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남자 - 하 열린책들 세계문학 86
빅토르 위고 지음, 이형식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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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남자. 하

빅토르 위고 (지음) | 이형식 (옮김) | 열린책들 (펴냄)

운명은 문을 하나 열면 다른 문 하나를 닫습니다.

다 가진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핍이 있기 마련이다. 남들보다 많은 것을 갖고도 가지지 못한 하나를 갈망하는 것이 인간의 어리석음이다. 괴물의 모습을 한 그윈플레인을 향한 여공작 조시안의 갈구가 그러했고 악의 절대적 모습이 있다면 그러했을 바킬페드로의 은밀한 악행이 그러했다.

우르수스의 철학자적 면모는 하권에서 더욱 빛났다. 그 자신이 쓴 극본 "정복된 카오스"를 통해 농담처럼 던지는 대사에는 단어 하나하나 피맺힌 진실들이 가시처럼 박혀있다. 가난한 자들의 주둥이는 침묵과 <예>만을 강요받는다.

황금은 보되 부유함은 보지 못하는 소경, 자신의 무지를 모르는 학자 등 비단 소설 속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국민을 일컬어 개돼지라 하는 인성 앞에 달리 무슨 말이 필요할까? 현실의 우리가 손쉽게 보고 듣는 많은 사건과 인물들 그리고 나 자신도 우르수스의 그러한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성에 눈 뜬 그윈플레인은 여공작 조시안에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그를 탓하기보다 그런 유혹에도 데아만을 원하고 향했던 그 마음에 응원을 보내고 싶었다. 영혼과 성이라는 두가지 선택지에 그윈플레인과 같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자는 얼마나 될까? 데아와 우르수스에게 돌아가기 위해 그윈플레인이 포기한 많은 것들, 현실에서라면 그 사랑을 축하하고 응원하기 보다 어리석다고 손가락질하는 이들이 넘치도록 많지 않을까?

바킬페드로의 검은 속내는 낯설지 않다. 타인의 불행을 위해 자신의 불행도 기꺼이 감내하는 그가 꼭두각시처럼 다루려던 그윈플레인이 사라진걸 알고 느꼈을 허탈함이 고소하다. 절대적 악 바킬페드로. 탐욕이 무기로 쓰일 수 있는 것은 탐욕을 가진 자에게만이다. 그윈플레인에게는 어떤 구속도 어떤 무기도 될 수 없었다.

귀족이 되어 평민의 아픔과 빈곤에 대해 일갈하는 그윈플레인을 두고 귀족들은 그저 유흥으로 치부했다. 누가 진짜 괴물이고 광대인가! 그윈플레인이 가져온 이성과 지혜와 정의와 신을 모두들 역겨워했고 거절했다. 부끄러워할만큼의 최소한의 양심과 지성마저도 갖지 못했던 것일까? 부끄러움도 죄책감도 죄를 지은자의 것이 아니라 양심이 있는 자들의 것이다.

철학과 문학의 아름다운 앙상블. 나는 여지껏 <웃는 남자> 보다 아름다운 앙상블을 보지 못했다. 시대의 비판과 문학의 아름다움, 우르수스와 그윈플레인의 입을 빌어 빅토르 위고의 철학을 엿본다.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숨 막힐듯한 절정이지만 후반에 데아가 애타게 그윈플레인을 그리워하며 부르는 노래는 한 편의 뮤지컬을 보는 듯 했다. 그들은 죽은 것이 아니다. 이 세상이 그들의 사랑을 담기에는 너무 작을 뿐이다.

젊은 연인들을 떠나보내고 남겨진 우르수스와 호모. 이들의 남은 생은 그윈플레인과 데아를 알지 못했던 그때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가슴 한켠 채울 수 없는 결핍을 안고 살아가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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