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가 소식이 없는 아내를 기다리는 것 말고는 도오루가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누군가는 인생이 도전의 연속이라고도 말하지만 그 도전에 대한 결과는 재촉한다고 해서 앞당겨지지 않는다. 그저 기다릴 뿐.
우물에 내려간 도오루가 사라져버린 사다리로 다시 올라오지 못할 때에도 그저 누군가의 도움을 기다릴 수 밖에 없었던 것처럼.
우물 안에서 잠들었던 도오루의 꿈에서 전화속 미스테리 여인이 등장한다. 이름을 찾아달라고, 당신은 이미 내 이름을 알고 있다고, 이름을 찾아주면 나갈 수 있다고...
우물 밖으로 나온 도오루의 얼굴에는 멍이 생겼다. 통증은 없지만 누가 봐도 놀랄만큼 크고 선명한 멍이.
보통 멍은 다치고 난 뒤 상처나 타박상이 나아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것이다. 아내의 가출에 대해 격하게 분노하거나 아파하는 모습을 보이진 않았지만 도오루의 내면이 그만큼 큰 상처를 입었었다는 상징적인 의미이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본다. 좀처럼 사라질 조짐이 없는 멍이라 평생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하고 도오루는 느끼고 있지만 외도와 상관없이 틀림없이 남편을 사랑하고 있는 구미코가 돌아온다거나 가출의 진짜 이유를 알게 되면 그의 멍은 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세상은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많다. 그리고 그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더 많다. 그런데도 도오루는 우물안에 스스로 고립되어 반만 열린 뚜껑을 통해 세상을 올려다보며 보이지 않는 세상을 알려하고 이해해 보려 했다. 그는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유품을 남기는 것이 목적이 아닌 마미야와 도오루를 만나게 하려는 것이 목적이었던 혼다 씨의 의도와 알 수 없는 결핍을 다른 남성과의 성욕으로 해갈하려던 아내 구미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선까지 가보고 싶었던 가사하라 메이, 마지막 성매매의 더러움을 도오루와의 행위로 씻어내려 했던 가노 크레타 까지. 하나도 연관성 없어 보이는 이들과 일련의 일들은 도오루를 중심으로 이어져있다.
전화 속 여자의 정체를 알게된 도오루는 자신의 태엽도 다시 감을 수 있게 될까? 죄를 짓고도 죄인줄 모르는 죄의식이 없는 사람들과 그들의 주변에서 그 죄로 인해 대신 고통받는 사람들.
성매매를 일삼던 노보루는 의원으로 정계진출을 꿈꾸고 그에게 더럽혀진 가노 크레타는 크레타 섬으로 떠난다. 가사하라 메이는 오토바이를 몰던 남자 친구의 눈을 가려 남자친구는 죽고 가사하라 메이는 여전히 생과 사의 아슬아슬함에 다가가고 싶어한다.
도오루와 마미야 씨가 다시 만나 얘기를 나누게 된다면 흩어진 얘기들은 하나의 주제로 만나게 될까?
쉽지 않은 소설이다. 그러나 일본의 잘못에 대해 몇번의 사죄도 부족하다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기에 그가 하고 싶은 얘기를 끝까지 읽으며 알아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