깊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태어남은 선택할 수 없지만 죽음은 선택할 수 있다는 씁쓸함. 책의 제목과 같은 제목의 단편인 '길모퉁이 카페'의 마르크는 3개월의 시한부 삶을 선고받고 축복받지 못할 선택을 했다. 존엄한 죽음을 맞고 싶어 안락사를 선택하는 이들과 생명의 존엄을 이유로 안락사를 금지하는 이들 사이의 팽팽한 신경전은 세계 여러 곳에서 지금도 진행중이다.
외로움이 싫어서 다른 사랑을 찾아 헤매거나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고, 시간을 정해두고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을 피하고 싶어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 아이러니 가득한 그들의 방법이 옳다는 것은 아니지만 옳다 그르다 판단할 자격은 누구에게 있을까?
'사강 스캔들'이라는 말을 낳을 정도로 두 번의 결혼과 이혼, 도박, 자동차 경주, 약물중독 등의 삶을 살았던 프랑수아즈 사강.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말을 남긴 그녀 역시도 몸서리쳐질 정도의 외로움을 벗어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나 프랑수아즈 사강은 파괴되어가는 그녀를 보며 자신을 사랑하는 이들의 가슴 한 켠이 함께 파괴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간과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불륜의 부도덕성보다 인간의 외로움이 더 아리게 다가왔던 사강의 단편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