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장을 덮으며 의사 아내의 깊은 외로움이 느껴져 아팠다. 눈뜬자들의 세상에서 소수가 되어버린 눈먼 자들, 그 소수안에서 또 다른 소수인 눈뜬 자로 살아가는 의사아내의 외로움.
우리가 일상적으로 정의하는 '이름'은 나와 타인을 구분짓는 나의 정체성을 대표한다. 그러나 이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는 단 한명의 이름도 거론되지 않는다.
[87. 우리는 세상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이제 곧 우리가 누군지도 잊어버릴 거야, 사실 이름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렇다면 '나'의 정체성은 무엇으로 찾아야 할까?
[410. 눈먼 사람들에게는 이름이 필요 없소. 내 목소리가 나요, 다른 건 중요하지 않소.]
타인의 목소리로 불러주는 이름이 아닌 내가 드러내는 나의 목소리가 나의 정체성을 대변한다!
맨 처음 눈이 먼 남자의 아내는 남편을 병원으로 데려가기 위해 집을 나서며 동네 사람이 나타나면 자연스럽게 행동하면서 앞을 못 본다는 것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하라고 했다. 왜일까? 혹시 우리가 우리 사회의 소수를 바라보는 시각이 이렇진 않을까?
남편이 눈이 멀어버린 황망한 상황에서 한 여자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했고 다른 한 여자는 스스로 소수가 되는 길을 선택해 남편을 따라 나섰다. 처음에는 남편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 행동이었지만 수용소 안에서 그녀는 사회 소외계층이었거나 소수이며 약자인 노인, 창녀, 아이, 여자들의 보호자가 된다. 소수의 무리에 다수였던 그녀는 자발적 소수가 된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의사의 아내는 차라리 자신도 눈이 멀었다면 좋았겠다고 생각한다. 계속되는 희생이 힘들고 지쳤다기 보다는 소수 속에서 더 소수로 지내는 깊은 외로움과 그들의 아픈 현실을 지켜보는 아픔이 너무도 괴로워서 였을 것이다.
눈먼 자들을 대하는 외부의 시선은 혐오와 두려움으로 차별과 적대가 심해지고 수용소 안에서는 소수인 눈먼 자들간에 편이 갈리며 지배와 폭력으로 그 안에서의 또 한번의 약자인 여자들의 희생이 강요된다.
역사를 돌이켜 보아도 인종,종교,계급의 차별과 전쟁의 최대 피해자는 언제나 약자인 여자들의 성적인 피해가 빠지지 않고 자행되어 왔다.
남편의 수염을 다듬어 주고 싶었던 가위로 살인을 하게 된 의사의 아내를 누가 비난하고 심판할 수 있을까? 눈이 보이지 않는 시간이 점차 길어지면서 곧 오래지 않아 생활의 불편을 넘어선 생존과 인간의 존엄에까지 이르는 생각을 해보게 한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전염으로 사람들 모두가 하얀 실명으로 눈먼 자들이 되었다. 세상이 온통 눈먼 자들의 세상이 되고 난 후에야 이들은 소수가 아닌 군중속 익명이 되었다. 그리고...세상이 다시 눈을 뜨는 사람들로 늘어가며 "눈이 보여" 라는 소리로 채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