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엽 감는 새 연대기 1 - 도둑 까치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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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엽감는 새 연대기. 도둑 까치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 김난주 (옮김) | 민음사 (펴냄)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처음 읽는다. 의식 있는 작가, 깨어 있는 작가라 불리지만 자국인 일본에서는 손가락질 당하는 그다. 난징 대학살을 대하는 일본의 태도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기사단장 죽이기'도 책장에 꽂아두고 여직 읽지 못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름만으로도 충분하기에 펼친 <태엽감는 새 연대기>다.

집 나간 고양이를 찾아나선 도오루에게 나타난 이웃집 소녀와 도둑 까치의 마지막 페이지가 끝나도록 정체가 드러나지 않은 전화 속 여자, 그리고 가노 자매 등 소설의 초반부는 미스터리하게 흐른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아내 대신 살림을 하며 지내던 그에게 계속해서 알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다.

고양이를 찾는 일이 주축일까 싶었지만 이웃집 소녀와 가발 회사의 아르바이트를 가기도 하고 의문의 여성에게서 음란한 전화를 받기도 한다. 고양이를 찾는 일에 가노 자매를 소개 받지만 이 자매 역시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다. 주인공인가 싶은 도오루의 얘기보다는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연관성 없이 나열되어 무슨 얘기를 하려나 싶은 순간 노몬한 사건이 언급되며 스치듯 등장했던 혼다와 혼다의 유언을 실행하기 위해 방문한 마미야의 얘기로 이야기는 급물살을 탄다.

인간은 원래 평등하지 않다는 가치관의 아버지 아래에서 자란 와타야 노보루의 국회의원 출마, 통증을 없애고 싶어 삶을 마감하려 했지만 모든 감각을 잃어버린 가노 크레타, 신분을 위장하고 임무중에 살해당한 야마모토, 일어나지 않은 일들을 그냥 알 수 있는 혼다, 일생을 침묵하던 진실을 털어놓기 시작한 마미야 도쿠타로.

전혀 상관 없어 보이던 이야기들은 고양이를 찾기 위해 나선 길에 이웃집 소녀 가사하라 메이를 만났던 빈집의 사연을 시작으로 번져나간다.

혼다 씨의 생전에 들었던 '노몬한 전투'로 이야기가 흐르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3권의 시리즈로 출판된 <태엽감는 새 연대기> 중 첫번째 <도둑 까치>만을 완독한 지금 무라카미 하루키가 하고 싶은 얘기는 아직 안개 속처럼 윤곽만 보인다. 하지만 혼다 씨의 유품을 전하러 온 마미야 씨의 얘기 속에서 무라카미가 하루키가 하고 싶은 말을 본 듯하다.

295. 우리는 도적 떼 사냥, 패잔병 소탕이라는 명분으로 죄 없는 무수한 사람을 죽였고, 식량을 약탈했습니다. (중략) 이건 잘못된 일이에요. 난징에서도 몹쓸 짓을 참 많이 했습니다.

"사죄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라고 얘기해 일본 내 극우주의자들의 공격과 테러 위협을 받아온 무라카미 하루키. 사죄 이전에 죄를 인정하는 것이 먼저라는 것을 아는 몇 안되는 지식인이다. 머리에 든 것 많고 유려한 말과 글솜씨 만이 교육과 지식의 척도가 아님을 보고 배운다. 이어질 <예언하는 새>와 <새 잡이 사내>에서는 어떻게 이야기를 이끌어 나갈지 사뭇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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