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세가지 근본 활동인 노동,작업,행위를 통해 인간이 지상에서 삶을 영위하기 위해 주어지는 기본 조건은 "우리(인간)는 누구인가?"라는 질문 앞에서는 무력하다.
활동적인 삶에서 선택의 전제조건인 '자유'는 인간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게 될까? 실용과 쾌락 등 자유의지에 따라 하게 되는 선택들이 삶의 방향을 쾌락적으로 혹은 정치적으로 또는 그 밖의 다른 삶을 살게 할 것이다.
공간과 시간의 제약을 받지만 모든 것이 불멸적인 우주의 질서 안에서 '죽을 운명의 존재'인 사멸성은 인간실존의 특성이 된다.
사람들이 함께 살아간다는 사실은 모든 인간 활동의 조건이긴 하지만 인간 사이의 단순한 사회적 교제를 넘어선 조직체는 두 번째 삶이라 볼 수 있는 정치적 삶을 말한다.아리스토 텔레스는 정치적 삶을 구성하는 것은 '행위와 언어'이며, 행위와 언어는 점점 분리 되어, 힘과 폭력보다 말과 설득을 통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정치적 요소라고 보았다.
말과 행위를 통해 드러나는 인격은 타인과 함께할 때 존재한다. 하지만 사람들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권력이 발생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권력에 대항하는 것은 힘이 아닌 세력이다. 권력이 타인과 함께하는 관계에서 파생했듯이 세력도 타인과의 관계에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권력에 대항해서 폭력을 쓰게 된다면 폭력이 권력을 파괴할 수는 있겠지만 권력을 대체할 수는 없다. 역사적으로도 폭력으로 쥔 권력은 길지도 못했고 인정받지도 못했다.
사회가 강조하고 추구하는 '평등'. 그러나 평등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행해지는 자유의 억압과 차별, 차이가 존재하는 모순을 보인다.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더 비슷하게 행동하게 되고 다른 행동을 관용하지 못하는 것은 사회의 규모가 커질수록 획일화 되어가는 모습 속에 타인의 다름을 특별함으로 보지 못하고 특이함이나 돌출행동으로 보는 우리의 시각과 무관하지 않다.
사회의 개념 중 상위 개념이라 할 수 있는 국가나 정부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 불리는 행정과 이념이 지배한다. 그렇다면 국가가 지배한다는 것은 행정이 지배한다는 것일까, 행정을 하는 사람이 지배한다는 것일까? 아마도 이런 모순들 속에서 전체주의나 사회주의, 공산주의가 파생되지 않았나 싶다.
사적인 것과 따로 떼어 생각하기 어려운 '소유'. "149. 가난은 자유인을 노예처럼 행동하게 한다."는 별다른 부연설명이 없어도 절절히 이해되는 대목이다.
소유가 불러오는 지위와 권력...끝없는 뫼비우스의 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