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 사진에세이 3
박노해 지음 / 느린걸음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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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박노해 사진 에세이

박노해 (글 사진) | 느린걸음 (펴냄)

볼만한 프로그램이 있나하고 가끔 케이블 채널을 무심코 돌리다보면 자주 보이는 프로그램이 있다.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이다.

자연인이라 불리는 매 회의 주인공들은 각자의 사연을 안고 산 속으로 무인도로 사람이 없는 곳을 찾아 살아간다. 남들과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 그들은 인생의 길을 잃은걸까? 속세의 사람들 눈에는 초라하기만 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들의 눈빛은 그 누구보다 맑고 밝다.

약초를 캐러 산등성이를 오르는 그들은 길이 아닌 비탈을 날다람쥐보다 재빠르게 오르내리고 길이 익숙한 재작진들은 힘들어 한다. 각자가 정의하는 길의 모습이 다른 것이다. 내 길만이 옳고 유일한 길은 아닌 것이다.

길을 잘못 들어섰다고 슬퍼하지 마라, 포기하지 마라. 삶에서 잘못 들어선 길이란 없으니. 모든 새로운 길이란 잘못 들어선 발길에서 찾아졌으니.

길. 박노해 사진 에세이 중에서

도심 한복판에서 길을 잃으면 당황하고 놀라서 허둥댄다. 하물며 인생에서 길을 잃는다면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러나 목적지에 이르는 길이 꼭 하나만 있으리라는 법은 없다.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그 길을 처음 걷는 자가 될 수도 있다. 그 길에서 보고 듣는 것이 무엇이 될진 알 수 없지만 조금 더디 가게 되면 더 많은 것을 보게 되겠지.

남들과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은 도태되고 낙오되는 것만 같은 불안감에 같은 모습으로 살고자 하는 노력은 필요없는 경쟁을 불러오기도 한다.

백명의 사람이 백개의 방향으로 뛰면 모두가 일등. 그러나 우리는 한 길만을 고집하며 양 쪽의 낭떠러지 길에서 서로를 밀어내고 있지는 않은가?

빨리 가는 것만이 최고라고 여겨 굽은 길을 펴고 좁은 길을 넓히는 와중에 가꾸고 지켜야할 작은 것들을 파괴하지는 않았나. 출세와 성공을 향하는 길에서 잃어버린 소중한 것들은 없었을까? 빨리빨리에 지쳐버린 요즘은 길 자체에 집중하며 천천히 걷는 올레길이 인기다. 혼자 뛰는 전력질주보다 함께 걷는데 더 의미가 깊어지는 요즘이다.

혼자서는 갈 수 없다. 웃으며 가는 길이라도.

함께라면 갈 수 있다. 눈물로 가는 길이라도.

박노해 사진 에세이. 길 120페이지

세상의 많은 길 중에서 좋은 길은 어떤 길일까?

그 길의 끝에 안식을 취할 곳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면 그 길이 험난하고 고달프더라도 과정에서 겪는 고생은 축복이 될 것이고, 뒤에서 나를 응원하는 이들과 사랑이 있다면 짊어지고 있는 것은 짐이 아닐 것이다.

사람은 길을 만든다. 모두를 위한 길, 나만을 위한 길, 미지의 곳으로 향하는 길, 돌아갈 곳으로 향하는 길. 그러나 이러한 길을 단절하고 사람과 사람을 단절시키는 것도 사람이다.

삶이라는 길 위에서 세상을 경험하고 자신을 체험한다. 이런 경험과 체험에서 깨달음을 얻고 교훈을 얻는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같은 경험을 하고서도 모든 사람들이 깨달음을 얻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은 머리에서 가슴에 이르는 길이라던데, 나는 그 길의 어디쯤 와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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