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 매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도입부는 시작부터 묵직하고 먹먹하다. 장길산에 대해서는 홍길동, 임꺽정과 함께 3대 도적이라 불리웠지만 유일하게 잡히지 않은 도적 두목이라는 사실외에는 아는 바가 없다. 새롭게 리뉴얼된 4권 합본의 장길산을 시작하면서 드라마를 보지 않았길 다행이라 여기고 있다. 내가 했던 기대보다 더 큰 기대를 주는 도입부에서 이미 반했다.
만삭의 도망 노비였던 여자를 도와 위기에서 그녀를 빼돌리고 도망을 돕던 광대 손돌패의 장충은 길에서 그녀의 아이를 받았다. 유언대로 아비를 찾아주려 했지만 찾을 수 없는 행방에 아이의 이름을 길산이라 짓고 키운다. 자유를 위해 도망 노비가 되어 길에서 죽어간 사람들과 길산처럼 길에서 태어나야 했던 목숨들이 어찌 이들 뿐이랴.
처절한 궁핍 속에 끼니를 잇기 위해 자식을 내다 팔아야 하는 부모와 도적이 되어야 했던 이들. 몇푼의 약값보다도 못한 목숨이 되어 길에 버려지고 바닥의 인생에서도 인정과 도리를 져버리지 않았던 민초들. 그 바닥의 인생에서도 인연은 만들어지고 어긋나기도 했다.
대하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초반의 늘어짐이 전혀 없는 몰입감이 대단하다. 꾸준히 사랑받는 충분한 이유가!!!
태생과 신분이 진리가 되고, 죄가 되는 세상에서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 역도가 되는 억울함. 불의를 참지 못하는 정의감은 영웅이 아니라 주변의 사람을 다치게 하는 모난 정이 되어, 살고 자란 마을을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만들어 버렸다.
부귀가 있는 자는 관직을 매수해 신분을 높이고 양반은 계급을 권력으로 휘두르니 가진것이 몸뚱이 뿐인 천인은 그 마저도 제 뜻대로 할 수가 없다.
이 장대한 대하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하나하나 소흘히 할 만한 인물이 없다. 송도 배대인네 행수인 박대근과 구윌산의 제갈량 김기, 길산과 그를 가슴에 묻은 묘옥과 그런 묘옥을 가슴에 품은 이경순.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들은 만나 원한을 만들고, 만나야 할 사람들은 늘 간발의 차로 서로 비껴가는 안타까움 속에 셀 수 없는 인연은 엉키고 엉킨 실타래가 되어간다.
과연 길산은 친부와 묘옥을 찾아 만날 수 있을까? 생각보다 행동이 빠른 갑동의 성급함은 매번 일을 키우는 아슬아슬함을 주고, 박대근의 의리와 수완은 이들에게 힘이 되어 준다. 구월산의 마감동패와 노적산의 복만의 패는 끝까지 자신들의 무리를 지켜나갈 수 있을까?
길산이 살아있음을 알리 없는 묘옥은 경순의 마음을 받아 줄까?
오래 전 그들의 인생사는 지금 보아도 구슬프다...
*위 도서를 소개하면서 출판사 창비로부터 무료로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