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MIDNIGHT세트] 도둑맞은 편지
애드거 앨런 포 (지음) |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펴냄)
시인이자 소설가인 애드거 앨런 포.
중학생 소녀 시절 노트에 적어두고 읽던 "애너벨 리"의 작가다. 그런 감성적인 글을 쓴 그가 공포 추리 소설도 여러편 썼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는 그의 시와 소설들이 선뜻 연결되지 않았다. 내가 본 시인으로서의 애드거 앨런 포와 소설가로서의 애드거 앨런 포는 별개의 인물처럼 서로 다른 작품의 색깔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4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검은 고양이"를 포함해 "어셔가의 붕괴", "붉은 죽음의 가면극", "도둑맞은 편지"가 수록되어 있다. "어셔가의 붕괴"와 "검은 고양이"는 본문 속 화자의 심리가 디테일하게 그려져 있다. 공포소설이라고 해야할지 추리 소설이라고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감정의 섬세한 표현이 다른 공포 추리소설들과는 다른 느낌을 주며 '애드거 앨런 포'만의 분위기가 강하게 느껴진다.
"어셔가의 붕괴"를 읽으면서 내가 놓친 것이 있었을까? 죽은줄 알았던 여동생 매들린이 문 앞에 서 있다며 부르짖는 로더릭을 보며 '여동생이 죽지 않았던 것인가? 혹시 산채로 매장이라도 한 것일까?' 싶었다. 이해가 안되어 다시 읽어보았지만 그래도 이해가 되질 않아 책 뒷부분의 작품 소개를 읽어보았다. "111.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아편 중독과 근친상간이라는 주제가 강하게 암시되어 있다." 라는 친절한 설명. 아, 그렇구나.
"검은 고양이"에서의 시체를 벽에 넣고 발라버린다는 설정은 여러 영화에서 차용되었다. 엄정화가 주연을 맡았던 영화 '베스트셀러'에서도 그런 장면을 보았던 것 같다. 아마도 동서양의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이 장면을 비슷하게 그려내지 않았을까 싶다.
"도둑맞은 편지"를 읽고나니 탐정 오귀스트 뒤팽이 활약하는 다른 단편도 접해보고 싶어졌다. 작품 소개에서 언급되는 '모르그가의 살인'과 '마리 로제의 수수께끼'는 읽어보았던 것 같은데 오래전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이 세편에 '황금벌레', '범인은 너다'를 합쳐 추리소설의 모든 것을 확립한 다섯 단편이라고 한다니 그 궁금함이 더해진다.
포는 주정뱅이였다고 한다. 27세에 13세의 사촌동생 버지니아와 결혼도 했다. 이런 사실들이 그를 싫어하는 이들에게는 공격의 좋은 구실이 되었던 듯하다. 그러나 아내를 사랑했던 그의 마음은 가난과 결핵으로 일찍 생을 마감한 그녀를 위해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애너벨 리"를 탄생시킨다. 살아있을때 인정받는 작가였더라면 좋았겠지만 많은 천재들이 비운의 삶을 살았던 것과 유사하게 애드거 앨런 포 역시도 죽음 이후에 유명해졌다. 불행한 삶을 살다가 40세에 결국 술 때문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작품은 오래도록 살아남아 그를 기억하게 한다. 깊은 밤, 그의 추리소설만큼 잘 어울리는 책이 또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