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지 못하는 사람들
무레 요코 지음, 이수은 옮김 / 라곰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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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얘기지만
내 지인들이 이 책의 제목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았다면
나를 떠올렸을 것이다.
반박할 수 없다.
너무나도 나 그 자체인 제목에 눈을 떼지 못하고
서평단 신청도 했기 때문이다.

가제본 상태로 정식 출간본의 한 챕터를 받았다.
제목은 '쌓아두는 엄마'.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
(아니 그게 아니고...)

오늘도 딸 토모미는 엄마의 부름을 받고
신칸센에 몸을 실었다.

72세의 어머니는 토모미가 고등학생일 때 갑자기 남편을 잃었다.
대학 때 맞선을 보고 졸업하자마자 결혼을 해서 직장 생활 경험이 없었다.
아빠가 돌아가신 뒤에도 사치하지만 않으면 일은 안 해도 된다면 집에만 있었다.
장례식 등의 준비는 엄마와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이모가 도맡아주었다.
그런 이모가 돌아가신 뒤에는 집에만 틀어박혀 지내고 있다.

그래도 아직 젊은 편이라 생각하면서도
토모미는 혼자 있는 엄마가 걱정스럽다.

오늘은 무슨 일로 호출한 거냐 물으니 뜸을 들이는 엄마.
그리고 이내 혼자 처리하기 어려운 일이 있다고 고백한다.
대체 뭘까?

엄마의 목소리를 따라 오빠가 어릴 때 쓰던 방으로 들어간 순간,
토모미는 얼어붙었다.
방 안에는 온갖 종류의 택배 상자가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엄마를 추궁하니 얼마 전 큰 지진이 있고 나서 두려움에
비상식량을 사두려고 했단다.

그런데 양이 많아도 너무 많다다.
일인용 비상식량 세트가 열 상자.
2리터짜리 생수병 48개에 각종 통조림.
즉석카레 24개.
컵라면 33상자. 396개.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들도 수두룩했다.

주문을 잘못한 때도 있었지만
어쨌든 사놓고 먹어치우질 않아 계속 쌓이기만 해
방은 엉망이었다.

토모미를 가능한 한 물건들을 정리하고
먹어치울 수 있는 것들을 먹어치울 수 있게 부지런히 움직였다는 이야기다.

아이고, 어머니...
이해하고 싶지 않은데 너무나도 이해가 되어서
안절부절못하며 읽었습니다..
저도 늘 물건이 차고 넘치는데
왜 자꾸 사고 쌓아놓게 되는 걸까요?...

저장 강박에 대한 책도 읽고
쓰레기 집에 대한 영상들도 보면서
반성하고 고치려고 하는데
정말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도 누구보다 우리 자신이 제일 간절하게
제대로 살아보고 싶지 않겠어요?

저도 조금 더 근본적인 문제를 파악하고
잘 살아볼게요.
저는 토모미 같은 딸도 없으니까요.

지난 1월 13일(월)에 정신 출간본이 발행되었으니
전체 이야기도 읽어봐야겠습니다.
출간 이벤트로 알라딘에서는 무레 요코 지우개,
예스24에서는 무레 요코 카펜터 연필,
교보문고에서는 무레 요코 포스트잇 증정 이벤트도 있다고 하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체크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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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된 일기장
알바 데 세스페데스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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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 엄마와 단둘이 여행을 다녀왔었다.
밤에 호텔로 돌아오면 비치된 작은 메모지에
그날 갔던 장소의 이름이나 먹은 음식, 경험한 것들에 대한
간단한 메모를 남기는 엄마를 보았다.
시간이 흐르고 설에 고향 집을 찾았다가 침대 맡에 놓인 엄마의 일기장을 보았다.
가족 중 가장 많이 비행기를 타고 가장 많은 나라를 방문했던 엄마는 앞장에 이렇게 적었다.
그 다양했던 경험들을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더니 모두 잊고 말았다고.
그래서 올해부터는 일기를 남겨 잊지 않게 만들고 싶다고.
엄마가 집을 비운 사이 침대에 누워 엄마의 일기장을 읽었다.
지난 여행에서 남겼던 메모들이 페이지에 옮겨져 있었다.
그때 일에 대해 엄마는 이런 감정을 느꼈구나.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일기장 속에서 나는 내가 알지 못하는 엄마의 민낯을 본 것만 같았다.
새로웠고 낯설었다.
나는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엄마를 엄마인 상태로 밖에 만나지 못했지만
엄마도 한 명의 사람이고, 한 명의 여인이고, 한 명의 자식이라는 걸
너무 당연했던 그 사실을 오랜만에 다시 깨닫게 되었다.

<금지된 일기장>을 읽으면서 그때의 경험을 강렬히 떠올렸다.
1950년 11월 26일.
화자이자 일기장의 주인인 발레리아는 충동적으로 일기장을 구매하게 된다.
그리고 가족들 몰래 일기를 쓰게 된다.
남편 미켈레, 아들 리카르도, 딸 미렐라.
모두 너무도 사랑하는 가족이지만
그들에게는 미쳐 말할 수 없는 발레리아만의 생각과 감정이 있다.
일기를 쓴다는 비밀을 품고 그녀는 괴로워한다.
일기장을 괜히 샀다고 후회도 한다.
하지만 계속해서 일기를 쓰게 된다.
그 과정에서 엄마이자 아내이자 딸이었던 발레리아는
온전히 그녀 자신이 된다.
자신에게 주어진 여러 가지 역할 앞에서 고민도 하고 상처도 받고
설레기도 하고 행복해하기도 한다.
다채로운 발레리아가 이 책 속에 있다.

누구에게나 타인에게 내보일 수 없는 은밀한 민낯이 있다.
그것이 남을 불편하게 할 수도, 상처 입힐 수도 있지만
내밀한 자신을 마주하면서 우리는 조금 더 자유로워지고
조금 더 성장하게 되는 것 같다.

부디 발레리아가 꾸준히 일기를 써나가기를,
가능하다면 떳떳하게 써나갈 수 있기를 바라며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다.

그리고 나만 볼 수 있는 일기를 쓰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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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는 다시 삶을 선택했다
최지은 지음 / 유선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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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페이지를 넘겼다.
책을 닫으며 생각했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이 책이 세상에 나와서 나에겐 너무 다행이다...
서로 다른 두 마음이 부딪혔다.

저자는 화려한 커리어를 쌓으며 멋진 인생 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찾아온 불청객에게 인생의 주도권을 송두리째 빼앗기고 마는데
그의 이름은 자궁 경부 암이었다.
만 37세의 봄, 그녀는 3기 암 환자가 된다.
그렇게 나는 그녀의 발병부터 투병 중인 나날들을 곁에서 같이 겪었다.

우리가 쉽게 하는 말들이 암과 싸우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불편하고 어떻게 상처가 되는지 처음 알게 되었다.
건강을 잃으면 모두 잃는다는 말이나
너는 강하니까 충분히 극복해낼 거야,라는 말.
모두 잘 될 거라는 말.
쉬운 마음으로 전한 말은 아니었지만
그 말을 받은 사람의 마음까진 헤아리지 못했었기에 놀라운 깨달음이었다.

단순 투병기 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와 일에 대한 이야기도 크게 와닿았다.
특히 일을 하면서 우리가 상처를 많이 받긴 하지만
그 상처가 흉ㅓ가 되게 내버려두지 말자는 대목이 그랬다.
우리는 싸움이 목표가 아니라 완주가 목표라는 말도.

엄마의 김밥과 바위, 파도, 다스베이더, 빨간 망토 차차 꼭지도 좋았다.
별 5개 ★★★★★ 부분도.

작가의 문장이 수려하다.
새로운 비유도 많았고 적절한 예시도 좋았다.
담담한 어투에 그녀만의 유머도 좋았기에
인덱스가 덕지덕지 붙었다.

이 이야기를 만날 수 있어 영광이었다고,
덕분에 내 인생의 방향도 조금 더 좋은 쪽으로 흐를 수 있을 것 같다고
꼭 말해주고 싶다.

부디 그녀의 지금이, 오늘이, 평안하길 바란다.
치료가 잘 되어 이 책이 오래오래
환자분들에게도 독자들에게도 많이 읽히고 회자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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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도 새소설 18
김엄지 지음 / 자음과모음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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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 기온이 두 자릿수를 기록한 올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이다.
바람도 강하게 불어 체감온도는 더더욱 낮았다.
패딩에 쌓인 부분은 괜찮았지만 밖으로 드러난 손과 얼굴은 세찬 바람에 베인 듯 쓰라렸다.
얼어붓다 못해 팡, 하고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올겨울은 비교적 따뜻한 편이어서 그런지
오랜만에 찾아온 강추위가 유독 혹독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문득, 할도가 떠올랐다.
오소소 몸에 소름이 돋으면서 몸의 안과 밖으로 세찬 바람이 스쳐갔다.

벨 할, 섬 도.
비가 잦고 빗줄기가 거세 뺨에 맞으면 살갗이 베인다는 곳, 할도.

나는 저 두 문장에 미친 듯이 끌렸다.
어떤 이야기가 담길지 읽고 싶어 몸이 아플 정도였다.
왜 그토록 갈망했을까, 이 섬을.

아버지의 발인이 끝나고 나는 겨울의 할도를 찾았다.
그곳을 찾으라는 말이 있었으나 이제 그 이유는 영영 들을 수 없다.

모든 것이 오래된 섬.
창이 자꾸 얼어붙고 얄팍한 이불밖에 없는 숙소.
바의 여주인, 바에서 마주친 A와 B, 늙은 의사, 식당의 늙은 직원.
묘한 분위기의 사람들.

21p
할도의 또 다른 이름은 충동섬이라 했다.
나에게는 충동이 없고.
아니 없는 듯 있었기 때문에 너절했다.
나는 그것을 해결하고 싶었다.

섬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다.
좀처럼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다.
극복할 수 없을 것만 같다.

92p
사람은 왜 태어나 슬픈 기억을 하나쯤 만들고.
시간이 지나면 그걸 추억이라고 부르기도 할까요?

페이지를 펼치면 나는 할도에 있었다.
소금기를 가득 머금은 바다 냄새가 풍기고
세찬 바람이 불어와 정신이 혼미했다.
사나운 파도 소리가 귀를 먹먹하게 하고
자꾸 오한이 들며 눈꺼풀이 무거웠다.

몇 글자 되지 않는, 언뜻 보면 가벼워 보이는 문장 속에서
자주 길을 잃고 내리는 비에 얼굴을 긁혔다.
의식하지 못했지만 힘이 강한 이야기다.

언젠가 쥬지오를 찾아 여주인과 A와 B, 노의사를 만나보고 싶다.
그 자리에 이야기 속 나도 있으면 좋겠다.
우린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까?

코끝이 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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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세계 -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세상을 움직이는 곤충들의 비밀스러운 삶
조지 맥개빈 지음, 이한음 옮김 / 알레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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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름한 건물 외벽에 시선을 고정한 채 멍하니 있었다.
그러다 아지랑이처럼 어떤 움직임이 포착되어 두 눈의 포커스를 맞췄다.
쌀알 2개 정도 크기의 밝은 갈색빛의 거미가 어딘가로 이동 중이었다.
순간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내 시선은 나와 너무 다른 존재에게 빨려 들어갔다.
그렇게 한동안 거미의 이동을 지켜보다가 시야에서 사라지려는 거미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 잘 가렴.

어쩌다 보니 연거푸 곤충에 관련된 책을 읽게 되었다.
그래서 작디작은 친구들에게 전에 없이 마음이 간다.

곤충강은 모든 동물종의 4분의 3을 차지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숫자를 자랑한다.
다양한 종류만큼 이 책에는 곤충들의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이 담겨 있다.

작은 생물들의 존재에 대해 무지했던 나머지
캘리포니아콘도르를 보호하려 했던 기생충 제거 과정이
되려 종을 멸종시켜버리는 결과를 초래한 사례는 아주 마음이 아팠다.

지구에서 가장 심각한 피해를 입히는 곤충 중 하나로 잘 알려진 사막메뚜기는 의외로 식성이 까다로운 미식가이고, 혼자 돌아다니기를 좋아하지만 가까이 밀집되는 상황에 처하게 되면 특정 거리 내에 있는 개체들끼리 서로 보조를 맞추어 함께 움직이는 양상을 띠게 된다는 이야기는 너무 흥미로웠다.

뿔매미들은 약 3,500종이 있으며 남아메리카에서 유달리 다양하게 진화했다.
정말 기이한 모습을 한 개체들도 있는데 진화의 결과치들 또한 아주 재미있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인식의 문이 활짝 열렸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작디작은 미생물이나 기생충부터 눈에 보이는 동식물들까지.
지구에 이렇게 다양한 존재들이 같이 살아간다는 사실에 괜히 혼자 마음이 훈훈했다가
다른 생명체들에게 인간이 가한 수많은 폭력의 과정과 결과치를 생각하면 납덩이를 삼킨 것처럼 가슴이 답답해진다.

제발 우리 같이 좀 삽시다.
잘못을 바로잡읍시다.
우리는 지구의 주인이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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