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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 - 불일암 사계
법정 지음, 맑고 향기롭게 엮음, 최순희 사진 / 책읽는섬 / 2017년 5월
평점 :

종교도 없는 나는, 절에 가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고즈넉함이 이끄는 길을 따라 걸음을 옮기면 금세 마음이 차분해짐을 느낀다. 그래서 늘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면 근처 절에 다녀오곤 한다. 굳이 가는 이유를 찾노라면 '그냥'이다. 그저 발걸음이 다다르는대로 향하다보면 나는 산길에 있고, 그 길의 끝에는 절이 있다.


법정 스님의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는 2015년에 돌아가신 최순희 할머니께서 찍은 사진과 함께 시작된다. 스님의 안식처이자, 스님의 집이었던, 그리고 지금은 누군가의 집일 '불암사'의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을 담은 사진 에세이로 할머니의 시선과 스님의 시선이 한데 모아져있는 사계이다.


시골에서 태어나 산을 놀이터로 알고 자라온 내게 산은 할머니와의 추억을 많이 선물해주었다. 그래서인지 일상이 지치고 힘들면, 막연하게 집 뒤의 산을 그리워하게 된다. 그 그리움의 끝에는 늘 또다른 그리움이 있다. 아무래도 또다른 그리움이 바로 산에 대한 향수로 이어지나보다.
법정 스님이 들려주는 봄의 이야기는 만물이 춤추는 시간이었다. 꽃이 피어나고 새소리가 들리고 푸르름이 책 속에 가득하였다. 그래서 마치, 내가 사진속을 거닐고 있는듯한 착각에 빠졌다. 내가, 스님을 마주하고 있다면. 내가, 스님을 저 멀리서 바라보기를 하고 있다면. 그 날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그 날의 최순희 할머니는 어떤 모습이셨을까, 하고 떠올려보았다.


나무를 이어 의자를 만들고 아무데나 의자를 놓고 보이는 것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마음, 아무래도 여름의 산은 그 푸르름은 어느 계절보다 싱그러움이 가득할 것이다. 스님은 의자에 앉아 무엇을 보셨을까, 스님이 바라보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산이 스님을 바라보기 하고 있었을까. 순간적인 생각에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지만 스님의 시간을 아주 미세한 떨림으로 나는 느끼는 시간이었다. 아마 스님이 바라본 산은, 사계마다 다른 옷을 입고 스님과 마주하고 있지 않았을까?


계절이 깊어갈수록 의자의 빛은 계절을 입는건지, 사진 속에 담긴 의자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최순희 할머니의 시선을 따라 불임암에 가보는 것도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든 것은 가을 속에 담긴 사진때문이었다. 결실의 계절이라 불리우는 가을, 자연이 내어준 선물에 우리는 얼마나 고마운 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지. 나 자신에게 되묻는 시간, 그 시간이 바로 스님과 할머니께서 보여주신 가을속에서였다.


눈 쌓인 산의 모습은 절경이다. 소복한 옷을 입고, 겨울의 산은 빛나는 선물을 내어준다. 바람이 휘이 머물다 갈 때쯤이면 흩날리는 눈발은 가히 환상적이다. 산의 겨울잠을 스님은 의자에 앉아 바라보셨겠지, 할머니는 그런 스님의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지는 않으셨을까. 스님이 들려주는 겨울이야기는 봄과 함께 살랑살랑 내 마음을 두드렸다. 어느새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이 지나고 또다시 새로운 봄을 기다리는 것 같은 설렘 가득한 시간을 보내는 듯 하였다.

최순희 할머니께서는 불자가 아니셨다고 한다. 법정 스님의 글을 읽으셨고, 가슴속을 휘감는 깊은 슬픔과 절망을 무엇으로도 달랠 길이 없어 법정 스님의 책을 읽고 불일암을 찾으셨다고 한다. 교통이 불편하던 시절에도 한 달이 멀다 하고 불일암을 찾으셨다는 최순희 할머니. 그저 인사만 하고는 암자 구석구석, 화장실 청소까지 마친 뒤 총총 돌아섰다는 할머니. 어쩌면 법정 스님의 말씀처럼 번개처럼 왔다가 번개처럼 가셨을지도 모를, 할머니의 사진은 법정 스님의 글과 함께 사계를 살고 있다. 할머니의 사진이 만들어낸 사계의 시간은 가슴속을 휘감는 깊은 슬픔도, 절망도 없을 것이다. 사랑과 행복의 시간으로 불임암의 사계를, 법정 스님을 바라보지 않으셨을까.
** 본 포스팅은 문화충전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