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김선영 옮김 / 새움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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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 김선영 (옮김) | 세움 (펴냄)

흔히들 결혼의 조건으로 사랑이냐 재산이냐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무엇을 선택하겠느냐는 질문을 한다. 사랑을 고르면 사랑이 밥먹여주냐하고 재산을 고르면 속물이라 그런다.

<가난한 사람들>에서 바르바라가 비코프와 결혼하기로 마음 먹었던 것은 사랑에 대한 배신이라기보다 벗어날 수 없는 궁핍을 유일하게 벗어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었다. 마카르가 바르바라에게 보여준 사랑은 조건이 없었다. 자신도 넉넉치 않은 형편임에도 오갈데 없는 먼 친척 고아 소녀 바르바라에게 보여준 사랑은 마치 아버지가 딸에게 해주는 듯한 보살핌과 가끔은 남성이 여성에게 보이는 사랑이 혼재되어 있는 모습이다. 마카르의 호의와 선의에 바르바라 역시 사랑으로 답하지만 그녀가 보내는 사랑은 남녀간의 사랑이기 보다는 후원자에게 보내는 깊은 감사로 보여진다.

아버지가 딸에게 보이는 사랑이든, 남녀 사이에 보여지는 사랑이든 없어도 너무 없는 형편에 가불과 빚으로 이어가는 이들의 생활이 가엽고 측은하기보다는 궁상맞아보이기까지 한다. 자신을 후원함으로써 점점 더 쪼들리는 마카르를 지켜보아야하는 바르바라의 마음도 편치만은 않았다. 설령 둘 사이의 마음이 가난과 나이차를 극복하는 이성간의 사랑이어서 둘의 결합으로 소설이 끝을 맺었다면 그것을 해피엔딩이라 할 수 있을까?

마카르의 이웃에 살던 고르시코프 가족을 보면 돈없이는 행복도 없다는 세속적인 결론에 이르기가 훨씬 더 쉬워보인다. 돈이 없어서 자식을 배불리 먹이지 못하고, 돈이 없어서 아픈 가족을 의사에게 보이지 못하는 생활이 지속된다면 가족 간의 사랑은 얼마나 유지될 수 있을런지.

돈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지만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다. 사랑과 행복을 지키고 유지하기 위해서도 돈이 필요하다는 진리가 마카르를 떠나는 바르바라에게 마냥 손가락질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신의 호위호식을 위해서 부귀영화를 위해서 선택한 결혼이 아니기에 더욱 그렇다.

사람에게 닥친 위기와 불행을 진심으로 도우려는 마카르와 같은 사람도 있지만 이용할 수 있는 기회로 여기는 안나 표도로브나와 같은 사람도 있다. 조카에게 재산상속을 하기 싫어서 하는 결혼이라며 빠른 결정을 하지 않으면 상인의 딸과 결혼하겠다는 비코프의 얘기에서 사람을 목적의 수단과 방법의 도구쯤으로 여기는 생각을 알 수 있다.

슬픔은 나누면 반으로 줄어들고 기쁨은 나누면 두배가 된다는 얘기는 가난한 이들에게는 아무 소용없는 메아리처럼 들린다. 그들에게 나눔은 더 깊은 궁핍으로만 몰고가니 말이다. 마카르는 방세를 내지 못해 집주인과 그 하인에게 모욕을 당하고 남의 조롱거리로 쉽게 입에 오르내리지만 반전은 없다.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에 아들을 잃고 재판에 승소하고도 끝내 죽음을 맞은 고르시코프, 포크롭스키 부자, 일에 치여 사는 테레자와 페도라, 쪽지를 들고 구걸을 다니는 어린 소년 등 모두 가난한 사람들로 이야기를 채우지만 그 누구에게서도 희망을 볼 수가 없다. 물질 만능을 비판하면서도 동경하는 사회, 사람들.

부자를 꿈꾸는 사람은 많지만 가난을 꿈꾸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하지만 돈을 취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안나 표도로브나와 비코프가 되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

양귀자 님의 "모순"에서 안진진이 했던 선택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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