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굴레 - 헤이안 시대에서 아베 정권까지, 타인의 눈으로 안에서 통찰해낸 일본의 빛과 그늘
R. 태가트 머피 지음, 윤영수 외 옮김 / 글항아리 / 202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본의 굴레 

태가트 머피 (지음) | 윤영수 박경환 (옮김) | 글항아리 (펴냄)​





정치적 스캔들이나 역사적 과오를 돌아보더라도 잘못에 대한 시시비비보다는 그 잘못을 남들이 그리고 타국이 알지 못하기만 한다면 괜찮다는 믿음이 뉘우침과 사죄보다는 시치미와 적반하장이라는 태도를 보이는 것 같다. 죄책감이 아닌 수치심이 그들의 도덕 기준이라고 생각된다.



서문에서 세계 유명 학자들이나 금융전문가들이 일본에 대해 내놓는 예측은 누구나 다 알만한 것들이라고 꼬집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자극적인 나라"를 통해 짐 로저스가 한국에 대해 우리도 알 만한 얘기들을 늘어 놓은 것과 다르지 않다. 

세계가 그토록 일본을 가르켜 배울것 많은 민족이라고 칭찬하던 것과 다르게 지금은 노인문제와 실업문제, 버블 경제의 붕괴로 인한 후유증, 섹스리스 부부, 무출산에 가까운 저출산률 등 그 어느 나라보다 심각하게 몸살을 앓고 있다.  급속도의 경제 성장과 그로 인한 후유증도 닮아 있는 우리로서는 심각하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 문제다.



메이지 시대에는 징병제가 공공 교육의 의무화와 함께 이루어졌다. 근대 국가에 필수적인 정신 자세를 주입한다는 목적은 성공적으로 이루었다. 삶의 모든 부분이 군사적 색채를 띠기 시작했다. 애국심을 의도적으로 주입해서 분산되어 있던 충성심을 국가 전체로 옮겨올 필요가 있었다. 

서양 문화를 허겁지겁 받아들여 미숙하게 소화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과 미국은 서로를 잘못 판단하는 오류를 가졌지만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으로 전쟁은 끔찍한 절정을 맞았다.



1968년에는 독일을 앞지르며 세계 2위의 자본주의 경제대국으로 도약했지만 생활은 회사 업무 중심으로 돌아갔다. 대기업의 화이트 칼라에서 시작된 문화의 변화는 블루칼라와 중소기업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지만 일본의 여성들은 배제되었다. 그러나 오히려 이러한 배제가 여성 자신과 그들의 남편, 자식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결혼한 여자에게는 암묵적인 퇴사의 요구, 노처녀에게는 '노처녀'라고 낙인 찍힌 시덥잖은 사무직이나 '물장사'외에는 다른 길이 없었다. 요즘 남녀평등이나 일부 여성상위집단을 생각하면 이런 일이 요즘도 있을까 싶지만 불행히도 아주 사라지지는 않은 듯하다. 경력단절로 인한 재취업의 어려움이나 딩크족의 증가는 이러한 현실의 반영이 아닐까?



현재 일본에서 최고의 수익을 올리고 있는 회사들은 우리가 '일본 기업'하면 떠올리는 그 회사들이 아니다.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리고 있는 곳은 자신들의 산업 분야 바깥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도 않은 제조업체들이다. 더뎌진 경제성장으로 연공서열식의 종신고용제는 재정적으로 감당하기 힘들어졌다. 평생 직장에서 평생 직업으로 이제는 서너개의 예비 직업을 갖출 능력이 요구되는 우리의 현실과도 닮은 모습이다. 번듯한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는 것은 일본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예고나 아량없는 대량해고를 서슴없이 한다면 일본과 우리는 희망퇴직, 명예퇴직이라는 인정을 보이는다는 점이다. 그들이 비운 자리는 비정규직, 계약직들이 채우게 되겠지만.

서로를 적대시하면서도 많이 닮아 있는 한국과 일본.

그러한 와중에도 보이는 뚜렷한 차이는 분단 국가라는 우리의 현실과 그들이 섬으로만 특히 지진의 위험에 자주 노출되는 지형이라는 특수성을 무시할 수 없다.



일본 지도층의 쇠퇴를 설명하며 본문에 거론된 기시 노부스케를 "404. 탁월한 지적 능력과 경쟁력 및 현실감각을 뿜어내는 위인이었다."고 표현한 것은 너무나 불쾌하다!!!! A급 전범을!!!!! 최근 마크 램지어의 위안부 언급의 논문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는 미리 막을 수 있었음에도 수리 작업의 경고를 무시한 대가는 컸다. 틀린 것을 인정하기 보다는 모르쇠와 발뺌으로 일관하는 모습은 과거나 현재나 변함없이 일관성이 있다.



일본과 한국의 근본적인 문화의 차이는 지형적 특성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그들의 역사와 끊임없이 함께 해 온 지진이 그들을 개인적 사고를 할 수 없는 집단 사고와 집단 행동에 길들였다는 시각이다. 재앙에 가까운 천재지변을 개인으로서는 감당하고 대처하기 어려웠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도덕성의 기준마저 다른 것은 단지 지형적 이유뿐일까?

​*위 도서를 소개하면서 출판사 글항아리로부터 무료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