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 열린책들 파트리크 쥐스킨트 리뉴얼 시리즈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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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
파트리크쥐스킨트 (지음) | 유혜자 (옮김) | 열린책들 (펴냄) 


조나단 노엘은 7층 24번방에서 수십년을 지내며 오십대가 되었다. 매일 아침 복도 끝 공중화장실을 사용하는 그는 오갈때 다른 이들과의 대면과 접촉을 끔찍할 정도로 싫어하고 수치스러워 한다. 

《11. 그곳은 조나단에게 불안한 세상 속의 안전한 섬 같은 곳이었고, 확실한 안식처였으며, 도피처였다.》

어린시절 겪은 전쟁과 차례로 실종되어버린 어머니와 아버지의 부재, 군대에 다녀오니 이민 가버린 여동생. 친척 아저씨가 정해준 여자와의 결혼, 결혼 4개월만의 출산 그리고 아내의 도망.
조나단이 사람에게서 안식을 얻을 수 없었던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감옥의 방 하나와 비슷한 크기의 24번 방에서 그는 안식과 안전을 보장받았다. 무엇으로부터의 안전과 안식이었을까?
타인에 대한 믿음? 기대? 배신?

어느 날 갑자기 문앞에 날아든 비둘기 한 마리로 그의 일상은 무너진다.
은행의 경비로 일하는 그는 자신과 스핑크스를 비교해 본다. 스핑크스는 도굴로 부터 피라미드를 지키지 못하고 자신은 강도로 부터 은행을 지킬 자신이 없다. 존재의 이유는 있는데 가치가 없는 존재인걸까?

《53.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휴가도 조금 받고, 월급도 쥐꼬리만큼 받으면서도, 월급의 대부분은 세금이니, 임대료니, 사회 보장 보험 분담금 등으로 흔적도 없이 뺏기며 인생의 3분의 1을 은행 앞에 서서 허송하는 일로 지내는 노릇이 도대체 의미가 있는 일인지에 대한 회의를 종종 품기도 했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현재'를 유지하기 위한 도시인의 고뇌는 만국 공통인 듯 하다. 서글픔...

​《55. 문 뒤로 슬쩍 사라질 곳이 이렇게 큰 도시에 없었다.》

군중 속에 익명으로 존재감없이 살면서 막상 슬쩍 사라질 공간조차 허락되지 않는 익명성 부재의 아이러니.
단정한 자신은 바지의 구멍마저도 과민 반응하며 초조, 불안해 하는데 길에서 본 거지는 더럽고 가진 것이 없어도 행복하고 편안해 보인다. 노엘은 거지를 보며 오히려 심리적 박탈감을 느낀다.

​《80. 그 모든 것을 그는 자기 자신의 의지는 전혀 개입시키지 않고 완전히 자동적으로 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모습이다.
반복되는 일상, 틀에 박힌 일상에서 비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도피를 한 노엘은 마치 관을 연상케 하는 좁디좁은 호텔방에서 인생 처음으로 내일을 계획한다. 자살 계획을!
스핑크스, 줄 끊어진 꼭두각시, 거지를 통해 자신과 비교하며 자기를 찾아가는 노엘은 용기를 내어 비둘기가 장악했을지도 모를 집으로 돌아간다. (트라우마를 벗어나려는 조나단 노엘씨에게 박수를~!!)
심호흡 후에 눈에 담은 복도는 비둘기가 들어왔던 창문도 닫혀 있고 깨끗이 치워져 있었다.

​내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 타인에게는 트라우마가 될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개인이 지나온 과거와 경험이 각각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 차이에서 오는 다름이 보편적이지 않다고 해서 손가락질 할 일일까? 어리석어 보이거나 때로는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일지라도 말이다. 
내일의 일상은 오늘과 같겠지만 한 걸음 내딛는 내가 바뀌었다면 일상의 의미는 달라질 것이다.
조나단 노엘과 우리의 다른 내일을 기대해 본다.


※출판사의 지원을 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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