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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의 진자 - 하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269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2월
평점 :
푸코의 진자 (하)
움베르토 에코 (지음) |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펴냄)
우리는 존재하지도 않는 계획을 발명해 내었다. 그러자 그들은 그 계획이 실재하는 것이라고 믿었을 뿐만 아니라, 자기네들이야말로 여러 세기에 걸쳐 그 계획의 일부분이었다는 것을 확신하기에 이른다.
감히 방대하고도 깊은 이 소설 <푸코의 진자>를 설명해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역시는 역시'라고, 움베르토 에코는 이번에도 그 이름값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성전 기사단의 역사를 따라가며 그 안의 보이지 않는 음모와 비밀들, 은비학과 암호, 사이비스러운 모임까지 총망라하며 프리메이슨까지 이어지는 스토리에 정신을 차리기가 어려웠다.
상,중,하 3권으로 출판된 열린책들의 <푸코의 진자>는 어려운 용어들이 많아 읽기가 쉽진 않았지만 뒷장을 계속 넘기게 만드는 매력도 함께 지녔다.
상권의 도입부에서 카소봉에게 걸려온 벨보의 전화가 그의 안전을 걱정하게 만들며 끊어져 액션첩보물의 분위기를 풍기지만 뒤로 갈수록 '인디아나 존스'나 '다빈치 코드'를 연상시켰다.
풀어도 풀어도 계속되는 비밀은 카소봉 주변의 사람들 모두를 의심케 하며 바라보게 된다. 성전 기사단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스토리는 종교 역사에 대해 알고 읽었다면 좀 더 쉬웠을까 싶었지만, 소설 말미로 갈수록 종교보다는 인간 내면의 욕망이 더 크게 보였다.
손에 넣고 싶은 것이 있는 자들에게는 오로지 그것이 진실이다. 없다고 하면 숨긴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허세를 부리면 빼앗고 싶은!
비밀을 손안에 넣었다고 선언한 벨보에게서 그 힘을 빼앗아 내려다 실패하자 죽이고 만 '그들'은 이제 카소봉의 뒤를 쫒는다. 지도 따위는 없다고 하면 할수록 지도를 손에 넣고 싶다는 그들의 욕망은 그만큼 더 뜨거워질 것이다.
믿고 싶은대로 믿는 자들은,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듣고 싶은 것만을 들어 기억하고 믿는다. 음모라고 여기는 순간 사소한 모든 것은 음모가 되고 진실과 거짓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도 더이상 중요하지 않다. 믿고 싶은 것이 진실이 되는 것이다.
<푸코의 진자> 마지막 페이지가 가슴을 후빈다.
그러나 저들에게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다. 믿음이 없는 저들에게.
믿고 싶은대로 믿었던 것은 가라몬드 삼총사도 마찬가지였다. 자신들이 발견해낸 진실이 잘못 해석해낸 사실들을 바로잡을 진짜 진실이라 믿었고, 마땅히 의심했어야 할 사람들과 증거에도 눈감아 버렸다. 구드룬의 불평과 리아의 경고를 귀담아 들었더라면 이 비극적인 결말과 새로운 비밀의 탄생이라는 비뚤어진 어둠의 반복이 계속되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리아의 말을 그때라도 들었더라면 좋았겠다는 후회도 없었을 것이다.
"기왕에 존재하는 것에다 발명을 보태는 거, 그게 잘하는 짓이 아니라고요."
*위 도서를 소개하면서 출판사 열린책들로부터 무료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