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제목은 장길산이지만 장길산의 이야기가 아니다!
장길산으로 대표되어지는 백성들의 이야기다.
길에서 태어난 생명은 그 길에서 다른 많은 목숨을 살리기 위한 삶을 살았다. 생부가 누구인지 모르고 생모마저 산고 끝에 죽었지만 길산에게는 백성이 어버이였고 또한 길산이 백성의 어버이였을테다.
굶주림에 죽어가고 굶주림에 부모가 자식을 파는 인면수심의 세월은 선과 악의 구분조차 모호하게 만들었다.
묘옥과 길산처럼 어긋나는 인연은 안타까웠고, 사랑을 가슴에 담은 연으로 집안이 적몰되고 자신도 죽음을 맞은 이경순의 삶도 가슴 한 켠이 저릿하게 아팠다.
이문만을 쫒지 않고 사람을 취하고 정을 나눌 줄 알았던 사람 박대근. 나는 그가 참 멋있었다.
관가의 통인으로 자라나 백성의 수모를 겪고 보았음에도 백성이 아닌 양반의 편에 섰던 최형기. 출세에 눈이 먼 그의 칼은 서슬이 퍼랬다. 그 칼날에 쓰러진 장충은 죽음 앞에서도 길산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였다.
길산을 잡기 위해 몇 개의 마을을 쑥대밭을 만들었고 너무 많은 죽음을 만들었다. 제 가족이 죽는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봐야 했던 이들이 어찌 제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까.
시집살이도 살아본 사람이 더하다고 하였던가. 핍박과 차별받는 세월을 살았던 고달근은 끝내 제 안위와 영달을 위해 동지들을 최형기에게 넘겼다. 장길산이 찾아올까 두려움으로 지내면서도 부귀영화가 그리도 좋았을까. 남의 눈에 피눈물 뽑아놓고 아래것들 호령하며 배 부르고 등 따시니 그리도 좋았을까.
배신으로 흥했던 고달근은 그 자신도 배신으로 최후를 맞았다.
여환의 미륵도는 성급함으로 멸하고, 활빈도도 사주전으로 꼬리를 잡혀 큰 희생을 보았다. 큰 일을 도모함에 있어 그 일을 그르치는 것은 작은 것에 있었다.
길산이 전해들은 봉순의 최후가 너무 아프다. 아프고 아프다.
다른 여자를 가슴에 품고 사는 지아비의 뒷모습을 보며 눈물짓던 봉순이. 최형기에게 잡혀서도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하지도, 겁을 먹고 약한 모습을 보이지도 않았다. 아비를 잊지 말라 수복이에게 당부하고 욕을 보이기전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모습은 두령의 아내로서 비장하기까지 하였다.
처참했지만 무의미한 죽음은 없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