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만큼 보이는 세상 한무릎읽기
배정우 지음, 홍자혜 그림, 정영은 옮김 / 크레용하우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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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덟살때까지 피아노를 쳤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고등학교 2학년 1학기가 시작될 무렵 피아노 학원에 그만 다녔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계속할 수 없는 꿈을 지금 생각해보면 줄기차게 이어왔던 것 같다. 그래도 참 행복했다. 음악 선생님께서 아침마다 내어주셨던 음악실의 피아노는 그 시절의 나를 꿈꾸게 만들었으니까.


그때부터였을까.

나는 음악은 상처를 치유하는 힘이 있다고 믿게 되었다. 루이스처럼 피아노를 마주하고 때로는 행복에 때로는 어둠에 마치 혼자 맞서 견디는 것 같은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그래도 음악은 늘 나를 위로하는 창이 되어주곤 했다. 그렇기에 어쩌면 나는 무던히도 아침마다 음악실에 갔던 걸지도 모르겠다.


열네살의 소년이 쓴 글은 내 안에 작은 울림이 되어 주었다. 오래 잊고 있었던 소중한 꿈을 일깨워주기도 했다. 그렇게 때로는 아이가, 아이의 말이, 그 시선이 어른의 또다른 창이 되어주기도 한다. 열네살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만큼 종이의 여백에 눈을 돌릴틈도 없을만큼 나는 소년의 글에 꽤 빠져있었던 것 같다.


요즘 우리 아이들은 꿈이 없다. 희망이 없다. 학교를 마친 아이들은 학원에 가고, 학원 선생님이 알려준 요점정리를 토대로 시험 공부를 한다. 전년도 기출 시험지를 놓고 문제 풀이를 하고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가서는 내내 친구들과 휴대폰으로 메시지를 주고 받거나, 게임을 한다. 그러곤 휴대폰을 손에 든 채 잠이 든다.


꿈을 물으면 부모님의 꿈을 대답하는 아이들. 부모님들의 바람 1순위는 대부분 공무원이었다. 엄마가 그러는데요, 아빠가 그러는데요. 공무원이 제일이래요! 그래서 저는 공무원이 되고 싶어요. 꿈이요? 에이, 어차피 이루지도 못하는걸요. 사실은 미술 학원 다니고 싶은데 엄마가 무슨 미술이냐고 그래요. 미술은 돈이 안된다고 그런거 하지 말래요.


작년 이맘때 나의 꿈에 대한 주제로 수업을 하며 나는 가슴이 무척 먹먹했다. 초등학생도, 중학생도, 심지어 고등학생도. 꿈을 잃은 아이들 같았다. 물론 모든 아이들이 그러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꿈이 없는 아이들이 더 많았다. 그 아이들은 루이스보다 더 좋은 오늘을 살고 있는데…


책의 제목처럼 믿는 만큼 보이는 세상이라고, 노력하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아이들이 믿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다시금 언젠가 나의 꿈에 대한 주제로 수업을 하는 그 날에는 아이들의 입에서 선생님 제 꿈은요, 선생님 저는요, 라며 꿈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나누었으면 좋겠다. 이룰 수 없는 꿈이 아닌, 이룰 수 있는 꿈이라는 것을 그리고 재능보다는 노력이 더 가치있다는 것을 말해줄 수 있는 나이기를 함께 꿈꾸어본다.


중학교 입학을 앞 둔 아이들이 읽으면 참 좋을 것 같다. 열네살 소년이 아이들에게 전하는 희망의 글은, 꿈을 잃은 채 방황하는 청소년의 접힌 날개를 스르르 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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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 : 나를 깨우는 짧고 깊은 생각
배철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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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바다를 연상시키는 책, 심연이 내게로 왔다. 매일 아침, 기꺼이 인생의 초보자가 되라는 배철현 선생님의 말씀.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성찰의 4단계가 있어야한다고. 나를 바라보고, 나를 발견하고, 나를 깨닫고, 나다운 삶을 만들자. 그것이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자기 성찰의 4단계이다.

글은 1부에서 4부까지 이어진다.
고독의 시간 1부, 관조의 시간 2부, 자각의 시간 3부, 용기의 시간 4부.
깊은 바다로 빨려들어갈 것만 같은 느낌의 책과 생각의 방에 들어갔다. 내 안의 나를 마주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나는 유난히 새벽을 좋아한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좋기 때문이다. 그 누구에게서도 간섭을 받지 않는 시간, 주변의 소음도 줄어드는 시간이기에 집중이 더욱 더 잘되는 새벽의 시간을 사랑한다. 그리고 기다린다. 어쩌면 새벽의 시간은 내게 자아성찰을 가져다주는 시간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윤동주 시인의 <참회록>이 떠올랐다.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반성하고 성찰하는 내면 세계를 담은 시 <참회록>에서 그는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고 되뇌었다. 시대적 배경에서의 차이는 있으나, 자아 성찰이라는 주제면에서의 접근과 선생님의 글에서 말하는 4단계는 서로 조금씩 닮아있다.

혼자만의 시간은 여러 생각을 가져온다. 이 시간은 고독의 시간이다. 외로움의 시간이 결코 아니다.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 내가 나로서 더욱 더 분명해지는 시간.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고독은 다른 이들과 어울리지 못해 불안해하는 외로움의 상태가 아니다. 외로움과 고독은 서로 다른 의미이다. 하지만 외로움이 고독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적잖이 있다. 왜일까, 왜 그들은 외로움이 고독을 말한다고 생각할까?

고독의 시간은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좋은 시간이 되어준다. 조금은 멀리서 객관화적으로 들여다보는 고독의 시간은 그 무엇의 방해에도 굴하지 않는다. 나는 고독의 시간을 좋아한다. 새벽에 즐기는 그 시간속의 나는 무척 행복하다. 선생님의 말씀처럼 자신의 생각을 가장 소중히 여기고, 자신의 심연에서 우러나오는 나만의 유일한 임무를 찾아내는 자가 가장 행복한 사람이므로, 그 말씀에 따르면 나는 꽤나 행복한 사람인 것이다.

일을 하면서는 고독의 시간을 즐기지 못했다. 늘 시간에 쫓기고, 여유가 있을 때에는 잠으로 시간을 보냈다. 내가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한 순간에도 나는 늘 다른 무언가를 행했다. 그렇게 이십대를 보내면서 나는 이십대의 나를 마주하지 못함에 대해 아쉬움을 느꼈다.

일을 쉬면서 바라보는 삽십대의 나는 꽤나 감성적이다. 일하면서 느끼지 못했던 감성이 새벽이면 고독의 시간과 함께 되살아난다. 선생님처럼 글을 쓰기도 하고, 나 자신과의 대화를 시도해보기도 한다. 다른 이와의 소통으로 몰랐던 나를 알게되기도 한다. 책을 읽으며, 때로는 글을 옮기며 보내는 고독의 시간은 자칫 나태해질 수 있는 나를 바로잡아주는 유일한 시간이다.

아버지는 5시면 일어나신다. 여름이면 4시에 일어나 밖으로 나가신다. 논을 돌아보고, 밭을 돌아보며, 하우스를 들여다보신다. 한번은 아버지께서 내게 새벽의 시간이 무척 고요하고 아름답다고 하셨다. 들판의 푸른 생명들의 소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 냄새가 얼마나 향기로운지 아느냐면서 말이다. 아버지의 말소리에는 고요함이 담겨 있었다. 자연을 대하는 태도, 자연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시선에는 마음이 담겨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버지께 새벽이란, 고독의 시간이었으며 동시에 자연과의 安寧을 말하는 시간이었던거다. 어려서의 나는 미처 몰랐던, 아버지의 고독과 관조. 그 깊은 깨달음을 나는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흔히 시 수업을 하다보면 '관조적'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관조적인 성격의 시이다,라고 말하곤 한다. 관조적이라는 말 뒤에는 늘 깨달음이란 단어도 함께 따라온다. 고요한 마음은 깨달음을 불러온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자아성찰의 밑바탕이 되어준다. 윤동주 시인의 <자화상>을 보아도 그러하다.

마음에는 또다른 나가 있다고 한다. 그 마음의 세계에서 또다른 나는 괴물이 되어가기도 한다. 악한 생각을 불러오기도 하며, 마음과는 다른 언행을 불러오기도 한다. 선생님의 말씀처럼 세상에서 가장 무섭고 두려운 존재, 그러나 반드시 싸워 이겨야 하는 존재는 바로 '나 자신'이라는 괴물이다. 내가 나를 뛰어 넘을 수 있어야 또다른 나를 만나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용기인 셈이다. 용기는 스스로 행해야한다. 누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닌, 스스로 자각하고 깨우쳐야하는 숙제인 것이다. 나다움을 찾기 위해 꼭 필요한 용기, 그 용기의 첫걸음을 디디는 순간에야말로 나는 또다른 나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 본 포스팅은 북캐스트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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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것들
셀레스트 응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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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있다. 그리고 차마 말하지 못하는 것들이 존재한다.

생각해보면 별 것 아닌 것인데도 괜히 말하면 기분이 상할까봐, 혹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까봐 입 밖에 내지 못하고 담기 바쁜 날들도 분명 있다.


어려서 성적표를 받고 집에 가는 날, 어쩌다 한번씩은 원하지 않는 점수에 고개를 푹 숙인 채 귀가하기도 했다. 성적표가 나왔냐는 물음에 글쎄,라고 답하던 시간. 맘 졸이며 시간을 보내다가 나름대로의 각오를 하고 엄마께 성적표를 내밀던 순간. 감춘다고 말하지 않는다고 마음까지 감출수 없었던 모양이다.


나와 당신이 만나 가정을 이루고, 나와 당신을 닮은 아이를 낳으며 오늘을 살고, 내일을 기다리며 꿈꾸는 시간들. 서로가 서로에게 믿음을 주고 있지만 공공연하게 말할 수 없음도 만드는 오늘. 서로 다른 성격임에도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자 부적응자처럼 행동하는 모습은 보는 이의 가슴을 아리게 만든다. 리디아네 가족의 모습은 내내 아리게 다가왔다.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다문화 가정이 있다. 다문화 가정의 아이가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놀림 아닌 놀림을 받기도 한다. 실제로 학원에 근무했을 당시, 초등학교 1학년 남자아이가 반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야! 넌 한국사람 아니잖아. 근데 왜 한국사람처럼 행동해?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너네 엄마는 한국사람 아니랬어. 그러니까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며 아이는 아이에게 상처를 주었다. 보다못한 내가 타일렀지만, 아이는 아마 시간이 꽤 지나서야 자신의 잘못을 알아챘을 것이다. 다름과 틀림의 의미까지도 말이다.


상처는 받아본 사람만이 안다고 한다. 상처를 준 사람은 자신이 상처를 줬는지 알지 못한다고 한다. 사랑 또한 마찬가지이다. 온전하게 그 자체만 놓고 사랑을 한다는 것이 과연 쉬운 일인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는지, 가령 아이가 공부를 못한다면 아이가 내 기대치를 못채운다면 나는 과연 어떻게 행동할지에 대해서. 물론, 어디까지나 소설 속의 이야기이지만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는 빈번하게 일어난다. 수능 후, 자살의 길로 나아가는 아이들. 부모님의 부담어린 사랑에 도망치듯 어둠의 길로 긴 여행을 떠나는 그 가엾은 청춘들. 누가, 그들을 그 길로 떠나게 했다는 것일까.


행복은 어쩌면 순간의 감정일지도 모르겠다. 정해진 것 안에서의 행복은 늘 그랬던 것도 같다. 소나기가 내린 뒤의 무지개가 잠시 잠깐의 행복을 주는 것처럼 그렇게 행복 또한 사라져버렸던 것은 아닐지. 실제 없는 행복감이라는 것이 오히려 리디아를 호수로 내몰았던 것은 아닐지. 왜, 그리할 수밖에 없었을까.


어쩌면 누구나 그런 생각을 안고 살지도 모르겠다. 다시 태어난다면, 다시 시작한다면. 그래서 리디아처럼 호수로 걸음을 옮기는 걸지도 모르겠다. 말 없는 외침은 누구를 향한 것일까. 혹시 나 자신을 위한 외침은 아니었을까. 나 조차도 다름을 깨닫지 못한 채, 마음속으로는 수어번 호수를 걸었다 나왔다 그랬던 것은 아니었을까.


자식을 가장 모르는 사람이 부모라고 한다. 부모이기 때문에 자신의 자식을 가장 잘 모르는 것이라고도 한다. 우리 아이는 절대로 그런 아이가 아니라면서, 그럴 일이 없다면서 손사래를 치는 사람들. 자식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생각해보게 하는 소설이었다. 누구에게나 꿈이 있지만, 그 꿈을 내 아이에게까지 짊어주면 안된다는 생각도 함께 자리했다.


첫 소설은 작가가 가장 많이 사랑한다고 한다. <내가 너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것들>은 셀레스트 응의 첫 장편소설이다. 하기에 어쩌면 그녀가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이 녹아있는 작품인지도 모르겠다. 감정의 선이 살아있는 작품, 그래서 묘한 이끌림이 전체적인 내용속에 녹아있던 글이었다. 때로는 가슴을 졸이며, 때로는 먹먹해지는 가슴을 감싸안으며 읽었던 그녀의 소설.


한 발자국 뒤에서 가족에 대한 바라보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해준 <내가 너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것들>. 이 글을 지금도 어디에선가 내 아이를 위해 백일기도를 하고 있을, 조금은 이기심에 치우친 고3의 부모님들이 읽어보셨으면 좋겠다.




** 본 포스팅은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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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순, 고귀한 인생 한 그릇 - 평범한 인생을 귀하게 만든 한식 대가의 마음 수업 인플루엔셜 대가의 지혜 시리즈
심영순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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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장날마다 시장에 가셨다. 중학교에 다니면서부터는 할머니와 항상 첫 차에 올랐다. 읍내에 버스가 도착하면 할머니는 장에, 나는 학교에 갔다. 먹거리로 장난치는 놈들이 세상에서 가장 나쁜 놈들이라고 말씀하셨던 할머니. 할머니에게 장은 일터이자, 흙 냄새를 뽐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심영순 선생님의 마음 수업은 내게 할머니를 떠올리게 했다. 1장부터 8장까지 이어지는 선생님의 삶에서 나는 할머니를 보았다. 물론, 할머니는 그리 신여성(내가 느낀 선생님의 모습은 신여성, 그 자체였기에)은 아니셨다. 시골에서 나고 자라, 평생 흙 속에 파묻히듯 살아오신 분이기에. 한글도 잘 쓰지 못하셨으며, 사람들을 가르치는 선생님 또한 아니셨다. 그럼에도 나는 선생님의 삶이 담긴 글에서 할머니를 마주했다. 사람 입으로 들어가는 먹거리로는 장난을 치면 안된다셨던 할머니와 우리것을 지키고자 무던히 애쓰시는 선생님의 마음이 모두 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할머니는 나를 위해 해마다 팥을 심으셨다. 손녀딸이 팥 들어간 음식을 좋아한다면서 늘 나를 위해 팥을 심고 팥을 따셨다.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며, 흙 냄새가 참 좋다고도 하셨다. 사 먹는 것은 믿을 수가 없다고, 그러니 너무 좋아하지 말라고. 사 먹을 일이 생기거든 장에 가서 찬거리를 사다가 집에서 해 먹으라고. 요즘 젊은 사람들은 뭘 그렇게 사 먹는 음식을 좋아하냐면서. 한 푼 한 푼 모을 생각을 왜 안하고 허투루 쓰기 바쁘냐면서 혀를 차셨다.

시장이 얼마나 좋은 지 아냐면서. 사람 냄새나는 곳은 시장이고 흙 냄새나는 곳은 밭이라면서, 늘 내게 말씀해주셨다. 남은 옥수수를 떨이로 넘기고 막차에 오르는 날, 그런 날에는 동생과 내가 좋아하는 호떡이 할머니 손에 들려 있기도 했다. 오직 가족을 위해서, 일하셨던 할머니. 슈퍼가 아닌 시장을 좋아했으면 좋겠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던 할머니가 선생님 글 속에 계셨다.

엄마는 요리를 잘 하신다. 칠남매의 장녀인 엄마… 어려서부터 외할머니를 도우며 살림을 익혔던 엄마는, 유년 시절 곳곳에 힘듦이 있었노라 고백하듯 말씀하셨다. 식당을 하셨던 외할머니, 그 덕에 살림을 도맡아 했던 엄마. 어쩌다 한 번씩 진 밥을 하거나 음식을 짜게 하면 불호령이 떨어졌다고. 그래서 늘 밥 하기가 무서우셨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날, 밥 하는 게 재미있어졌다고 하셨다. 동생들의 입에 무언가 넣어줄 때의 즐거움을 잊을 수 없었다고. 외할머니가 자리를 비우시면 동생들과 이것저것 해먹는 음식, 그 날의 기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고 말씀하신다. 덕분에 어려서부터 나는 사 먹는 음식이 아니라 집 밥을 많이 먹었다. 다른집 엄마들은 생일파티를 밖에서 열어주곤 했지만, 엄마는 늘 집에서 생일잔치를 열어주었다. 파티가 아닌 잔치. 엄마의 정성으로 가득한 생일상을, 지금도 나는 잊지 못한다. 선생님처럼 모질고 혹독하게 음식을 배웠던 것은 아니셨을거다. 그러나, 어린 엄마에게는 당시의 순간 순간이 참으로 모질고 혹독하게 기억되지는 않았을까.

나는 지금껏 살림 수업이나, 신부 수업을 받아본 적이 없다. 더군다나 작년까지는 계속 일을 했는지라 결혼을 했어도 살림보다는 일이 주가 되었다. 살림보다는 일이 먼저였기에, 늘 해먹는 밥보다는 사 먹는 밥이 많았다. 그러다가 올해부터 일을 쉬기 시작했다. 일을 쉬니, 쉼의 시간도 덩달아 생겼다. 신랑이 퇴근할 무렵이면 반찬 걱정도 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내게 이제 더 이상 일을 하지 않으니, 살림에 재미를 붙여보라 말씀하셨다. 사 먹는 밥보다 해 먹는 밥이 더 맛있는 법이라고도 말씀하셨다. 김치 하나를 놓고 먹더라도, 사 먹는 김치보다 집에서 담군 김치가 더 맛있지 않냐면서. 어차피 사 먹을 김치찌개라면, 집 김치로 해야 더 맛있지 않겠냐면서. 나의 마음을 돌리려 애쓰셨다. 아직, 살림에 미숙하기 그지없는 나이지만 그래도 사 먹는 밥보다 해 먹는 밥이 더 소중하다는 것은 이제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신랑과 함께 먹는 집밥. 그리고 아가가 생기면 아가와 함께할 집밥. 집에서의 시간이기에 그 어느 곳에서의 순간보다 훨씬 값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게 올 아가도, 집밥을 좋아하는 아가로 자랄 수 있도록 노력하는 우리가 되어야겠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나는 시장에 가지 않았다. 시장에 가면 머리가 희끗한 할머님들이 많으실테고, 그럼 난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에 멍하니 하늘을 바라볼까봐, 그렇게 또 아무것도 하지 못할까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갈 일이 있어도, 신랑에게 줄곧 부탁했다.

하지만 다가오는 명절에는 용기를 내어 시장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움에 사무치는 시간이 될지라도 이번만큼은 희미하게나마 시장에서 웃음 짓고 돌아올 수 있는 내가 되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갓 지은 밥으로, 내가 손수 차린 차례상에 정성도 한 가득 올려놓아야겠노라 다짐했다. 감사의 마음으로 말이다.

살아가면서 늘 기쁠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인생에는 희노애락이 있다는 말이 있을 것이다. 어쩌다 한번씩은 신랑과 다툼이 있을 것이고, 아이가 생기면 아이와도 감정 싸움이 생길 것이다. 그 때마다 노한 감정을 내세우기보다 귀를 먼저 열 수 있는 아내로, 엄마로 살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더불어 사 먹는 밥보다 해 먹는 밥의 소중함을, 밥알에 담긴 정성을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내가 되기를 꿈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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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파는 백화점 - 나를 끌고 가는 너는 누구냐 2 마인드북 시리즈 2
박옥수 지음 / 온마인드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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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을 사러 마트에 간다. 물건을 사면 그 당시에는 기분이 좋다. 하지만 집에 와서 장바구니를 열어 물건 정리를 할 때면 "내가 이걸 왜 샀지?"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러곤 나 자신을 추궁하기 시작한다. 마음에 스스로 질책의 방을 만들어 그 안에서 자기 반성을 하는 시간. 어쩌다 한번씩 마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아. 왜일까?
 

 

 

책을 읽으며 답을 찾았다. 어떤 강한 힘이 나를 끌고 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간 나는 끌려갔던걸까. 내 안의 각오나 결심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라, 내가 내 마음을 잡아주지 못해서 마음이 바로 설 수 없었던 것이었을까. 마음은 어떤 모양일까, 생각해보았다. 혹시 나의 마음에 울퉁불퉁 혹이 가득한 것을 아닐지 내 마음의 모양은 어떤 모양일까? 나도 모르는 사이, 마음에 담을 쌓아두고 있던 것은 아니었을지,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제목처럼 마음을 파는 백화점이 있으면 좋겠다. 내 안의 마음을 팔고 다시 마음을 파는 백화점에 가서 마음을 채우고 싶다. 그렇게 하면 조급한 마음도 고쳐질 수 있지 않을까. 마음을 파는 백화점이라면, 정말 그럴 수 있지 않을까?
마음을 다스리는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하게 되었다. 나를, 우리를 불행으로 이끌어가는 어두운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면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의 울퉁불퉁함이 둥글게 깎일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마음을 파는 백화점은 어쩌면 내가 만들어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마음은 누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마음에도 세계가 있다고 한다. 그 마음의 세계를 알수록 내가 왜 슬픈지, 혼란스러운지, 왜 이렇게 흘러가는지 알게 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성경의 이야기들은 전부 마음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고 한다. 포도원 농부 이야기에는 그 마음의 세계가, 마음의 흐름이 가장 잘 표현되어 있다고 한다. 성경을 모르는 나이지만, 읽으면서 성경을 읽어봐야겠구나 생각했다. 어쩌면 종교와 성경은 서로 다른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마음의 세계가 표현된 성경, 그 안의 글을 읽다보면 인간의 마음에 대해서, 마음의 세계에 대해서 어렴풋이 알 수 있지 않을까. 내 안의 악한 생각과 더움움에 내가 전처럼 이끌리지 않고 긍정적인 생각과 올바른 마음만을 가질 수 있게되지는 않을까.
물음에 물음을 하면서, 글을 읽었다. 설득력있는 문체와 매끄러운 활자의 흐름이 마음속에 울림을 심어주었기에, 한 장 한 장 넘기는 것이 무척 아쉬울 정도였다.

 

 

지난 3월, 할머니와 헤어지고 꽤 긴 시간을 눈물로 보냈다. 그리운 사람을 다시볼 수 없다는 슬픔은 빠르게 내 안을 파고 들었고 또다시 누군가를 떠나보낼수도 있다는 생각은 점점 두려움을 만들었다. 그리고 두려움은 쉽게 또다른 두려움을 낳았다. 아무래도 내 마음에 두려움의 씨앗이 심기어 자라고 있었나보다. 내가 모르는 마음의 세계에서 말이다.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몸을 빠르게 움직였다.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하고, 주변 사람들과 약속을 잡으며 어떻게든 벗어던지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한번 심긴 씨앗이 내린 뿌리는 꽤나 깊게 자리했던 것 같다.
남편이 아기 이야기를 했다. 아기를 가져보는 게 어떻겠냐면서 함께 좋은 것을 생각해나가자며 내 손을 잡아주었다. 아가를 기다리며 보내는 시간은 내 안에 차리했던 어두움을 차츰차츰 없애주고 있었다. 남편은 시간날때마다 나와 대화하기를 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남편과의 대화가 나를 빛으로 이끌어주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옮겨 주고, 또 옮겨주는 대화를 남편이 해왔던 것이기 때문이었다. 무척 열심히, 사랑을 담아서.
지금도 남편과의 대화는 나를 빛으로 이끌어주는 하나의 길이다. 대화의 힘은 내가 지금껏 알아온 그 어떤 곳보다 큰 힘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을, 아니 확신을 글을 읽으며 줄곧 하게 되었다.
 

 

마음을 깊이 살펴보는 시간은 살면서 꼭 필요한 과정이다. 분명 내 뜻과, 내 마음과 상관없이 나를 끌고 가는 다른 생각이 있을테니 말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생각에서 벗어나려면 마음을 깊이, 천천히 살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요즈음의 우리는 꽤나 이기적이다. 어쩌면 그 이기심은 다름을 인정하지 않음에서 비롯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틀리다,와 다르다,를 같은 의미로 여기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이기심. 그 이기심은 쉽게 어두움을 불러오고, 빠르게 마음을 잠식하는 것 같다. 나만 옮다는 생각, 내가 아닌 다른 이는 잘못되었다는 그 생각은 깊게 뿌리를 내리곤 한다. 내가 왜 이러지?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아냐, 그럴만하지.라는 생각으로 자신의 모든 행동을 무마하려는 마음.
때로는 냉정하게 내 마음을 살펴보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있는 그대로의 나, 내 안에 존재하는 그 마음을 용기를 갖고 바라봐야하지 않을까?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생각이 내 머릿속을 채운다. 생각에 생각의 탑을 쌓다보면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기 일쑤이다. 무엇을 바탕으로 탑이 쌓여졌는지 모른 채 생각만을 쌓다보면 금세 무너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무너짐에도 바뀌지 않고 내 안에 뿌리를 내린 굳게 서 있는 마음을 발견할 때도 있다. 내 마음보다 더 강한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한 생각은 쉽게 어두움 속으로 나를 끌어들인다고 한다.
남편은 내 어두움을 빛으로 이끌어 줬고 어두움 대신 행복의 씨앗을 심어주었다. 묵묵히 내 옆에서, 내 손을 잡아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며 때로는 따듯하게 토닥여주면서 나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요즘, 우리 부부는 작은 행복을 기다리고 있다. 물론 아가를 향한 마음이 갈수록 커지고 있지만, 어느날 선물처럼 찾아올 어여쁜 아가에게 어두움보다는 빛을 더 많이 가르쳐주는 부모가 되고 싶다. 건강한 마음으로 행복을 옮겨주는 대화의 시간을 갖으며 서로에게 작은 행복이자, 기쁨이 되는 가족이 되어주고 싶다.

 

 

자기계발서, 마음을 파는 백화점은 인성 교육으로도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청소년에게, 그리고 나의 아이에게 권장하고픈 도서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이기심에 길들여진 채 사는 현대인에게도 꼭 필요한 자기계발서가 아닐지 생각해보았다.
우리에게 선물처럼 다가올 아이가 '나'가 아닌 '우리'를 꿈꾸는 아이로 자랐으면 하는 소망도 꿈꾸어본다. 아이의 인성 교육을 위한 지침서로도 탁월한 효과가 있을 것 같다. 곳곳에 담긴 여러 일화가 그늘 같은 쉼터 역할을 해줄테니 말이다.


 


** 본 포스팅은 북캐스트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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