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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의 정치사상 세트 (전3권) (반양장) - 전체주의의 기원 + 인간의 조건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나 아렌트 지음, 이진우.박미애.김선욱 옮김 / 한길사 / 2017년 3월
평점 :
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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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나아렌트 (지음) | 김선욱 (옮김) | 한길사 (펴냄)
세상의 이목이 집중되었을 아이히만의 재판이 독일의 뉘른베르크 재판보다 더 큰 관심을 끌었던 이유는 오로지 유대인 법정만이 유대인에게 정의를 실현해 줄 수 있으며, 그들의 적들을 심판하는 것 또한 유대인이 해야 할 일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99. 유대인은 완전한 시민이 될 수 없었고, 공무원이 될 수 없었으며, 언론 활동에서 배제되었고,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 8월 2일 이후로 독일 국적을 취득한 사람들은 국적이 박탈되었는데, 이는 추방될 수 있음을 의미했다.>
유대인에 대한 독일의 첫번째 정책은 '추방'이었다. 강제이주가 유대인 문제를 해결하는 공식적인 방법이었지만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딜레마에 직면했다. 유럽에서 유대인을 완전히 제거하고자 했던 계획은 더 이상 이주 시킬 어떠한 지역도 존재하지 않게 되자 '전멸'이 유일한 해결책이 되었다. 노동을 통한 살인이라고 만큼의 노동 조건의 수용소들에서 유대인들이 사망했다.
학살이 자행되기 시작하면서는 제거, 박멸, 학살 같은 명백한 의미의 단어가 씌여 있는 보고서를 발견하는 것은 드물었다. 학살을 처방하는 암호는 '최종 해결책', '소개', '특별취급' 등이었다. 이런 암호로 의사소통을 해야 할 사항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이 비밀이 결코 인도주의적 사상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행위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반증이 될 것이다. 살해에는 가스실과 이동용 가스차량이 사용되었다. 문제는 양심을 어떻게 극복하는가가 아니라 동물적인 동정심을 어떻게 극복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일제 치하의 시대에 친일을 하며 제 안위를 보장받았던 조선인이 있었듯이 유대인이 학살되는 그 현장에도 동포들 가슴에 노란색 별을 달고 유대인의 정신적, 물질적 부와 인력에 대해 처분할 수 있는 권리를 받은 자들이 있었다. '소'를 희생하고 '대'를 구한다는 스스로에게의 핑계가 있었을지는 몰라도 결과로 마주하는 진실은 끔찍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분류작업과 진실을 침묵할 수 있는 권한은 진정 누가 준 것일까? 양심의 소리는 내 안의 소리가 분명한가? 스스로가 타당하고 옳았다고 부끄러움이 없다면 양심적이란 말인가? 타인의 평가가 기준이 된다면 혹은 도덕심이 기준이 된다면 시대와 문화의 차이에 따라 가변적인 기준은 어디에 중심을 두어야 할까?
아이히만은 양심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198. "양심의 소리에 자신의 귀를 가까이 할" 필요가 없었다. 그것은 양심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의 양심이 "자기가 존경할 만한 목소리와 함께 ", 자기 주변에 있는 사회의 존경할 만한 목소리와 더불어 말했기 때문이다. 그의 양심을 불러일으키는외부로부터 온 목소리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이히만의 주장 가운데 하나였다. >
법을 준수하는 것이 시민의 의무라고 생각하고 명령을 수행하는 맹목적인 복종에 의한 살인은 '악법도 법이다'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자신이 속한 사회체제의 안녕을 위해 마냥 지키기만 해야 할 것인가?
아이히만이 반쪽 유대인이었던 조카와 한 유대인 부부를 도운 일을 자신의 상관에게 '죄를 고백했다'고 말했다고 한 사실에 대해서는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어느 것을 '선'과 '죄'로 볼 것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
<296. "나치스의 홀로코스트에 대한 기억이 모든 유대인을 휘젓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재판을 진행하는 동안 이러한 감정을 억제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가 될 것이며, 이러한 의무를 우리는 존중할 것입니다." 이는 충분히 옳은 것이며 공정한 것이었다.> 한나 아렌트가 보인 이 공정하다는 시각이 유대인들에게 불편함을 주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우슈비츠로 유대인들을 이송하는 일을 했지만 단 한 사람의 유대인도 죽이지 않았다는 아이히만의 진술은 언젠가 들었던 술을 먹고 운전은 했으나 음주운전은 아니었다는 모 연예인의 얘기가 생각난다. 아우슈비츠로 이송되는 이유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 않은가?
343. 그는 결코 유대인 혐오자가 아니었고, 그는 결코 인류의 살인자가 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의 죄는 그의 복종에서 나왔고, 복종은 덕목으로 찬양된다. 그의 덕은 나치스 지도자들에 의해 오용되었다. 그리고 그는 지배집단의 일원이 아니었고, 그는 희생자였으며, 오직 지도자들만 처벌을 받아야 한다.
"나는 괴물이 아니다. 나는 그렇게 만들어졌을 뿐이다. 나는 오류의 희생자이다."라고 아이히만은 말했다.
과연 그럴까?
명령에 무조건적인 복종을 한 아이히만을 희생자라고 보는 시각은 아마도 한나 아렌트가 유일하지 않았을까? 재판의 중립을 지키겠다고 한 판사들이 내린 판결의 결과는 아이히만을 희생자로 정의하지 않았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