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NOON 세트 - 전10권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외 지음, 황현산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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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NOON세트] 어린 왕자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원작) | 황현산(옮김) | 열린책들 (펴냄)

​190. 참을성이 많아야 해. 처음엔 내게서 좀 떨어져 그렇게 풀 위에 앉아 있어. 내가 곁눈으로 널 볼테니 넌 아무 말도 하지마.말이란 잘못 생각하게 하는 바탕이니까. 그리고 날마다 조금씩 더 가까이 앉아도 돼.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로 어린 왕자를 다시 만났다. 역시, 이번에도 눈길을 끄는 곳은 이 부분이다. 처음 읽었던 사춘기 소녀 적 겉멋이 아닌 조금의 깨달음을 보태서.

아이에서 어른까지 폭넓은 독자층과 팬층이 두터운 "어린 왕자". 책을 좋아하거나 좋아하지 않거나 관계없이 누구나 어린 왕자를 한 번쯤은 읽어보았거나 그 내용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가장 인상 깊은 장면으로 어린 왕자와 여우와의 대화를 대부분 꼽을 것이라 짐작된다.

어린 왕자를 처음 읽었던 학창시절에는 "나를 길들여 줘"라는 여우의 대사가 왠지 소녀의 감성을 건드리는 것만 같았고 "네가 네시에 온다면 나는 세 시부터 기뻐하기 시작할거야"란 말로 그 감성을 더 촉촉하게 적셨다.

나이를 먹고 사회생활을 하며 많은 인간관계를 가지면서 여우가 했던 이 말은 감상적이라기 보다는 내게 무서움을 주는 대사로 변해있었다. 친절해 보이지만 매번 네 시에 와서 길들여 달라는 얘기는 관계에 대한 중독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여우와 꽃이 어린 왕자에게 주는 의미와 사막에 비행기가 불시착한 화자에게 어린 왕자가 주는 의미를, 그리고 어린 왕자가 지구에 오기까지 거쳤던 여러 별들에서 만난 어른들의 대화는 아이들의 동화가 아닌 어른들의 심리철학서로 다가왔다. 짧지만 깊은 생각을 해보게 하는 문장들이 빛났다.

줄에 매어둔 양 그림을 통해 자녀를 혹은 내 주변의 누군가를 사랑이라는 착각에 빠져 구속과 집착으로 매어두진 않았는지 돌아본다.

어릴적의 나쁜 습관 하나가 모든걸 망쳐버릴 수 있는 시작임을 장미나무와 비슷한 바오밥 나무를 빗대어 얘기한다. 너무 늦기전에 뽑아버려야할 나의 바오밥 나무는 무얼까?

'임금님이 사는 별, 허영쟁이가 사는 별, 술주정뱅이가 사는 별, 장사꾼이 사는 별'에서 어린왕자가 만나는 어른들은 슬프게도 그리고 부끄럽게도 지금의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 타인의 인정이 아닌 스스로가 세우는 권위, 자기 도취나 타인에게 강요하는 관심과 칭찬, 중독과 현실 회피, 물욕에 빠져 주위를 둘러보는 여유조차 없는 모습. 혹시 어른이 되어버린 지금의 나의 모습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그저 남을 따라하고 남의 생각을 자신의 생각인 양 옮겨 떠들면서, 진심을 담은 진정한 대화를 나누어 본적은 언제였는지.

사랑에는 책임이 따른다. 사랑한다고 쉽게 얘기하면서 늘 요구하고 기대하는 사랑이 아닌 소중하게 들인 시간 만큼 참된 책임을 지는 사랑말이다. 어린 왕자가 장미에게 보여준 사랑, 그 참된 사랑에 대해 생각해본다.

새로운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 상대방의 입장은 고려해보지 않고 밀어붙이기식으로 관계를 시작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적당한 거리(떨어져 앉아)를 두고 그 사람이 내게 관심(곁눈)을 가져줄 시간을 주고, 강요도 재촉도 하지 않는다(아무말도 하지마)면 쓸데없이 말로 불러일으키는 오해도 없을것이다. 날마다 조금씩 거리를 좁혀가도 된다는 심리적 허용,허락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배려와 여유가 필요하다.

 

119. "아저씨가 보는 별은 다른 사람들하곤 좀 다를 거야. 내가 그 별들 중의 어느 별에서 살고 있을 테니까. 그 별들 중의 어느 별에서 웃고 있을 테니까, 아저씨에겐 모든 별들이 웃고 있는 것으로 보일 거야. 아저씨는 웃을 줄 아는 별들을 가지게 되는 거지!"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고 나면 관계에서 시공간은 의미가 없는 듯 하다. 그럼에도 솟아나는 그리움만은 어쩔 수가 없겠지.

가려는 곳이 너무 멀어서 몸을 가지고 갈 수 없다던 어린 왕자야, 잘 도착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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