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된 일기장
알바 데 세스페데스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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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 엄마와 단둘이 여행을 다녀왔었다.
밤에 호텔로 돌아오면 비치된 작은 메모지에
그날 갔던 장소의 이름이나 먹은 음식, 경험한 것들에 대한
간단한 메모를 남기는 엄마를 보았다.
시간이 흐르고 설에 고향 집을 찾았다가 침대 맡에 놓인 엄마의 일기장을 보았다.
가족 중 가장 많이 비행기를 타고 가장 많은 나라를 방문했던 엄마는 앞장에 이렇게 적었다.
그 다양했던 경험들을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더니 모두 잊고 말았다고.
그래서 올해부터는 일기를 남겨 잊지 않게 만들고 싶다고.
엄마가 집을 비운 사이 침대에 누워 엄마의 일기장을 읽었다.
지난 여행에서 남겼던 메모들이 페이지에 옮겨져 있었다.
그때 일에 대해 엄마는 이런 감정을 느꼈구나.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일기장 속에서 나는 내가 알지 못하는 엄마의 민낯을 본 것만 같았다.
새로웠고 낯설었다.
나는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엄마를 엄마인 상태로 밖에 만나지 못했지만
엄마도 한 명의 사람이고, 한 명의 여인이고, 한 명의 자식이라는 걸
너무 당연했던 그 사실을 오랜만에 다시 깨닫게 되었다.

<금지된 일기장>을 읽으면서 그때의 경험을 강렬히 떠올렸다.
1950년 11월 26일.
화자이자 일기장의 주인인 발레리아는 충동적으로 일기장을 구매하게 된다.
그리고 가족들 몰래 일기를 쓰게 된다.
남편 미켈레, 아들 리카르도, 딸 미렐라.
모두 너무도 사랑하는 가족이지만
그들에게는 미쳐 말할 수 없는 발레리아만의 생각과 감정이 있다.
일기를 쓴다는 비밀을 품고 그녀는 괴로워한다.
일기장을 괜히 샀다고 후회도 한다.
하지만 계속해서 일기를 쓰게 된다.
그 과정에서 엄마이자 아내이자 딸이었던 발레리아는
온전히 그녀 자신이 된다.
자신에게 주어진 여러 가지 역할 앞에서 고민도 하고 상처도 받고
설레기도 하고 행복해하기도 한다.
다채로운 발레리아가 이 책 속에 있다.

누구에게나 타인에게 내보일 수 없는 은밀한 민낯이 있다.
그것이 남을 불편하게 할 수도, 상처 입힐 수도 있지만
내밀한 자신을 마주하면서 우리는 조금 더 자유로워지고
조금 더 성장하게 되는 것 같다.

부디 발레리아가 꾸준히 일기를 써나가기를,
가능하다면 떳떳하게 써나갈 수 있기를 바라며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다.

그리고 나만 볼 수 있는 일기를 쓰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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