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심리학 분야의 고전이라 불리우는 "귀스타브 르 봉"의 <군중심리>.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 이후 모처럼 푹 빠져 읽었던 심리학 도서다.
총 3부로 구성된 내용 중 1부 "군중의 정신 구조"가 가장 흥미로웠다. 일상에서 마주하게 되고 휩쓸리게 되는 군중심리에 대해 막연하게 생각하거나 지나쳐왔던 생각들이 조목조목 쉬운 설명으로 이해되었고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아무리 똑똑한 지식이 있는 사람일지라도 개인이 아닌 군중의 일원이 되면 개인으로서 가졌던 지식과 지성은 큰 힘을 내지 못한다. 군중의 어리석으면서 파괴적인 힘은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될만큼 역사 속에서도 그 예는 충분하다. 무엇이 군중을 어리석게 만드는걸까?
군중은 이성적이지 않고 감정적이다. 숙고보다는 행동으로 옮기기를 원한다. 신념과 사상이 결여된 군중은 때로 공포 그 자체로 돌변할 수도 있다. 진실을 말해주어도 듣고 싶지 않은 얘기는 거짓으로 듣고 적으로 간주한다. 자신들의 지도자를 영웅처럼 대했다가 아래로 끌어내려 추락시키는 모습도 굳이 상상력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사람이 많이 모였다고 해서 군중이 되는 것은 아니다. 군중을 구성하는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사상들이 한 방향으로 흐르게 되면 한 공간에 모인다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다.
2016년 광화문을 중심으로 모인 많은 촛불은 세계 기네스북에 등재될 정도로 평화로운 정치시위로 기록되었다. 광화문에 모인 군중보다 더 많은 군중들이 각자의 공간에서 마음을 모으고 촛불을 보태었기 때문일 것이다. 군중의 신념에 영향을 주는 특징 중 민족성이 가장 중요하다는 대목에 적절한 예이지 않을까? 단일 민족으로 같은 역사와 아픔을 공유해 온 민족이기에 커다란 사안에 희노애락을 함께 느끼는 듯 싶다.
본문에 군중은 집단환각, 최면, 암시에 빠지기 쉽다고 되어 있다.
감정에 호소하는 몇 마디의 강한 선동에 쉽게 흥분하고 개인이라면 하지 못할 행동들을 군중의 일원으로서는 죄의식없이 하거나 영웅심에 도취되어 하는 걸 보게 된다. 이 대목에서는 아찔할 정도의 공포가 들었다. 이러한 군중을 선동하는 우두머리, 지도자의 자질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 군중심리를 이용한 지도자가 폭동이나 혁명을 일으킨다면?
군중의 편협성과 보수성은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에 합리성을 주장하고 폭력성을 보이며 도덕성을 버린다. 여기에 군중이라는 이름이 주는 익명성이 더해지면 양심과 죄책감도 함께 사라지는 듯하다. 어제의 이웃이 오늘의 폭도가 되는 혁명과 무력 시위는 세계 곳곳 뉴스에서도 심심치않다.
많은 혁명과 전쟁에 대해 배워서 알아왔던 여러 이유들. 정치적 상황과 각국의 이해 관계, 지배계급의 잔인함과 폭정 등에 항거하는 군중심리가 얹어지며 사람들은 그야말로 집단 최면에 빠진 듯이 저마다 자신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이성이 결여된 군중과 그런 군중을 이끄는 지도자, 진실과 감정적 내 편.
시대는 진화하고 있지만 반복되는 역사에는 인간의 심리가 이성보다 본능에 좌우되기 때문인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