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주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01
에밀 졸라 지음, 유기환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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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주

에밀 졸라 (지음) | 유기환(옮김) | 문학동네 (펴냄)

절망의 군대여, 진격하라, 진격하라!

빗속으로, 진창 속으로, 전멸을 향해!

<패주>표지글에서

"목로주점"으로 익히 들어온 에밀 졸라의 장편 소설이다.

<패주>는 국내 초역이라서 그런지 제목이 낯설다. 보불 전쟁으로 알려진 프로이센과 프랑스의 전쟁을 배경으로 농사꾼 출신의 장과 지식인 모리스의 끈끈한 우정을 중심축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전쟁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는 다른 고전 소설들과는 차이가 느껴진다. 전쟁이라는 상황은 배경의 장치로만 쓰일 뿐 남녀간의 사랑이 중심이 되어 흐르거나 인간의 고뇌와 인간성에 대한 고찰이 주류를 이루는 다른 소설들과 달리 <패주>는 전쟁 이야기, 특히 그 참혹함에 대해 깊고도 많은 이야기를 담아냈다.

전쟁에 대한 준비는 거의 없이 승리를 의심없이 믿는 프랑스 군에게 돌아온 것은 패배, 연이은 패배 뿐이었다.

듣고 싶지 않고 믿고 싶지 않은 얘기는 부정하며 서로 화합하지 못하고 분열하는 군대에게 승리는 요행으로라도 주어지지 않았고 그래서도 안되는 것이었다.

배운 것 없는 농사꾼 출신이라고 장을 멸시하던 모리스는 장의 군 복무 경력에서 나온 풍부한 경험과 따뜻한 인간미에 어느덧 그를 형이라 부르며 따르게 된다. 제 자신은 배를 곯으면서도 모리스에게 비스킷 하나, 빵 한 조각을 나누는 장의 마음은 형이라기 보다 부모의 마음에 더 가깝다.

역사, 특히나 전쟁의 역사는 승자의 편에서 기록이 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패주>는 제목에서 암시하는 바와 같이 패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변덕스럽고 일관성없는 지도부의 결정과 명령으로 목적도 소득도 없이 이동해야하는 군인들, 그 이동 중에 무의미하게 버려져야 했던 목숨들과 필요없는 희생들은 먼나라 과거의 얘기로만 보이지 않는다. 징집과 자원, 어느 형태로든 군대에 몸 담게 된 군인들의 모습도 여러가지다. 장과 모리스처럼 끈끈한 전우애로 나아가는 이들이 있는 반면 슈토와 같이 제 살길을 도모하기 위해 동료의 희생을 제물로 삼는 기회주의자도 있다. 코뮌 사태가 벌어지고 장교가 되어 나타난 슈토는 비극적인 죽음을 맞아야했던 모리스와는 대조적이다. 조금 벗어난 얘기이지만 일제 감정기가 끝나고 대한민국 정부가 들어서면서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은 궁핍을 벗어나지 못하고 친일파들은 득세하는 우리의 모순이 오버랩되었다.

전쟁에서 살아남기위한 서민들의 모습도 각양각색이다. 오노레의 아버지 푸샤르 영감은 적군인 프로이센군과도 거래를 하며 철저하게 계산적인 모습을 보이고 친인척에게도 인색한 모습을 보이지만 전쟁의 포화로 공장을 잃은 시트업자 들라에르슈는 가진 것을 나눌 줄 아는 면모를 보여준다.

승자와 패자로 나뉜 전쟁이야기가 아닌 패주하는 프랑스 군 내의 배신과 분열, 아픔과 사랑, 선택 등이 처절하리만치 아프게 그려졌다. 아이를 지키기 위해 아이의 생부를 죽음으로 몰아야했던 실비, 앙리에트와 따뜻한 미래를 꿈꿔보던 장에게 절망을 준 모리스의 죽음은 지켜보는 나에게도 안타까움이었다. 전쟁에서 승리했다면 다른 결말을 맞을 수 있었을까? 상처만이 남은 전쟁은 과연 누구를 위한 전쟁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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