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없이 어찌 내게 향기 있으랴
도종환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6월
평점 :
품절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던 나는, 어느 날 아버지의 책꽂이에서 도종환 시인의 <접시꽃 당신>을 꺼내들었다. 시가 무언지도 모를 나이, 한 행 한 행 수놓인 의미조차 알지 못했던 그 어린 나는 여러편의 시 중 몇 편을 골라 공책에 옮겼던 적이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담임 선생님이 보시곤 집에 전화를 걸어 부모님께 나의 이야기를 했던 기억. 나는 그날밤, 아버지에게 이 시집은 아직 네가 보기에 이르다는 말을 전해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내게, 도종환 선생님의 시가 찾아왔다.

 

 

서정시인이라는 말이 무척 잘 어울리는 도종환 선생님의 산문집 <너 없이 어찌 내게 향기 있으랴>를 개정판으로 다시 만났다. 언제 읽어도, 마음이 차분해지고 온화해지는 선생님의 글은 한 편의 시가 주는 위안과 감동을 넘어 더 큰 위로를 전해주고 있었다.
할머니와 헤어진 뒤, 떠도는 마음을 잡을 길이 없어 키우기 시작했던 꽃들과 화초들. 그 자연이 주는 위로를 잘 아는 나이기에, 선생님의 글은 무척 따듯했고 감미로웠다. 눈 내리는 겨울, 창가에 서서 다시 읽고 싶을만큼.

 

 

 

시골에 가면 무척 고요하다. 시골집에서의 잠은 서너시간만으로도 충분하다. 아침이면 새들이 건네는 소리에 잠에서 깨는 시골의 일상은 쉼이라 표현할 수 있다. 쉼으로 시작하여 쉼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그래서 산에서 느낄 수 있는 편안함이 고스란히 시골집 마당으로까지 전해지는 듯 하다. 아마, 선생님도 이런 마음을 느끼셨던 것 같다. 자연이 주는 선물, 그 무엇으로도 흉내낼 수 없는 소리들, 냄새들이 선생님의 글 속에 가득했다. 책장의 소리와 함께 코끝을 스치는 듯한 꽃향기로 몹시 설레었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그에 마땅한 이유 또한 존재하는 법이라고 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그냥이 없다고도 했다. 우리가 자칫 아무것도 아니라 여기는, 하찮은 것이라 여기는 그 존재에도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 당신이 있고 내가 있고 우리가 있는 이 세상은 우리로 연결되어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거라 생각한다.
도종환 선생님만의 향기 있는 글 <너 없이 어찌 내게 향기 있으랴>는 가슴팍에 깃든 향수를 불러오는 산문집으로 서정이라는 단어를 잃어가는 내게 서정을 담아주었다. 오래오래, 나를 찾은 서정과 가까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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