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보내지 마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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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내지마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 김남주 (옮김) | 민음사 (펴냄)

영국과 미래를 공간적, 시간적 배경으로 <나를 보내지마>는 1부, 2부, 3부로 나뉘어져 캐시의 시점으로 서술된다.

캐시와 루스, 토미를 통해 우리의 미래가 될지도 모를 세상을 보았다. 눈이 부시다 못해 멀어버릴 것 같은 과학의 발전은 윤리와 양심, 편리와 어쩔 수 없음이라는 핑계와 변명 뒤에서 반드시 하나만을 선택하라는 보이지 않는 강요를 받기도 한다.

헤일셤의 학생들. 그 아이들의 정체를 알게 되었을 때의 충격은 그래도 아이들에 대한 연민보다 크지 않았다. 오히려 캐시를 비롯한 헤일셤의 모든 아이들이 자신의 정체성과 탄생의 이유를 알고 있었다는 것이 더 큰 충격과 측은함을 불러 일으켰다.

좋게 말해 "기증". 사실은 장기 적출을 목적으로 만들어져 키워져 온 클론들. 이것이 헤일셤 학생들의 정체다. 미래 SF영화의 주제로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소재이지만 결과는 사뭇 다르다. 영화 '아일랜드'나 '매트릭스'의 사육되는 자들의 반란따위는 <나를 보내지마>에 없다.

주어진 운명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이들의 수동성에 화가 나기는 커녕, 불편한 결말에도 이들에 대한 연민과 미안함을 떨치기가 힘들었다.

과연 소설 속 이야기이기만 할까? 1996년에 태어난 복제양 돌리를 기억하는 세대라면 그 놀라운 탄생에 한껏 고무되었던 의료계와 의학계, 종교계를 떠올리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암으로 죽어가는 생명과 타인의 장기 기증을 목숨을 걸고 기다려야 하는 이들에게는 희소식이었지만 장기 복제의 방법과 생명 탄생에 신이 아닌 인간이 개입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팽팽했었다. 목숨이 걸린 문제에서는 옳고 그름의 기준이 타인이 아닌 철저하게 "나"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베개를 끌어안고 춤을 추던 캐시를 보고 눈물을 흘리던 마담. 마담은 그저 자신이 보고 싶은대로 보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다른 클론들은 헤일셤보다 더 형편없는 시설에서 사육되다시피 하는 현실에 그래도 헤일셤의 학생들은 다른 클론들보다는 나은 대접을 받으며 교육도 받을 수 있었던 것이 자신들의 노력 때문이었음을 강조하면서.

주어진 운명안에서 꿈을 꾸려고 노력했던 클론들과 필요에 의해 어두운 면은 무시하고 잊으려 했던 인간들 중 누가 더 인간적 아니 비인간적이었을까?

448.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 되도록 너희 존재를 생각하지 않으려 했단다. 그럴 수 있었던 건 너희가 우리와는 별개의 존재라고, 인간 이하의 존재들이라고 스스로에게 납득시켰기 때문이지.

뒤늦은 진실을 알게 된 캐시와 토미가 에밀리 선생님과 마담에게 감사를 해야 할까?

실험용 쥐가 쥐구멍이 아닌 깨끗한 과학 실험실에 갇혀 있었다고 해서 감사를 느껴야 할까?

생명을 주었다는 이유로 혹은 키우고 양육했다는 이유로 이루어지는 정신적 착취는 이런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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