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usksy 2010-01-30  

안녕하세요! 우연히 인지과학 쪽의 책을 찾다가 이곳을 알게 되었는데, 굉장히 유익한 서재를 찾은 것 같아 매우 기쁩니다. 

심리학, 신경과학 쪽으로 대단히 깊은 수준의 책까지 보고 계신 것 같은데, 혹시 무슨 일을 하고 계신지 여쭈어 봐도 되나요? 

실은, 제가 지금 생명과학과에 재학 중인 대학생인데, 신경과학 분야 중에서도, 정신의 본질 쪽을 환원주의 형태로 이해하는 것을 제 진로로 생각하고 있어요. 님이 어떤 일을 하는지 알게 되면, 좀 제 길이 좀 더 뚜렷하게 보일 것 같아서 이렇게 여쭈어 봅니다.

 
 
qualia 2010-01-31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Jeusksy 님, 정말 반갑습니다. 어서 오세요. 저와 같은/비슷한 관심사를 지니신 분이라 더욱 반갑습니다. 저 또한 마음 · 의식 · 정신 · 심리에 관한 공부가 저의 제1의 관심사입니다. 환원주의 · 창발론 · 생기론 따위에 관해서도 공부하고 있습니다.

제 신분에 관해서는 제가 원칙적으로 “익명주의”를 기본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자세히 말씀드릴 수 없어서 매우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다만, 마음 · 의식 · 정신 · 심리의 본질을 파헤치기 위해 마음철학(심리철학)을 중심으로 흥미롭게 공부하고 있는 한 개인이라고 해두겠습니다. 마음철학을 공부하게 되면 당연히 인지과학과 (뇌)신경과학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겠죠. 그래서 인지과학과 신경과학에 관한 최신 논문이 많이 실리는 학술지를 자주 참고합니다. 제가 많이 찾아가는 관련 학술지를 몇몇 적으면 다음과 같습니다. 직접 찾아가셔서 살펴보시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네이처 Nature》(http://www.nature.com)
《사이언스 Science》(http://www.sciencemag.org)
《의식과 인지 Consciousness and Cognition》(http://www.sciencedirect.com/science/journal/10538100)
《인지과학의 최신 동향 Trends in Cognitive Sciences》(http://www.sciencedirect.com/science/journal/13646613)
《신경과학의 최신 동향 Trends in Neurosciences》(http://www.sciencedirect.com/science/journal/01662236)
《인지과학 Cognitive Science》(http://www3.interscience.wiley.com/journal/121670282/home)
《인지과학의 논제들 Topics in Cognitive Science》(http://www3.interscience.wiley.com/journal/121673067/home)

Jeusksy 님께서 생명과학과에 재학 중이라면 자연과학도이신데요. 저는 자연과학 계통하고는 직접적인 관련이 거의 없습니다. 따라서 저는 Jeusksy 님께 정신의 “신경과학적” 연구에 관한, 혹은 “환원주의적” 연구에 관한 조언을 해드릴 수 있는 위치에 있지도 않고, 그럴 능력도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마음 · 의식 · 정신의 본질에 관한 연구와 관련하여, 마음철학(심리철학)과 인지과학과 신경과학 분야의 세계적 연구자들이 학제간 벽을 허물고 서로 공동연구를 진행하여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는 최근의 동향에 대해 간단히 말씀드릴 수 있을 듯합니다.

아시다시피 “마음/의식/정신”은 전통적인 철학적 개념이어서, 불과 199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자연과학/경험과학의 연구 대상에서 금기시돼 왔습니다. 마음/의식/정신은 관념적, 추상적, 신비주의적, 비물질/비물리적인 실체로 간주돼 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1990년, 프랜시스 크릭(Francis Crick; 1953년 제임스 왓슨James Watson과 함께 DNA 이중나선 구조 발견,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과 크리스토프 코흐(Christof Koch)가 《신경과학 세미나 Seminars in the Neurosciences》라는 학술지에 「의식의 신경생물학 이론을 향하여 Towards a neurobiological theory of consciousness」라는 기념비적 논문을 발표하면서, 이제는 의식을 과학적 연구 대상으로 채택하여 본격적으로 연구해나가자고 천명합니다. 그리하여 그 논문 발표 시점을 앞뒤로 해서 철학적 주제였던 마음/의식/정신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서서히 물꼬를 트게 되었고, 현재는 철학은 물론이고 인지과학과 신경과학에서 가장 각광받는 연구 주제가 되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리고 학술지 《사이언스 Science》는 2005년 07월 01일 호에서 창간 125주년을 맞아, 아직까지 풀지 못한 “125가지의 과학적 문제”를 선정하고, 다시 그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문제 25가지를 추려서 특집호로 발표했는데요. 그중에서 하나가 바로 “의식(consciousness)”에 관한 문제였습니다. 이처럼, 이제 마음/의식/정신은 세계 과학계의 가장 흥미롭고 뜨거운 탐구 주제가 된 것입니다.

◈ 해당 기사
▷ Kennedy, Donald and Colin Norman (2005). What Don't We Know? Science 309(5731): 75. (Issue of 1 July 2005, DOI: 10.1126/science.309.5731.75).
http://www.sciencemag.org/cgi/content/summary/309/5731/75

▷ Miller, Greg (2005). What Is the Biological Basis of Consciousness? Science 309(5731): 79. (Issue of 1 July 2005, DOI: 10.1126/science.309.5731.79).
http://www.sciencemag.org/cgi/content/full/309/5731/79)

최근 서구에서는 마음/의식/정신의 본질 탐구와 관련하여, 철학자와 인지과학자와 신경과학자가 학제간 공동연구를 통해 세계적 연구 성과를 거두는 사례가 하나 둘씩 나오고 있습니다. 예컨대 2007년 08월 24일자 《사이언스 Science》 지에 발표된 것으로서, 독일 요하네스 구텐베르크 대학교의 세계적인 마음철학자 토마스 메칭거(Thomas Metzinger; 토마스 메칭어) 교수와 스위스 로잔 연방공과대학 인지신경과학연구소의 올라프 블랑크(Olaf Blanke) 교수 연구팀이 세계 최초로 유체이탈 경험(out-of-body experiences)을 인공적/인위적으로 유발시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합니다. 같은 호에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Karolinska Institutet의 헨리크 에르손Henrik Ehrsson 박사도 유사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 해당 논문
▷ Lenggenhager, Bigna, Tej Tadi, Thomas Metzinger, and Olaf Blanke (2007). Video Ergo Sum: Manipulating Bodily Self-Consciousness. Science 317(5841): 1096-1099. (Issue of 24 August 2007, DOI: 10.1126/science.1143439).
http://www.sciencemag.org/cgi/content/abstract/317/5841/1096

▷ Ehrsson, H. Henrik (2007). The Experimental Induction of Out-of-Body Experiences. Science 317(5841): 1048. (Issue of 24 August 2007, DOI: 10.1126/science.1142175).
http://www.sciencemag.org/cgi/content/abstract/317/5841/1048

유체이탈 경험이란 편의상 간단히 말하자면, (흔히 전신마취 수술 중일 때나 죽음 직전까지 갔다가 소생하는 과정에서) 내 의식이 내 몸을 빠져나와 허공 위에서 내 몸과 그 주변을 생생하게 내려다보는 의식 경험(conscious experience)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완전히 신비적이고 종교적이고 비과학적이고 초과학적인 경험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위 연구는 종래의 금기를 깨고 이런 비과학적/초과학적 의식 경험의 영역을 정상적 과학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반복 재현 가능한 실험과, 객관적 관찰과, 엄밀한 측정과 분석으로 그 물리적 기초를 (일부분이긴 하지만) 구체적으로 밝힌 것입니다. 즉 일종의 “환원주의적” 연구 방법론으로 그 뇌신경 기제 혹은 메커니즘을 일부 밝혔다고 볼 수 있는 것이죠. 또한 이 연구 과정에서는 일종의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종래에는 거의 사이비 개념으로 취급받던 유체이탈 경험이나 임사 경험(near-death experiences; 임사 체험, 근사 체험)이 이 연구로써 어엿한 정상과학의 한 개념으로 올라섰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위 연구는 마음과학(mind science)에서 ― 또한 과학철학과 과학사의 측면에서 ― 아주 중요한 의미를 띤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점들에 비춰볼 때, 위에서 Jeusksy 님께서는 정신의 본질을 “환원주의 형태”로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위 연구에서 아주 큰 암시 혹은 영감을 얻을 수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과연 마음 · 의식 · 정신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그 본질은 비물리적인 어떤 심적 실체(res cogitans)일까요, 아니면 단지 물리적/물질적 실체(res extensa)에 지나지 않을까요? 과연 이 인류 최후의 수수께끼를 (뇌)신경과학으로 밝힐 수 있을까요?

이상으로 좀 비체계적으로 말씀을 드렸는데요, Jeusksy 님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정신의 본질”을 신경과학적으로 연구하시겠다는 Jeusksy 님의 말씀이 정말 반가웠습니다. 앞으로 Jeusksy 님께 정말 흥미진진한 탐구의 길이 열리길 바랍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2010-01-30 토요일 19:33]

Jeusksy 2010-02-02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정말 감사합니다! 이렇게 제 관심 분야에 대해서 이목저목 관련 얘기도 해주시고...
qualia님도 아시다시피, 정신의 본질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자연과학뿐만 아니라 심리학과 같은 사회과학, 그리고 인문과학도 필요하다는 점을 봤을 때, 저는 이러한 연구에 한 사람의 번뜩이는 생각이 중요하다기보다, 다양한 생각을 가진, 많은 사람들의 크고 작은 생각이 모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점에서 님과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이 참 기쁘네요. 지금은 모르지만, 나중에는 님만의 지혜도 흘러들어가 인류 최후의 과제라 할 수 있는 '정신의 본질 연구'에 도움이 될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정신의 본질이 비물리적인 어떤 심적 실체인지, 아니면 단지 물리적/물질적 실체인지에 대해 제 생각을 말해볼까 합니다.

전 간단하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무언가를 심적인 실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인간이 과학적으로 입증이 가능하지 않은 대상을 또다른 실체로서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으로 하여금 그렇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정신'이므로, 정신의 본질에 대해서 비물리적인 어떤 심적 실체인지, 아니면 단지 물리적/물질적 실체인지를 논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qualia 2010-02-03 06:44   좋아요 0 | URL
Jeusksy 님한테서 굉장한 열정이 느껴지는군요. 생명과학도라면 우리 인간의 뇌를 직접 연구할 수 있는 매우 유리한 위치에 있는 것이므로, 그 과학적 연구 결과/경험을 마음 · 의식 · 정신에 관한 철학적 논의와 잘 결합한다면, 정말 훌륭한 이론을 내놓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됩니다. 끊임없이 샘솟는 호기심과 궁금증, 그것이 무엇이든 자기자신이 추구하는 것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흥미와 재미, 계속 물음/질문을 던지면서 생각을 파헤쳐나가는 치밀한 분석력/논리력…… 이런 것들이 ‘생명’이고 관건인 듯합니다. 젊은 피의 패기! 건투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