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MIDNIGHT 세트 - 전10권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
프란츠 카프카 외 지음, 김예령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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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MIDNIGHT세트] 이방인

알베르 카뮈 (지음) | 김예령 (옮김) | 열린책들 (펴냄)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였을까. 모르겠다.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MIDNIGHT세트] 이방인 13쪽

소설의 시작을 여는 첫 줄, 첫 문장이 그 어느 소설에서보다 강렬하다. 이 한 줄의 번역을 두고 갑론을박하는 글도 보았다. "엄마가 죽었다"와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를 두고. "오늘" 뒤에 쉼표를 찍을 것인가를 두고.

어쨌거나 엄마의 죽음이라는 중대사를 대하는 뫼르소는 담담히 모르겠다고 말한다. 나는 이것을 문제삼아 뫼르소의 도덕성을 논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살인을 저지르고 재판을 받는 동안 뫼르소가 비난을 받아야했던 이유는 살인이 아니라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과연 그는 슬퍼하지 않았을까? 슬픔을 표현하는 방법이 남들과 달랐던 것은 아니었을까? 사랑한다고 해서 반드시 슬퍼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슬퍼한다고 해서 반드시 사랑했다는 것은 아닐텐데.

너무 기쁜 일이나 지나치게 슬픈 일에 맞닥뜨렸을때 흔히들 "실감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뫼르소에게는 어머니의 죽음을 실감하고 슬퍼할 겨를이 있었나?

엄마의 장례를 치르던 날과 똑같은 태양아래서 저지른 살인. 뜨거운 태양을 벗어나고자 내딛은 한 발짝이 살인에 다가서는 한 발짝임을 뫼르소 그 자신도 몰랐을 것이다. 태양때문에 일어난 살인이라니, 진실을 말했지만 믿어주는 이는 없다. 임종은 지키지 못했지만 장례식을 끝까지 함께 했던 뫼르소에게 그날과 똑같은 태양은 엄마의 죽음을 일깨우는 방아쇠가 아니었을까?

그러나 마지막으로 엄마의 시신을 보지 않고 담배를 피우고 밀크 커피를 마시고 여자와 코미디 영화를 보러 간 것으로 그는 유죄가 되고 사형수가 된다. 뫼르소의 재판에서 증언을 했던 사람들은 정작 뫼르소와는 친분이 전혀 없던 양로원 사람들이었다. 살인의 현장에 있었던 레몽의 증언은 그가 포주라는 이유로 묵살된다.

변호사는 마지막 변론을 하며 "나"라는 인칭을 사용한다. 마지막 항변의 기회조차도 철저하게 뫼르소는 자기 인생에서 소외되는 이방인이다.

사형수가 된 뫼르소를 위해 기도해주러 사제가 찾아온다. 뫼르소는 그 사제를 향해 쏟아낸다. "164. 당신에겐 당신 자신이 살아 있는 것인지조차도 확실치 않을 거야. 마치 시체처럼 살고 있으니 말이야. 하지만 난 나 자신에 대해 확신하고 모든 것에 확신해, 당신보다도 더.나는 내 삶과 이제 곧 닥칠 죽음에 대해 확신해." 신앙의 구원을 뿌리치고 자신의 죽음을 직시한다.

자연사, 살해, 법에 의한 처형의 3가지 죽음이 엄마, 아랍인, 뫼르소의 죽음을 통해 나열되고 있다. 뫼르소는 자신의 죽음에 이르러서야 죽음에 가까이 이른 엄마가 느꼈을 해방감을 짐작해본다. 그리고 자신도 엄마와 마찬가지로 다시 살 준비가 되어있음을 느낀다. 세상에 무관심하게 살아오다 죽음을 직시하고 나서야 깨달은 행복.

스스로의 선택으로 혹은 타인에 의해서 이방인과 같은 삶을 살고 있는 많은 이들, 자신의 감정이 억눌리고 자신이 속한 일에서 제외되는 삶에서 이방인이 아닌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살 수 있을까?

까뮈는 세상의 부조리를 소설로 구현한 작가라던데 열번쯤 읽으면 이해할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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