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본문에 접어들기도 전에 만난 한나 아렌트의 말은 이 두꺼운 책을 관통하는 핵심처럼 보여진다.
인간의 조건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것이라면
야만성 또한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문명에서 산출된다는 말은 부정하기 어렵다.
역사적으로 유대인은 자신의 영토와 국가를 소유하지 못했었다. 그렇기에 더욱 더 경제적 자립에 대한 갈망과 집착이 있어 왔는지 모르겠다.
전체주의 이전의 반유대주의와 전체주의적 반유대주의의 차이는 무엇일까? '시온 장로 의정서'라는 위조 문서를 나치가 이용했다고는 하지만 각국이 자국의 이익이 아니었다면 나치의 행보에 제동을 걸었을까하는 의문도 가져본다.
《176. 부유한 예외 유대인은 스스로 유대 민족의 공동 운명에서도 제외되었다고 생각했고 정부로부터도 예외적으로 유익한 사람들로 인정받았다. 교육받은 예외 유대인은 유대민족으로부터 제외된 예외적 인간으로 느꼈으며 사회에서도 그렇게 인정받기를 원했다.》
거리에서는 일반인이고 집에서는 유대인인 척해야 했을 것이라는 정체성의 모호함. 지금까지 알고 있던 유대인들의 애국심과 정체성과 대비되는 내용은 혼란스러웠다.
유대인에 관한 한, 유대교는 범죄로 유대인 기질은 악덕으로 전환되었다. 범죄는 처벌받으면 되지만 악덕은 박멸밖에 길이 없었다. 이러한 사회의 해석은 반유대주의 조치가 실행될 때의 모습과 밀접한 연관성을 보이게 된다.
이 책에 서술되어진대로 제국주의의 통치는 비난을 목적으로 할 때만 기억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느끼는 것이지만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질서 유지를 위한 수단이 되어야 할 권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부'에서 시작됨을 부정하기 어려워 보인다. 국가간 권력 구도에서 그 차이는 확연하게 보여진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 당시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이 독재 형태를 수용하고 있었고, 히틀러가 정권을 세울 당시 나치에 협력하는 부역자가 없는 정당은 유럽에서 하나도 없었다.
소수민족 국가와 국적 없는 민족은 거대 국가들에 의해 위탁 되거나 유럽의 달갑지 않은 사람들이 되었다. 식민지 국민들도 민족 해방과 자결권을 열망하고 있었다. 평화 조약의 목표는 유럽의 기존 질서를 유지하려는 것이었기 때문에 민족 자결권과 주권을 모든 유럽인에게 부여하는 것은 불가피하게 보였다. 그러나 소수민족은 주도 민족을 믿지 못했고 국제 연맹도 신뢰하지 않았다. 1930년대 포로 수용수는 세상이 무국적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였다.
전체주의적 통치를 위한 계급집단의 청산은 평등을 위한다기보다는 통치를 위해 저항과 힘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었나 싶다.
선전과 테러를 이용한 통치는 타당성과 정의와는 별개로 이미지 관리와 협박을 통한 지배를 보여준다. 전체주의 선전의 거짓말은 현실과 허구를 연결시키기 위해 진실성과 실제 경험이 필요한데, 이런 것들을 약점에서 끌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