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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2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평점 :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펴냄)
53.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 듯이 사는 거나, 금방 죽을 것 같은 기분으로 사는 것은 어쩌면 똑같은 것이다.
자유롭다는 것. 자유로운 삶을 산다는 것.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믿거나 그런 삶을 동경한다. 육체 뿐만 아니라 내면의 영혼까지 완전하게 자유로울 수 있음은 과연 가능하기는 한 것일까?
가고 싶을때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는 것을 자유라고 한다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유롭지 못하다. 코로나19로, 보살펴야할 누군가가 있어서, 매여있는 직장 등 여러가지 이유로 생각보다 쉽게 그리고 당연하게 책임과 의무,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완전한 자유를 누려보지 못한다. 하지만 잘려나간 자유를 보상받기라도 하듯이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지 않음으로써 반대쪽의 자유도 누려본다.
저자인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조르바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걸까?
'나'라고 표현되는 화자는 니코스 카잔차키스 본인을 지칭하는 자전적인 소설이다. 조르바 역시도 실존했던 인물을 모델로 표현했다고 한다. 조르바가 여러 일화들을 통해 보여주는 자신만의 철학은 괴짜스럽고 억지스러운 듯 하다가도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시원명쾌함이 있다. 조르바가 평생 읽은 책이라고는 "뱃사람 신드바드" 한 권 뿐이지만 오히려 많은 책을 읽은 이론가인 '내'가 머리로 고민만 할 때 조르바는 행동으로 먼저 보여주는 실제적인 행동가다. 비록 여러 여자와 사랑을 하는 바람둥이에 난봉꾼 같은 캐릭터지만 결혼에 들뜬 부불리나를 대하는 것을 보면 욕심보다 배려가 먼저인 모습도 보인다.
타락한 수도원에 불을 지르고, 그들을 이용해 자신이 써버린 돈을 메워넣는 것이나 짝사랑의 고통으로 자살한 파블리의 죽음을 온 마을 사람들이 과부에게 분풀이 하는 것에 대응하는 조르바의 모습은 그를 미워할 수 없게 만들었다.
본문에서 조르바가 하는 말들은 일상의 언어로 표현되었지만 그 어떤 철학서의 어려운 말들보다 날카롭고 직접적으로 와 닿는다.
100. 혹자는 먹은 음식으로 비계와 똥을 만들지만 나는 내가 먹는 걸로 일과 좋은 기분을 만들어 냅니다.
148. 산다는 게 곧 말썽이오. 죽으면 말썽이 없지.
222. 나는 자유를 원하는 자만이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
257. 여자는 연약한 동물입니다. 도대체 이 이야기를 몇 번이나 해야 알아 듣겠어요? 여자는 꽃병 같은 거에요. 아주 조심해서 만지지 않으면 깨져요.
320. 믿음이 있습니까? 그럼 낡은 문설주에서 떼어 낸 나뭇조각도 성물이 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나요? 그럼 거룩한 십자가도 그런 사람에겐 문설주나 다름이 없습니다.
조르바가 여성, 신앙, 국가를 바라보는 것을 통해 삶을 대하는 태도를 본다. 조국으로부터 해방되고, 신부들로부터 해방되고, 돈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신의 짐을 덜어 구원의 길을 찾는 것을 인간이 되고 있다고 말했던 조르바. '나'는 그런 조르바를 통해 자유로운 삶에 대해 눈을 뜬다. '내'가 책을 통해 배우려던 것들을 조르바는 자신의 온 몸으로 체득하며 배워왔던 것이다.
추진했던 갈탄광산이 무너지고 통나무들을 운반하기 위해 설치했던 구조물들이 쓰러지며 사업은 시작도 못해보고 실패로 돌아간다. 모든 것을 잃고 난 뒤에 '내'가 맛 본 것은 좌절이 아닌 해방감이었다.
카르페디엠과 무소유가 묘하게 얽혀 삶에서 누리는 자유, 자유로운 삶을 생각해보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